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인들 그렇지 않을까마는 올 한해는 내게 정말 중요한 해다. 이것저것 벌여놓은 일들을 마무리하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의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려면 시간을 아껴써야 하는데 어젯밤 기어이 미리시리즈를 새로 열고 말았다. <빨강머리 앤>을 끝내고 <그레이스>를 보았다. 6부작이었으니 삼사일 걸렸다. 여기에서 끝을 냈으면 좋았을텐데.
어릴 적 서너 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극장에 드나들면서 받은 조기교육 탓에 나는 영화보기를 즐긴다. 뇌관을 잘못 건드렸다. 눌러두었던 열정이 되살아났다. 새로 시작한 미니 시리즈는 5부작, 장장 60편이 넘는다. 하루에 한 편을 보면 두 달이 넘게 걸린다.
밤에 미니시리즈를 볼 시간을 만들기 위해 부지런히 열공 중이다. 설렁설렁 두세 시간 하던 공부를 한 시간 안에 끝내려고 책상 앞에 앉았다.
다음으로 오늘 할일은 옷 서랍장 정리. 바닥에 다 쏟아놓고 입을 것만 다시 넣는 일이다. 당분간 내 옷을 사는 일은 없을 듯 하다.
마치고 나니 어제 주문한 손주의 옷이 도착했다. 정말 빠르다. 이렇게 빨리 오지 않아도 되는데. 세밑은 택배아저씨들이 많이 바쁠 것 같아 미리 주문한 것이다. 밤새 달려왔을 생각을하니 고마운 마음이 든다. 제 엄마 아빠가 비싼 옷은 사줄 터이고 내가 산 옷은 어린이집에서 입을 수 있는 실내복이다. 아래 위 네 벌과 셔츠 세 개를 샀다. 세탁기에 후딱 돌려 널어놓았다.
오늘 내가 할 일은 여기까지이다. 아무도 내가 미니시리즈를 보던 말던 신경쓰지 않는데 나혼자 이 난리 부르스다. 어쩌겠나? 성질머리가 이렇게 생겨먹은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