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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모모 Feb 06. 2022

죽음을 맞이하는 현명한 자세

모든 오늘은 죽는 날의 어제이다

아마도(예측컨데) 죽음이라는 주제는 사람들이 평소 고민해보고 싶은 주제가 아닐 것입니다.

게다가 요즘의 저는 지금 충분히 행복하기 때문에, 더욱 죽음이라는 주제를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무서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전해지는 지인의 부고 소식 및 국가적 재난/천재지변으로 인한 국민들의 죽음, 즐겨보는 콘텐츠에서 접하는 등장인물의 죽음까지… 이런 죽음의 모습을 보다 문득 제 자신에게 하나의 화두를 던져보게 되었습니다.

왜 고인의 죽음을 바라보는 지인들은 모두 저리도 슬퍼하는 것일까?

물론 주변에서 슬퍼하는 마음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공감이 갑니다.

아무래도 고인의 안쓰럽고 힘들었던 모습에 아련해지고, 더 나아가 잘해주지 못했다는 후회감 등이 발현되기 때문이겠죠. 여기서 저는 시점을 바꿔 고인에게 포커스를 맞춰보고 싶었습니다. 과연 고인은 죽기 직전에 어떤 심정이었을까? 만약 지금 남은 사람들이 자기를 회자하고 있는 내용을 듣는다면 무슨 기분이 들까?

인터뷰 해볼 수 없는 주제지만, 적어도 저는 죽는 순간에 대해 다음과 같은 심정이면 좋겠어요.

너무 재미있는 후회없는 삶이었다. 남아있는 사람들도 웃으며 나를 기억해주면 좋겠다.

저는 죽음이란 ‘하나의 삶을 빛나게 해주는 가장 극적인 순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죽음 속에는 고인에 대한 인생의 기억과 과거가 엮어 있기 때문이죠. 여기서 저는 ‘과거’라는 키워드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죽음의 시점에서 과거는 바로 지금 이 순간과 내일입니다. 당연한 진리지만 이 단순한 깨달음이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해답을 주는 귀중한 열쇠가 되었습니다. 만약 제가 죽는 순간 과거가 될 삶들을 의미 있게 충실히 산다면 죽는 순간이 두렵지 않고 오히려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히려 잘 설계한다면 그 순간이 인생의 최고 정점이 되지 않을까 하는 느낌도 듭니다.

죽음은 고인의 과거가 엮인 삶을 빛나게 해주는 가장 극적인 순간이며,
죽음의 시점에서 과거는 바로 이 순간이다.

누군가의 죽음을 보고 삶의 의지를 다지는 행동은 어찌 보면 참 아이러니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저는 죽음의 또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죽음은 고인의 치열한 삶의 결과인 동시에, 타인이 본인의 삶을 반추해볼 수 있는 성찰의 도구로 쓰이는 것입니다. 저 또한 먼 훗날 제 죽음이 다른 사람들에게 이러한 역할로 쓰였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죽음을 타인이 성찰의 도구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멋진 선순환 모습이다.

이렇게 생각을 해보니 더 이상 죽음이란 존재가 예전처럼 두렵거나 공포의 존재가 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죽음은 삶을  빛나게 해주는 존엄한 존재이고 삶의 연속적인 측면에서 오히려 친근한 기분까지 들게 되었습니다. 죽음은 두렵지가 않은데 이제 삶이 문제입니다.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후회 없는 삶일까요? 해답을 꼭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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