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티 오브 조이(1992)
감동적이라고 익히 들어왔던, 그래서 드디어 이 영화를 보는구나 기대하고 선택한 영화.
하지만 엄마와 나는 이 영화를 중간에서 멈추고, 보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도 계속 본 이유는 '그래도 해피엔딩이겠지, 설마 이렇게 끝나지는 않겠지' 하는 바람이었다.
이렇게 괴롭고 아픈 마음을 가진채 여기에서 멈추면, 더욱 안 좋은 기억으로만 남아있을 것 같아서였다.
<시티 오브 조이>는 '기쁨의 도시'라는 영화의 제목과는 달리, 영화 내내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의 삶을 보여준다.
의사 맥스(패트릭 스웨이지)는 자신의 환자였던 소녀의 죽음을 계기로 인도의 캘커타*로 떠난다. 또 다른 주인공인 하사리(옴 푸리) 역시 아내 그리고 세 명의 아이들과 함께 캘커타에 도착한다. 맥스는 거리에서 폭력과 강도를 당하며, 하사리도 사기를 당해 갈 곳 없는 신세가 된다. 하사리는 릭샤*를 끄는 일을 시작하고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여권을 잃어버린 맥스는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는 진료소에서 일하는 조안(폴린 콜린스)의 설득으로 함께 일을 하게 된다. 그러나 부와 권력으로 그곳을 장악한 보스와 그의 망나니 아들로 인해 갖은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
미국의 백인 의사와 인도인 릭샤왈라(인력거꾼), 상황이 너무도 다른 두 사람이 함께 어려움을 헤쳐 나가면서 그려나가는 우정이 인상적인 영화이다.
한편으로는 여전히 백인의 시선으로 본, 백인우월주의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선진국의 지식층 백인인 맥스로 인해 하사리를 비롯한 인도인들이 불평등한 사회에 맞서기 시작하는 이야기는, 크게 보면 미국의 히어로물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파워 오브 원(1992)>도 떠올랐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배경으로 주인공 PK가 인종차별에 맞서 성장하는 영화이다.
어릴 때 이 영화를 굉장히 재미있고 감동적으로 봤는데, 후에 이 영화를 통렬히 비판하는 글을 읽었다. 백인 한 명이 차별받는 수많은 흑인들을 구원한다는, 지극히 백인우월주의의 시각으로 만든 문제작이라는 것이다. 그 글에 충격받은 나머지 '이 영화를 좋아한 나는 반성해야 하나, 어디 가서 이제 이 영화를 좋다고도 말하면 바보 취급받으려나' 고민한 적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더 가진 사람이 그보다 못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삶, 맥스의 선택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용기다. 비판보다는 칭찬을 하고, 그 마음을 배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남을 도와주는데 기쁨을 느끼는 것은 결국 남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선택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들을 이기적이라고 비난할 수는 없다. 좋은 일을 하며 자신의 존재가치를 확인하면 또 어떤가.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보고 방관하거나 도망치는 사람이 대부분인 이 세상에서 부딪치는 길을 택한 맥스에게, 우월감에 젖은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아니냐는 비난은 가혹하다.
다만 '어떤 인종 혹은 어떤 민족이 뛰어나다, 못하다'고 이야기하는 시대는 이제 지났다.
부자라고 혹은 배웠다고, 나보다 못한 사람들은 무시해서도 안된다.
불평등은 탄생과 동시에 아니 그전부터 시작되는, 그야말로 평등하지 못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포레스트 검프(1994)>에서 그의 엄마가 하는 말처럼 "인생은 초콜릿 상자 같은 것"이니까.
내가 어떤 인생을 살 것인지는 내 의지와 노력의 여부보다, 애초에 신이 한 선택에 따라 결정되는 게 아닐까? 그가 내게 어떤 초콜릿을 쥐어주냐에 따라 씁쓸할 수도, 달콤할 수도 있지 않을까?
무신론자인 나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어쩌면 운명은 정해져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종종 들 때가 있다.
그런 마음이 들 때면 내가 뭔가를 잘하는 것도 내가 행복할 때도 좀 더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감사하게 된다.
이 영화의 감독은 롤랑 조페(1945~)로, 캄보디아 내전을 담은 <킬링 필드(1984)>, 남아메리카 원주민과 예수회 선교사들 사이의 이야기를 담은 <미션(1986)>으로 유명하다.
<시티 오브 조이>의 음악은 엔리오 모리꼬네(1928~2020)가 제작했다.
워낙 많은 영화음악에 참여한 거장이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은 역시 <시네마 천국(1988)>과 <미션>이 아닌가 싶다. 특히 <미션>에서 가브리엘 신부(제레미 아니언스)가 오보에를 꺼내 연주한 그 음악은 영화의 주제를 관통하는 힘을 가진다.
맥스를 연기한 패트릭 스웨이지(1952~2009)는 <사랑과 영혼(1990)>에서 죽어서까지 연인 몰리(데미 무어)를 지켜주는 순정남으로, <더티 댄싱(1987)>에서는 매력적인 댄서로 그 존재감을 알린 배우이다.
몇 해 전, 건강한 이미지의 그가 췌장암으로 58세의 나이에 유명을 달리했다는 소식은 충격적이었다.
하사리 배역의 옴 푸리(1950~2017)는 인도의 국민적인 배우로 영국에서 작위(대영제국 훈장)를 받기도 했다.
맨발로 무거운 인력거를 끌며 달리는 하사리를 보면, 현진건의 소설 <운수 좋은 날(1924)> 속 김첨지가 떠오른다. 손님이 끊이지 않고 돈도 많이 받은 운수 좋은 날, 김첨지는 아픈 아내가 먹고 싶은 설렁탕을 사 가지만 이미 아내는 세상을 떠난 뒤였다. 제목인 '운수 좋은 날'과는 다른 비참한 현실.
하사리에게는 '기쁨의 도시'가 아닌 고달픈 삶의 무대였던 캘커타.
인도 그리고 일제 강점기 시절의 우리나라, 시공간은 다르지만 두 세계가 이어져있는 듯하다.
영화 속의 두 주인공인 패트릭 스웨이지와 옴 푸리 모두 그리 많지 않은 나이에 우리 곁을 떠난 것이 아쉽지만, 그들 모두 진정한 '기쁨의 도시'에 있기를 기원한다.
더불어 김첨지의 아내도 좋아하는 설렁탕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그곳에 함께 있기를...
* 극 중 조안의 대사를 인용했다.
"인생은 고해라는 말이 있죠. 좌절과 희망 사이에서 표류하는.. 모두 다 그래요."
*캘커타(Calcutta)는 현재 전통 명칭인 콜카타(Kolkata)로 개명했다.
*릭샤(Rickshaw) : 인도 등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사용하는 교통수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