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디아나 존스, 최후의 성전(1989)
고소한 팝콘과 오징어 냄새, 큰 컵에 얼음이 가득 담긴 콜라, 영화 시간을 기다리며 가까운 오락실에 들어가서 하는 게임 한 판, 연인과 손을 꼭 잡고 볼 때의 두근거림까지.
영화를 보는 것도 재미있지만, 영화관을 가는 것은 그 자체로 상당히 설레는 일이다.
처음 영화관을 간 것은 <애니(1982)>가 개봉했던 1986년이었다. 무려 35년 전 서울 아시안게임이 열렸던 해, 요즘 어린 친구들에게는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일 듯하다.
그러니까, 나의 첫 영화관은 <애니>를 상영했던 대한극장이다.
물론 나는 영화관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고, 얼마 전에 엄마에게 물어봐서 들은 이야기이다.
서울 충무로에 있는 대한극장은 1958년 개관했고, 2011년 재개관하여 지금은 11개의 상영관이 있다고 한다. 오래된 극장이니까 당연히 없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으로 찾아보았지만, 인터넷에 검색 결과가 떡 하니 나오니 반가웠다.
옛날에는 아침마다 신문을 받으면, TV 편성표를 정독하고 형광펜으로 표시해두는 게 나름 중요한 일과였다.
TV에서 방송해주는 영화를 볼 때도 마찬가지다. 특히 설이나 추석 같은 연휴에는 하루에도 몇 편씩 영화를 방영했다. 그럴 때면 꼼꼼히 시간과 채널을 확인하고, 그 시간에 맞추어 영화보기를 기다리곤 했다.
이젠 TV 채널이 하도 많다 보니, 24시간 어느 시간대에도 영화를 볼 수 있다.
다만 그 영화가 내가 보고 싶은 영화인지, 이미 봤던 영화인지, 전혀 듣도 보도 못한 관심 밖의 영화인지에 따라 영화를 볼 때도 보지 않을 때도 있을 뿐이다.
TV에서 하는 영화는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영화의 시작부터 보지 못할 때가 태반이다. 그래서인지 보고 싶었던 영화를 TV에서 하면, 왠지 중간부터 보는 것은 꺼려져서 오히려 포기하게 된다. 다음에 제대로 처음부터 봐야지 다짐하면서 말이다.
반면 전에 재미있게 봤던 영화는 다시 한번 볼 때가 많다. 이야기의 흐름을 이미 아는 상태라 중간의 어느 부분에서부터 봐도 부담이 없고, 재미있던 것은 대부분 또 봐도 재미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도 TV에서 그렇게 <인디아나 존스>를 다시 보게 되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엄마, 아빠와 온 가족이 함께 영화관에서 본 처음이자 마지막 영화가 바로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중 하나였다.
이 시리즈가 하도 많다 보니 정확히 몇 편이었는지는 금방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만 시기상 <애니> 이후였고, 강남 쪽에 있는 영화관에서 봤으니 그 근처로 이사 온 다음인 걸로 예상된다. 우리나라에서는 1편인 <레이더스(1981)>가 1982년, 2편인 <마궁의 사원(1984)>이 1985년 개봉했으니, 내가 본 인디아나 존스는 아마 3편인 <최후의 성전(1989)>이 아닐까 싶다.
자그마한 영화관, 맨 뒷자리에 네 식구가 쪼르르 앉아서 영화를 봤다.
어두컴컴한 영화관은 몇 번을 가도 익숙해지지 않아 조금 무서웠고, 제일 끝자리인지라 뒤에 사람들이 없고 바로 벽이 있는 것도 왠지 무서움을 더했다. 불 꺼진 영화관은 어두워 바닥도 잘 보이지 않았고, 혹여나 발 밑으로 쥐가 지나가지는 않을까 혼자 상상하며 겁먹기도 했다.
마침 영화 속에서 쥐떼가 나오는 장면이 있었는데, 얼굴 위로 쥐가 지나가는 것이 어찌나 징그러웠는지. 두 시간이 넘는 영화 내용 중 제일 인상에 깊이 남은 부분이자, 30년이 넘도록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한 장면이다. 얼마 전 나보다 적어도 두세 배는 기억력이 좋은 동생과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 역시 "쥐 엄청 많이 나온 영화잖아"라고 말해, 둘이 한참 웃기도 했다.
