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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이 사람처럼

- 포레스트 검프(1994)

by 하늬

1. 시사회표가 뭐야?


생애 처음으로 받은 시사회 티켓.

이걸로 영화를 공짜로 볼 수 있다고?


영화관에 간 것도 손에 꼽을 정도로 몇 번 없을 때였다.

엄마 아빠 따라 초등학교 때 몇 번, 중고등학교 때도 학교에서 단체 관람할 때 빼곤 간 적이 있으려나?

친구들 대여섯 명이 모여 비디오테이프 한 개 빌려서 모여보던 시절에 영화티켓이란 학생들이 쉽게 사기에는 만만치 않은 가격이었다.


그러니 시사회가 당최 무엇인지, 왜 영화를 무료로 보여주는 건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공짜면 양잿물도 마신다'는데, 귀한 영화를 보여준다니... '감사합니다'지 뭐.


시사회표는 동생이 가져다줬는데, 무슨 이유가 있었는지 영화는 엄마와 나 둘이 가서 봤다.


<포레스트 검프>는 유명한 흥행작이지만, 그땐 시사회였기 때문에 개봉도 하기 전이었다.

당연히 주위에 이 영화를 본 사람도 없었고 덕분에 아무런 기대 없이 갔다가, 아주 재미있게 봤었다.

영화관 계단을 내려오면서 계속 영화 내용에 관해 엄마랑 이야기하면서 만족스러워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포레스트검프2.png <포레스트 검프> 포스터


2. 추억을 기억하다


얼마 전 동생이 문득 이때 이야기를 했다.


그때 내가 시험을 엄청 망치고 기분이 너무 안 좋아 보여서, 시사회표를 꺼내놓기도 눈치 보였다고.

분위기상 도저히 영화 보러 갈 것 같지 않은데, 표는 또 아깝고 겨우 어렵게 말을 꺼냈다고.

그런데 막상 영화를 보고 와서는 계속 재미있었다고 해서, 좀 웃겼다고 했다.


학창 시절에는 시험 한번 못 보면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으니 그랬겠지만, 지금은 영화를 봤던 기억만 있지 당시가 시험기간 끝난 직후였다 거나 시험성적이 안 좋았던 건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동생은 엄마를 닮아서 기억력이 뛰어나게 좋은데 반해, 난 그런 일이 있었는지조차 아예 기억을 못 하는 경우가 꽤 많다. 당사자인 나도 기억이 안 나는 나의 옛 친구들 이름까지 엄마는 기억하고 이때 이랬지, 저땐 저랬지 말씀하신다.

예전에는 그냥 사람마다 잘 기억하는 분야가 있다고 크게 의미를 두지 않고 넘어갔다.

그런데 지금은 엄마나 동생이 많이 부럽다.


아주 소소한 일상에서 아빠는 이런 말을 했었고,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놀러 가서는 이런저런 일이 있었고.

그런 작은 대화와 행동들이 내게만 없는 추억 같아서이다.

나도 동생처럼, 엄마처럼 그런 것들을 더 기억하고 있으면 좋을 텐데. 아무리 내 머릿속을 뒤져봐도 남아있는 건 몇몇 가지뿐, 소중한 추억이 1/10도 되지 않는 기분이다.



3. 에센셜리스트


학생 때부터 마흔이 넘은 지금까지 아침에 늘 늦잠을 자서 출근하느라 정신없지만, 가뭄에 콩 나듯 일찍 일어날 때가 있다.

그렇다고 정신이 맑은 상태는 아니라, 자기 직전에 끄고 옆에 두었던 리모컨을 주섬주섬 찾아 TV를 켠다.


그날도 그런 드문 아침이었다. 포레스트 검프가 막 시작했다. 완전 초반이었다.

'이렇게 처음부터 보기 쉽지 않은데' 하며 보기 시작했다. 어느새 엄마도 내 곁에 와서 같이 보셨다.


그런데...

'이 영화 뭐야?

포레스트 검프가 어눌하게 뱉는 거의 모든 말이 명대사잖아.'


