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톡홀롬 증후군
소주는 나에겐 값싸게 빨리 취할수 있는 술일 뿐이다.
익숙한 초록빛 병에 수만번은 봤을 상표라벨.
이 맛없는 술을 찾게 될 때가 종종있다.
시원한 국물을 먹고 있을 때나
정말 힘든 일이 있을 때 그렇다.
익숙함에 속아 맛 없다는
사실을 잊고 찾게 된다.
그리고 한 모금 입에 넣었을 때 알게 된다.
‘정말 맛 없구나.’
연애와 비슷하다.
초반의 설레인다는 기분에 취하기 위해
후에 느껴질 쓴맛과 더러운 숙취를 잊는다.
그러곤 다시 연애라는 취기에 달려들게 된다.
결국 자신을 망쳐버릴 것을 알면서도
쉽게 찾아오는 취기와 열기에 내 몸과
마음을 싼값에 내어준다.
스톡홀롬 증후군이 따로없다.
이건 평생 떨치지 못하는
지병같은 것이다.
잠깐 잘해주면 사랑인줄 알고
불나방처럼 뛰어들고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상대방이 쏜 총에 맞거나 내가 든 총으로 자살하거나.
둘 중 하나다.
다시 소주 얘기로 돌아오면
소주와 연애는 닮았다.
첫사랑은 미숙해서 쓰고
그 다음 것들은 시작은 그럴 듯 했어도
끝은 항상 이별이었기에 쓰다.
나이가 들면 인생이 써서 달게
느껴질 때가 올거라는 말은 개소리다.
언제 먹어도 맛 없다.
그중 제일 맛없는 건 단연 빨간 뚜껑 참이슬이다.
처음처럼은 고기랑 먹으면
맛이라도 빨리 없어지지.
쨌든,
연애의 끝은 필연적으로 이별이다.
난 결혼은 무덤이라 생각하는 사람이라
죽는 거 아니면 이별이니까,
언제해도 끝은 구린게 소주랑 비슷하다.
근데 그 구린걸 왜 자꾸 반복했냐고?
20대 초반의 어느날,
세상의 모든 감정을 느껴보고 죽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이 가도
무조건 찍어먹어본다.
똥이 내 취향일때도 있었다.
그래서 그냥 했다. 연애.
나는 글쓰는 사람이 될테니까
모든 슬픔과 좌절은 상처가 아니라
글감이 되어줄거라고 믿었다.
그리고 이렇게 마침내 나의 글감이 되어주었다.
떠올리기만해도 화가 명치까지 끓어오르고
손끝, 발끝에 열 뻗치게 하는 기억도
언젠가 내가 먹고 살게 해줄 원고 뭉치로
재탄생 해줄거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 쓰게 남을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채 연애를 하고 있다.
소주도 달때가 있다.
오미자 원액이나 깔라만시에 타먹으면.
연애도 그렇게 내 기억을 미화시키고
상처도 희석시키면 달게 느껴진다.
그 쓰고 가끔 달았던 연애사를 펼쳐보려고 한다.
남의 애인 자랑은 듣기 싫어도 욕은 재밌는 것처럼
내 이야기도 100프로의 욕지거리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니 기대해주시길.
(우리 귀여운 고영보고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