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간결한 욕실을 만들 수 있을까.
만약 누군가 이 곳에 미니멀리스트 부부가 산다는 정보를 듣지 않고 온다면, 아마 아무도 안 사는 집이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만큼 단순하다는 말이다. 우리 집에서 가장 심플한 곳을 꼽으라면 자신있게 욕실과 침실을 말한다. 침실에는 침대 하나만 있고, 욕실에는 비누 한 장만 덩그라니 놓여있다. 서로 각자 맡은 목적에만 충실한 공간이 아닐 수 없다. 침실은 자는 곳이고 욕실은 씻는 곳. 그러니까 침실에는 침대만 있으면 되고, 욕실에는 비누만 있으면 된다.
욕실에 있는 수납장 안에는 남편이 매일 사용하는 전기 면도기와 수건, 그리고 여분의 두루마리 휴지가 있다. 휴지를 제외하고는 여분의 비누, 여분의 치약, 여분의 칫솔 같은 것은 구비해두지 않는다. 집에 여분의 생필품이 없으면 불안하던 시절에는 항상 여분의 필수품들을 챙겨 두었다. 그런데 여분의 물건은 또 다른 여분의 물건을 낳았다. 당장 필요한 것도 아니면서 생필품 세일기간이 되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어차피 집에 두면 다 쓸거야’라는 마음으로 충동 구매를 합리화하곤 했다.
여분이 없어도 더는 불안하지 않다. 집 앞에 널린 게 마트와 편의점이고 치약도 칫솔도 다 써간다 싶을 때 장 보면서 장바구니에 하나 더 담으면 되기 때문이다. 생필품을 한두 개씩 사서 쓰는 습관은 경제적으로도 이득이지만 무엇보다 수납장을 여유롭게 쓸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좋다.
한번은 생활이 너무 정신 없이 바빠서 살림에 신경 쓰지 못한 시기가 있었다. 치약을 다 썼다고 하면서도 새로운 치약을 사지 못한 채 며칠이 흘렀다. 불편하기는 했지만 신기하게도 그런대로 지내졌다. 평소라면어느정도 짜다가 안나오는 치약을 버리고 새 것을 뜯었겠지만, 여분의 치약이 없으니 새 것을 구입할 때까지 어떻게든 이 치약으로 양치질을 해결해야만 했다. 가위로 치약의 가운데를 툭 잘라 배를 갈랐다. 납작해서 더는 남은 내용물이 없을 줄 알았는데, 배를 가른 치약으로 삼사일은 거뜬히 양치질을 했다. 없어도 그런대로 잘 살아졌다. 그러니 너무 동동거리지 말고, 너무 쟁이지 말고, 기본만 하나씩 구입하며 그렇게 살자고 마음을 먹게 됐다.
우리 집 샤워실 안에는 샴푸 한 통, 세면대 위에는 올인원 비누 하나가 놓여있다. 세상에는 다양한 효능과 매력적인 디자인을 어필하는 욕실 용품들이 많지만 나는 이 두가지만으로도 충분하다. 이전에는 한번 씻으려고 하면 클렌징 오일, 클렌징 폼, 컨디셔너, 샴푸, 린스, 트리트먼트, 바디워시, 바디로션까지 모두 완비 되어 있어야 했다. 여기에 남편 취향의 용품들까지 겹쳐져 우리 집 욕실의 수납함과 선반 위는 언제나 빼곡했다. 다 쓴 샴푸통이 있어도 제때 치우지 않고, 절반정도 쓰다 말고 새로운 것을 뜯어도 아무렇지 않았다. 어차피 욕실은 통제가 안 될 만큼 포화 상태였으니까! 그런데 덜어내고 비워내며 심플하게 생활하다보니 샴푸와 비누면 충분했다. 모든 건 본연의 기능에만 충실하면 될 뿐이었다.
이제는 욕실 제품을 구입할 때 어떤 효능이 있는지, 어느 브랜드껀지, 어떤 향인지와 같은 것을 보기보다는 전성분이 무엇인지를 따져보게 된다. 씻을 때 유일하게 쓰는 제품인데 되도록 내 몸에도, 지구에도 해를 끼치지 않는 것으로 살뜰하게 골라서 쓰고 싶다. 향도 중요하고, 가격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마음 놓고 쓸 수 있는 심플하고 무해한 성분의 제품이 가장 좋다.
청소 용품도 마찬가지다. 욕실용, 변기용, 거울용, 찌든때용, 액체형, 크림제형, 가루형 등등. 욕실 청소 한 번 하는데 뭐 이리 필요한 용품이 많고 기능별로 갖추고 있어야 했는지 모르겠다. 부위별로 세세하게 나뉘어 판매하는 다양한 욕실 용품과 청소 용품들을 완벽하게 갖춘다면 우리 삶이 좀 더 편리해질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사실은 더 복잡하게 만들 뿐이다. 비누 한 장이면 충분한 것을 네다섯 가지의 용품을 찍어 바르게 하고, 솔질 한 번 하면 금세 깨끗해지는 것을 독한 세제를 손에 묻히게 한다.
욕실 용품도, 청소 용품도 더러움을 깨끗하게 씻어낼 수만 있으면 족하다. 나는 샤워 전에 평소 쓰는 비눗물을 수세미에 묻혀 욕실을 청소한다. 욕실 선반이나 변기 위에 올려져 있는 용품들이 하나도 없다보니 욕실 청소는 3분을 채 넘기지 않는다. 샤워 전 따뜻한 물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며 쏟아내는 찬물로 비누 거품을 헹구고 나면 청소는 끝. 매일 가볍고 간단하게 물 청소를 하면 곰팡이가 피는 일이 없어 독한 세제는 필요치 않다.
샴푸와 비누가 전부인 샤워도, 솔질밖에 없는 청소도, 언제나 간단하고 단순하다. 많은 물건을 소유하지 않고 사는 삶이 단순하고 가벼워질 수 있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물건이 적으면 적을수록 그 물건을 품고 있는 공간의 관리까지 수월해지기 때문에 우리의 생활 자체가 보다 간단하고 심플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