고등학생 때 봤을 때는 코미디 영화라고 생각했다. 계속 뛰어다니는 포레스트 검프가 재미있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춤이 꼬마 포레스트의 영향을 받았다거나, 친구 버바를 구하려다가 전쟁 영웅이 되었다거나. 별다른 의도 없이 그가 묵묵히 뭔가를 한 것이 인류의 역사에 영향을 끼쳤다는, 세상의 모든 운이 그에게 따른 듯한 황당무계 하지만, 유쾌한 이야기 정도.

그야말로 영화라는 허구의 세계에서나 가능한, 전혀 현실성 없는 소설 같은 전개였다.


포레스트3.jpg <포레스트 검프> 스틸컷



하지만 삼십여 년이 지난 지금 다시 보는 포레스트는 마치 인생을 통달한 철학자 같았다.

아이큐 75인 그가 그 어떤 위인이나 성공한 사람보다 대단하게 다가왔다.


학창 시절에는 내가 어른이 되기만 하면 그야말로 멋진 커리어와 행복한 가정, 떼부자까지는 아니어도 여유로운 삶을 살게 되리라 기대했다. 그게 아주 당연한 일인 것처럼 말이다.

그때의 눈으로 봤을 때 포레스트 검프는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세상에 속한 사람이자 영화 속 가상인물일 뿐이었다.


지금에 와서 보면 '그래, 저렇게 살 수 있는데. 행복이 별게 아닌데... 나름 열심히 산 것 같은데, 그렇게 아등바등 살아온 결과가 겨우 이 정도라면, 대체 난 무엇을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여왔던 걸까.' 허무하다.


얼마 전 <에센셜리즘(2014)>이라는 책을 보았다. 부제는 '본질에 집중하는 힘'이다.

세계경제포럼에서 선정한 '젊은 글로벌 리더'로 뽑히기도 한 그렉 맥커운의 저서이다. 책의 전반적인 내용이 다 마음에 든 건 아니었다. 하지만 '본질적인 소수에 집중하라'는 메시지가 와닿았다.


그런 점에서 포레스트 검프는 우직하게 그때그때 주어진 하나의 일을 열심히 한 '에센셜리스트'이다.

머리카락과 수염이 덥수룩해질 때까지 달리고, 거의 묘기 수준으로 칠 경지까지 혼자 탁구를 하고, 스쿨버스를 태워 보낸 아들이 다시 학교를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그 자리에서 기다린다.


포레스트.png <포레스트 검프> 스틸컷


짧은 인생인데, 할 일은 늘 차고 넘치는데, 뭔가 한 가지를 이토록 사심 없이 느긋하게 여유로운 마음으로 할 수 있을까? 쉽지 않다.



4. 영화 속 나쁜 여자, 제니와 엄지


'영화 속 제일 나쁜 년' 캐릭터 중 제니(로빈 라이트, 1966~)가 최고로 꼽힌다는 얘길 들었다.


포레스트가 어린 날 스쿨버스 옆자리에 앉은 첫 만남 이후 한결같은 사랑을 바쳤던 그녀. 그에게 아들을 남기고,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안타까운 여인.

포레스트를 떠나 다른 남자와 함께했다가 다시 돌아오길 반복하는 그녀지만, '최악의 여자 빌런' 이라곤 생각지 못했는데 조금 의외였다.


포레스트1.png <포레스트 검프> 스틸컷


이현세의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을 영화로 만든, 이장호 감독의 <외인구단(1986)> 속 엄지가 더한 악녀라고도 한다.

중학생 때, 이 만화책을 보면서 너무 가슴이 아파 한동안 헤어 나오질 못했었는데. 그때도 엄지가 밉긴 했지만, 뭐 또 그렇게까지 나쁜 X 같진 않았는데. 이들이 1,2위를 다툴 정도로 나쁜 여자 캐릭터라니.


외인구단.png <외인구단> 스틸컷, 포스터



찬찬히 비교해보니, 이들은 비슷한 공통점이 꽤 많다.

엄지와 제니 모두 어린 시절에 운명의 상대를 만난다. 오혜성, 그리고 포레스트. 왕따를 당하는 그들은 따뜻하게 다가와주는 그녀들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게 된다. 남자는 여자에게 한결같은 순애보를 바치지만 여자는 다른 남자를 택한다.