초록 인터넷 검색창에 "인디아나 존스, 쥐떼"라고 검색해보니, 바로 나온다.
나의 추억 속 영화는 3편이 확실하다.
<인디아나 존스 - 최후의 성전>은 감독이 무려 스티븐 스필버그(1946~), 주인공이 해리슨 포드(1942~)이다. 지금은 그의 매력을 충분히 알지만, 초등학생의 눈으로 봤을 때 그는 이런 모험 영화의 주인공이라기에는 뭔가, 아니 좀 많이 부족해 보였다. 젊고 잘생기지도 않았고, 그저 느끼한 아저씨랄까. 당시 그의 나이가 48세였고, 아빠보다도 나이가 많았으니 그럴 만도 했었네 싶다.
오히려 인디아나 존스의 아버지 헨리 박사 역의 숀 코네리(1930~2020)가 훨씬 멋있었다. 그냥 할아버지 같기도 했지만, 뭔가 귀엽기도 하면서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엄마도 숀 코네리는 젊었을 때보다 나이 들어가면서 더 멋있다고 하셨다.
작고 사소한 것이라도 엄마와 같은 생각을 가질 때면, 혼자 그게 그렇게 뿌듯하다. 엄마에게 인정받는 기분이라고 하기에는, 이 나이 먹도록 여전히 어린아이처럼 엄마의 관심과 애정을 갈구하는 것 같아 내 모습이 작아 보이기도 하지만. 단지 나의 엄마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존경하고 닮고 싶은 사람과 내가 조금은 통하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하여튼 좋다.
이번에 다시 한번 이 영화에 대해 찾아보면 알게 된 사실은 어린 인디아나 존스 역으로 리버 피닉스(1970~1993)가 나왔다는 것이다. 반항기 있는 청춘의 상징이자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한 배우.
나는 리버 피닉스가 나왔던 영화들 <스탠바이 미(1986)>, <허공에의 질주(1988)>, <아이다호(1991> 등을 하나도 보지 못했다. 나중에 보려고 아껴둔 느낌이랄까. 그런데 이미 초등학교 때 그가 나온 영화를 나도 모르는 새 봤다니...
'아빠와 본 영화가 이것뿐이었나?'
<인디아나 존스>를 다시 보면서, 문득 든 생각이다.
쎄한, 아니 두려운 느낌이 들었다.
엄마에게 물어보니, 아마 그런 것 같다고 답해 주셨다.
맙소사. 아빠와 못해본 것들이 생각날 때마다 가슴 아팠는데, 영화관에서 함께 영화를 본 것조차 초등학교 때의 이 영화가 유일무이했던 그 한 번이었다니.
같은 사실이지만, 동생은 긍정적으로 추억했다.
"그래도 그때 엄마, 아빠랑 영화관 가서 영화 보는 친구들 거의 없었어."
그건 맞다.
영화관뿐 아니라, 우리 가족은 매주 주말마다 놀러 다녔다. 공원, 유적지, 박물관, 전시회 등등.
요즘은 아무데서나 불을 사용하거나 요리를 하는 것이 제한되지만, 예전엔 계곡이나 가까운 야산에 가서 버너로 밥해먹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스케치북과 크레파스도 필수였다. 뭐 그렇게 그리고 싶은 것이 많았는지, 놀러 갈 때면 항상 바리바리 그림도구를 챙겨갔다.
이도 저도 안 갈 때는 할머니 댁에 갔다. 할머니 댁은 단독 주택으로 앞뒤에 마당이 있고, 본채와 따로 있는 별채도 있었는데 그땐 사람은 살지 않고 광(창고)으로 썼기에 온갖 오래되고 흥미로운 물건들이 가득했다. 안방에는 자그마한 사다리 위쪽으로 이어진 다락방이 있어 그 어느 공간 못지않게 신비롭고 재미있었다.
여유 있는 형편이 아니었음에도 부모님은 우리를 위한 좋은 경험과 추억을 한 아름 안겨주셨다.
