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블리, 스틸(2008)
'여전히 사랑스럽다'는 제목에서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듯이, 노년의 로맨스를 다룬 영화다.
뒷부분에 엄청난 반전 내용이 있지만.
마트에서 일하는 노신사 로버트(마틴 랜도)는 우연한 계기로 이웃에 사는 메리(엘렌 버스틴)를 만난다.
통통 튀는 사랑스러운 그녀와의 첫 데이트를 위해 마트 사장의 조언을 얻기도 하고, 두 사람은 점점 가까워진다.
영화 중반부까지 보았을 때, '앗, 설마 이 영화...'
문득 얼마 전에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본 <장수상회(2014)>가 머릿속을 스쳤다.
엄마가 집중해서 영화를 보고 있는 사이에, 재빨리 검색해봤다.
역시나.
노년에 새로 만난 이들의 사랑 이야기가 아니었다.
두 사람은 아들, 딸까지 낳고 평생 백년해로한 부부였다. 남편이 치매에 걸려 잊고 있었을 뿐.
<장수상회>의 장수(조진웅)는 아들이었고, 금님(윤여정)은 성칠(박근형)이 사랑하는 그의 아내였다.
치매에 걸려 이들 가족에 대한 기억이 다 사라진 아버지 성칠을 위해 온 가족과 주위 사람들이 그에게 맞추어 일상생활을 해나갈 수 있게 배려한 것이다.
본의 아니게 영화 정보 프로그램을 통해서 <장수상회>의 줄거리와 반전을 알았는데, <장수상회>는 <러블리, 스틸>이란 원작을 리메이크했던 것이다.
그러나 난 입을 꾹 다물고 끝까지 모른 척하며 엄마와 함께 <러블리, 스틸>을 봤다.
엄마는 타인에 대한 공감과 이해가 아주 깊고, 세상 모든 안타까운 사연에 마음 아파하신다. 매사에 감성적이라거나 감정이 과잉된 것과는 다르다. 우리는 엄마를 '측은지심*(남을 불쌍하게 여기는 타고난 착한 마음)'이 과하다는 정도로 표현한다.
이것이 비단 사람에 그치는 것도 아니다. 동물, 환경, 하다못해 무생물에 이르기까지 그 대상은 끝이 없다.
그래서 가끔은 "엄마 딸도 누구 못지않게 고생하고 아프고, 엄청 불쌍해." 라면 농담 반, 진담 반 그만 좀 하라고 말리기도 여러 번이다.
영화를 볼 때도 몰입도가 엄청나다.
엄마가 영화를 볼 때 제일 많이 하는 말은 아마 이것일 것이다.
"어떡해..."
조금이라도 슬프거나 안타까운 장면이 나올 때 엄마를 슬쩍 쳐다보면, 이미 울고 있다.
아무도 모르게 은근슬쩍 눈물을 닦다가, 빨개진 눈을 들키고는 쑥스러워하는 엄마의 모습은 너무나 익숙한 패턴이다.
코로나 시대에 접어든 지도 3년이 다 되어간다. 이제는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었지만, 그간 많은 삶의 변화가 있었고, 특히 요양병원에서의 감염이 심각해 뉴스에서도 이를 자주 언급했었다. 난 그저 많고 많은 코로나 뉴스 중 하나라고 무심히 보아 넘겼지만, 엄마는 매번 너무 안타까워했다. 한 사람이 걸리면 퍼져나가기 쉬운 환경이고, 코로나 검사는 수시로 할 테고, 그러다 보니 환자들은 마음대로 외출할 수 없고, 가족들이 찾아오는 것도 제한되고.
예전에는 부모님을 직접 모시지 않고 요양병원에 방치한다는 부정적인 시각도 없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제는 좀 더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여지고, '나 역시 나이 들면 가겠구나.' 가끔 막연하게나마 생각한다.
엄마는 우리에게 짐이 되기 싫다는 말씀을 자주 하시는데, 그 때문인지 요양병원에 있는 노인들에게 더욱 공감하고 안쓰러워하신다.
그야말로 온 마을이 치매 할아버지 한 명을 보살피는 느낌.