주인공인 그들에게 등을 돌린다는 점에서 그녀들은 빌런이 되지만, 그녀들의 사정이 영 이해가 안 가는 바는 아니다. 물론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를 이용하고 버렸다가 다시 찾기를 반복하는 것이 옳은 행동은 아니다.

다만 제니는 포레스트를 모자라고, 사랑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녀를 비난하는 우리는 아니라고, 포레스트를 한 사람의 인격체로서 다른 이들과 동일하게 대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지능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와 조금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건 많은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가지고 있는 벽이고 편견이다. 때론 착하고 순진한 사람들을 기만하고 이용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게 강하다.

많은 남자들에게 상처 입고 그럴 때만 포레스트에게 돌아오는 제니지만 그렇다고 세상에서 보기 드문, 인성이 아주 못돼 먹은 악독한 사람은 아니지 않은가?



5. 엄마는 포레스트, 나는 제니


문득 내가 엄마를 이렇게 대하는 건 아닌가 싶어 소름이 돋았다.

겁 많고 소심한 나는 그 누구 앞에서도, 혹시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진 않았는지 눈치를 살핀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은 못되더라도, 최소한 나쁜 사람은 되기 싫은 마음이다. 사십여 년을 함께 커온 동생도, 연애기간까지 십오 년의 세월을 같이 한 남편에게도 마찬가지다.

그 사람이 기분 나빠하는 포인트를 알고 선을 넘지 않도록 하고, 의도치 않게 내가 하는 말이 그들의 마음을 건드릴까 봐 조심한다.


그런 내가 유일하게 막 하는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내게 가장 소중하고 사랑하는 엄마다.

사소한 일에도 하루에 몇 번씩이나 짜증을 낸다. 겉으로 티를 내지 않아도, 속으로라도 말이다.

그 이유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아니 이유가 될만한 것도 없다.

밥 먹었냐고, 아프진 않았냐고 나를 걱정하는 말에도 '아, 지겨워. 그만 좀 물어보지.' 싶고, 엄마가 나이가 들면서 귀가 살짝 어두워지셔서 내 말을 한 번에 못 들을 때도 순간 욱한다. 오히려 엄마가 눈치를 보며 잘 못 들었다고 다시 한번 말해달라고 하는데, 그럴 때면 단지 목소리를 높이는 것뿐 아니라 꼭 화를 한 스푼 넣어 말한다.


엄마가 늘 '우리 큰 딸은 사춘기도 모르고 지나갔다'고 남들에게 칭찬하실 만큼, 그래도 학창 시절에는 큰 사고 안 치고 속 안 썩이고 나름 착한 딸 코스프레를 잘한 것 같은데.

다 늙어서 사십춘기인지 뭔지, 나이 들수록 오히려 엄마한테 못된 짓이 늘어간다.

'내가 지금 이 모양 이 꼴로 사는 게 다 엄마 때문이야.' 라며 힘들 때면 엄마 탓을 하기도 한다.


어릴 땐 오히려 '내 인생은 나의 것, 내가 선택한 것에 내가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는데, 이젠 누가 뭐래도 내 삶에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할 중년이 되었는데도 어째 갈수록 더 난리다.

살수록 더 힘든 일은 많고, 내 맘 같지 않고, 의지와는 다르게 흘러가는 인생에 대한 원망이 오롯이 엄마한테 향하는 느낌이다.


사실은 알고 있다, 엄마 탓은 1도 없다는 걸.

세상에 어떤 누구도 내가 엉망진창인 때에도 변함없이 이렇게 나를 걱정하고 사랑하고 아껴주지 않는다는 것도.

그저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엄마는 화내지 않고, 다 받아줄 거란 믿음 때문일까?

'누울 자리 보고 발 뻗는다'는 게 괜히 있는 말이 아니다.

정작 화를 내야 될 때, 성질을 좀 부려야 할 상황에서는 찍소리도 못 하면서 그 모든 화火가 돌고 돌아, 당장은 아니더라도 쌓고 쌓아두었다가 결국 엄마에게 향한다는 게 맞다.

비겁하기 짝이 없는 나의 모습이다.


내가 제니와 다를 게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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