미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아이의 결심을 듣는 순간, 가슴 밑동이 철렁 빠졌다.
애써 덤덤히 대화를 이어갔지만
수화기 너머의 아이는 볼 수 없는 그곳의 나는 덜덜 떨었다.
바트게 남은 시간이 나에게 주어졌다.
남은 시간 속 나는 매 순간, 공황이었다.
아이의 출국 전 날, 부러 고된 노동으로 몸뚱이를 혹사했지만 결국 잠을 이루지 못했다.
공항 가는 내내 들뜬 목소리로 불러대는 아이의 노랫가락은 긴장한 신경세포를 더욱 압박했다.
무덤덤한 척 아이를 보내고 나니 밀려드는 극심한 몸살.
약을 털어 넣고 청하는 잠 속, 나는 톱니바퀴를 도는 듯 같은 꿈을 꾸며 고통을 느꼈다.
그리고 끊임없이 겁에 질렸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쓸데없는 걱정에 쓸데없이 마음이 흐른다.
여전한 몸살과 아이 생각만하면 치솟는 공황에 어찌할 바 모르겠는 나는
하나 남은 연차를
훤한 대낮에 아무 방해 없이 시체처럼 자는데 쓰고 싶어졌다. .
당한 離別의 후유증이 고약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