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한 자의 마지막 변론
취하는 사람을 싫어한다. 매우 매우.
취한 사람 특유의 어디를 보는지
알 수 없는 뱅글뱅글 돌아가는 눈빛과
알아 들을 수 없는 중언부언들..
그리고 최악은 술 취해서
한 짓을 기억까지 못한다면,
두말도 않고 손절감이다.
나는 취하면 그냥 잔다. 자거나 집에 간다.
취하면 술이 더 들어가질 않는다.
술을 즐기지 않아서 다른 것에
취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나?
취하고 싶은데 술은 죽어도 안 들어가니까
그래서 이왕이면 조금이라도
더 자극적이고 원색적인 것을
경험하려는 경향이 있나?
그런 경험을 끌어 모으기 위해
의식적으로 행동한 적도 있긴했다.
독배를 마시듯 나이를 홀짝이며
나름대로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술 아닌 것에 만취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돌아보면
연애, 글, 성향에 잔뜩 취해
혼미하게 보내다가도
그 틈새를 채워주는 일상으로
해장하는 인생은 나쁘지 않았다.
내 순간들의 파편을 모아보며
끝없는 자기검열이 있었고 겁도 났다.
비난 받으면 어떡하지,
무가치한 쓰레기 조각이 되면 어떡하지.
쓰면 쓸수록 의문이 들었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쓰면서
뭘 얘기하고 싶은걸까?
끊임없이 머릿속에 물음표가 생겼다.
내 인생을 보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또라이? 별것도 아닌 얘기 길게 하네?
인터넷 픽셀 낭비하네?
그리고 떠오른 한 단어는 ‘그냥’ 이었다.
그냥 태어난 것처럼
이 글도 그냥 쓰였다.
그냥 이렇게 살던 사람이
그냥 쓴 글이다.
따뜻한 맥심커피처럼
마일드함과 감기는 맛의
산문들이 많은 가운데서
여기 이런 사람이 살고 있다!!!
이런저런 짓들을 하며 잘도 숨쉬고 있다!!
하고 존재증명을 하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내 기억을 더듬고
지나온 사람을 떠올리고
그들과 함께 했던 순간들을
주워섬겨보며 현재와 흐를 시간들을
기대하게 되었다.
언제 또 혀가 쪼개지는 것 같은
쓴맛에 홀딱 빠지게 될까 싶다.
마조히스트로 잠시 살아보니
고통도 즐기게 된 걸까?
여기까지 읽어준 여러분이 있다면,
내 존재가 여기 있다는 것을
한번 더 알게 되었으니
매우 매우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뇌와 오감을 물렁물렁하게
만들어줄 주(酒)종을
오늘도 찾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