요즘이야 아이들을 위한 체험학습이나 다양한 시설들이 많지만, 그 시대만 해도 주말마다 놀러 다니는 친구들은 주변에 흔치 않았다. 생각해보면 그땐 토요일까지 정상근무였는데 딱 하루 쉬는 일요일마다 멀리까지 운전하고 놀아준 아빠도 너무 피곤했을 테고, 온갖 먹거리 음식재료며 애들이 원하는 자질구레한 물건들까지 다 챙겨서 매번 짐만 한 보따리씩 싸던 엄마도 너무 힘들었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내 몸 하나 간수하기도 힘들고 귀찮은데, 어떻게 그걸 다 하셨을까? 어릴 땐 밖에서 사이다 하나, 초코우유 하나 쉽게 사주지 않고 집에서 싸온 물을 주는 엄마를 원망하기 바빴는데. 돌아보니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어마어마한 행복한 유년시절을 선사해주셨다.
아빠는 영화를 좋아하셨다. 딱히 자신을 위한 취미도 없고 돈도 쓰지 않았던 아빠는 답답할 때면 쓱 나가서 동네 한 바퀴 돌고 세상 구경하다가 비디오테이프를 한두 개 빌려오셨다.
내가 학창 시절에는 비디오테이프를 빌려다 보는 것이 영화를 보는 주요 방법이었는데, 우리 집도 한동안 꽤 많은 비디오를 빌려봤었다. 그런데 막상 그렇게 빌린 테이프도 아빠와 함께 봤던 기억은 거의 없다. 내가 빌린 테이프는 엄마와 동생과 주로 봤고, 아빠는 늦게 퇴근해서 우리가 잠든 시간에 홀로 영화를 보셨기 때문이다. 혹여나 우리가 깰까 봐, 불도 제대로 켜지 않고 볼륨도 최대한 작게 해 놓고 영화를 보던 아빠의 모습이 떠오른다.
하루는 학교에서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고 왔는데, 아빠가 <귀여운 여인(1990)>을 보고 계셨다.
한창 그 영화가 유행이라서, 친구들 사이에서도 재밌다고 난리였다. 그래서 나도 보고 싶은 마음에 "와, 귀여운 여인이다." 하며 은근슬쩍 다가갔다. 그러자 아빠는 "애들 보는 거 아니야"라며 부드럽게 거절하셨다. 절대 강압적이거나 단호한 분위기는 아니었기에, 당찬 아이였다면 그냥 모른 척 버티고 봤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착한 아이 컴플레스인지 그저 소심했던 건지 몰라도, 난 바로 방으로 직행해 잠자리에 들었다. 거실을 지나며 단 몇 초 정도 스치듯 본 장면은 거의 영화의 초반이었는데, 줄리아 로버츠(1967~)가 거리에서 리처드 기어(1949~)를 처음 만난 부분이었다.
그 이후에도 이래저래 이 영화를 볼 기회를 놓쳤고, 결국 난 성인이 된 다음에나 보게 되었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니 아빠는 충분히 그렇게 얘기할 만하셨지만, 당시에는 '딴 친구들은 다 보는데, 나도 보고 싶은데...' 아빠가 원망스러웠다.
얼마 전에 이 얘기를 했더니, 엄마는 "아빠는 전혀 안 그런 거 같으면서, 은근히 보수적인 데가 있어." 하며 웃으셨다. 언제까지만 해도 난 무조건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사고방식이 좋은 거라고, 마치 그것만이 깨어있는 지성인 양 단정 짓기도 했다. 하지만 나도 모르는 새 생각이 바뀐 걸까, 나이가 들었기 때문일까? 갓 초등학생을 졸업한 딸에게는 좀 이른 영화라고 생각하셨던 아빠 마음이 이해가 간다.
영화관을 가는 것은 언제나 설렌다.
일상에서의 작은 탈출, 위로 같은 기분 때문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턴 그리움이란 감정이 더 우선이 되었다.
영화관에서 함께 영화를 봤었던, 그렇지만 더 이상은 같은 공간에서 영화를 볼 수 없는, 소중한 이들과의 추억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