이 영화를 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 한 명을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데, 과연 노인은 어떨까.
아이들을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인정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마음 그리고 정책과 복지까지, 아이들을 위한 정치, 사회적인 부분은 날이 갈수록 좋아지고 있다.
반면 노인들은 점점 늙고 병든, 쓸모없는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해가고 있다는 생각이 가끔 들 때가 있다.
노인은 경험이 많은 사회의 어른이고 공경해야 할 대상이라는 시대는 지난 지 오래다.
스마트폰, 키오스크(무인단말기) 같은 기계들은 노인이 한층 세상에 뒤떨어진 존재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노인들 스스로에게는 소외감을 불러일으킨다.
스마트한 세상에서 나고 자란 요즘의 MZ세대는 나이가 들어도 지금의 노인들만큼은 적응하기 힘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지금의 노인들이 더 답답하고 한심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이가 든다는 건 그것만으로도 몸이 예전 같지 않고 두뇌회전도 느려지며, 새로운 일이 버겁게 느껴질 수 있게 한다.
스마트폰이 처음 나왔을 때가 생각난다.
난 굳이 스마트폰의 필요성을 못 느낀 데다가, 비싼 금액도 부담스러워 주위의 다른 사람들보다 한참 늦게 스마트폰을 장만했다. 뭐가 뭔지 정신없고 어리바리한 나를 대신해 열 살도 더 어린 동생들이 앱을 깔아주고 사용방법을 알려줬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선배도 그들에게 스마트폰 기능을 묻고 배우기에 바빴다. 뒤늦게 생각해보니, 나도 그 선배도 핸드폰 개발회사에 다닌 경력이 있었다. 물론 스마트폰 이전 시대였지만, 핸드폰의 기반이 되는 프로그램이라던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는 동생들보다 훨씬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새로 나온 스마트폰이라는 기계의 작동법을 받아들이는데 그들보다 시간이 필요했다. 개발자의 입장과 제품을 사용하는 소비자의 입장 차이도 있겠지만, 그만큼 나이라는 건 의외로 많은 것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기도 하다.
물론 무조건적인 존중과 배려만을 원하며 꼰대 소리가 절로 나오게 하는 노인들도 있다.
벌써 20여 년 전의 일이다. 회사에서 밤샘을 하고 지하철 일반 좌석(노약자석이 아닌)에 앉아 졸고 있을 때였다. 어떤 할아버지가 지팡이로 내 어깨를 꾹꾹 찔렀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 비몽사몽 눈을 떴더니 큰소리를 치며 "어디 어른이 서있는데 어린놈이 앉아서 졸고 있냐"고 당장 일어나라고 하셨다. 무섭기도 하고, 사람들이 바라보는 시선이 창피하기도 하여 정신없는 와중에도 후다닥 일어났다. 청소년기를 지나 성인이 된 지 한참 후에도, 이런 비슷한 일들을 한두 번 겪은 게 아니다.
그런데 그건 나이라기보다 그저 그 사람의 인성 문제인 듯하다. 젊었을 때부터 예의 없고 이기적인 사람들이 노인이 됐을 때도 역시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아닐까?
이 영화를 보면, 주인공 할아버지가 참 부럽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데, 저 할아버지는 무슨 복일까.
치매란 병을 앓는 것 자체는 힘든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늙었을 때도 주위에 저런 사람들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욕심이 났다.
40대가 넘으면서 노안을 비롯하여 각종 노화현상을 겪고 있는 나에게 앞으로 남은, 늙고 병들고 결국 죽기까지 일련의 삶의 과정을 떠올리면 암담하고 갑갑할 때가 있다.
그러다가 이런 영화를 보면 '저게 가능하다고? 말도 안 돼.' 하는 한편, 나도 모르게 안도감이 스친다.
'나에게도 행복한 노년의 삶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
* 측은지심 : 맹자의 사단설에 나오는 말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어짊의 극치이다.
맹자의 사단설 중 4단은 측은(惻隱), 수오(羞惡), 사양(辭讓), 시비(是非)의 마음이다. 이는 인(仁), 의(義), 예(禮), 지(智)의 근원이 되며, 성선설(사람의 본성은 ‘선(善)’)이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