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갑내기 여인들
나이가 들어가고 병원에서 머무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는 동안
어릴 적의 몇 안 되는 친구들은 저마다의 진로를 찾아 대학을 가고,
사회에 나와 어딘가의 일원이 되어 가면서 나와 이어져 있던
아주 미약하던 인연의 실마저 끊어지게 되었다.
연락처 속 존재하는 이름을 보아도 선뜻,
연락으로 이어지지 않는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그들의 프사에는 결혼과 임신, 출산의 근황들을 짐작케 해서
잘 지내고 있구나 - 그런 짧은 감상으로
어른이 되었을 친구들을 잠시 떠올렸다.
긴 입원 생활에서 신기하게도
나와 동갑의 여자아이는 만나기 어려웠는데,
그나마 동갑의 남자아이들이 있던 덕분에
잠깐이나마 또래 생활에 멀어진 나를
그 안에 속하는 존재로 인식하게 해 주었다.
그러던 중 대략 열여덟, 열아홉 즈음 만난 동갑내기 여자친구.
선천성 질환이라 태어나 나자 시작된 나와는 달리 평온한 삶을 살아오다
뒤늦게 후천적으로 중학생 즈음부터 병원을 오가게 된 그 친구는..
나와 성격이나 성향도, 질환도 달랐다.
그럼에도 어린아이들만 가득한 공간에서
같은 나이가 주는 동질감.
그것에 가늘게라도 이어진 연결성이
같은 지역 거주의 인연까지 더해져
자주는 아니어도 가끔씩 만나 시간을 보내는 사이가 되었다.
종종 만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우리가 나이를 먹었다는 것에 실감을 하고 있었는데도
곧 있으면 벌써 20년을 알고 지낸다는 것에 둘 다 굉장히 놀라워했다.
또한 이전의 고민들이 다른 형태로 변해 삶 속에서
여전히 자리하고 있는 모습에서
앞으로의 우리가 걸어갈 길들도 역시 수월하지 않을 것이 그려졌지만,
그래도 그동안의 고민들이 쌓인 이 일상들도 여태 잘 헤쳐왔기에.
괜찮을 것이라고.
그 말을 하고 싶어서 두서없는 이야기들을 늘어놓았다.
운전을 하게 된 지 얼마 안 되었지만 집에 데려다주겠다는
친구가 운전하는 차에 내려 떠나는 뒷모습을 보며
두 동갑내기 여인들에게 이어져있는 이 가느다란 실과 함께
큰 고난 없이 천천히 자신의 길들을 나아갈 수 있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운전대를 처음 잡던 그 마음처럼
친구의 마음에 용기가 깃들기를 응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