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리스마스 인 아프리카(2019)
넷플릭스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푹 빠져 있을 무렵이었다.
로맨틱 코미디를 한두 편 보다 보니, 비슷한 느낌의 영화가 줄줄이 추천되어 있었다.
내게 맞춤인 영화가 이렇게 많다니, 신세계였다.
거기에 또 하나, 제목에 "크리스마스"가 들어간 영화가 그렇게 많은 줄 처음 알았다.
그중 선택해서 본 것만 해도 <신데렐라의 크리스마스(2019)>, <크리스마스 캘리포니아(2020)>, <크리스마스에 날아갑니다(2020)>, <크리스마스 스위치(2018)>, <크리스마스 스위치2(2020)> 등 댓 개가 훌쩍 넘었다. 물론 <크리스마스 스위치(The Princess Switch)>처럼 원제에는 크리스마스란 단어가 들어가지 않는 영화도 있었지만.
동서양을 막론하고 크리스마스 하면 왠지 로맨틱한 감성이 느껴지는 것이 이렇게 많은 '크리스마스' 로맨스 영화가 있는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좋은 것은 오래가지 않는 법인지, 언젠가부터 넷플릭스에 흥미가 떨어졌다.
특히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영화는 우선적으로 제하고 영화를 고르게 되었다.
미리보기로 볼 땐 '와, 딱 내 취향이다.' 싶지만, 막상 보면 유치하고 지루하다 못해 맥 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차라리 유치한 건 괜찮다.
만화나 웹툰,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나는 유치한 내용도 상당히 즐기는 편이다. 물론 두고두고 기억에 남고 감동받은 인생작 중 만화가 상당히 많기 때문에, 만화를 싸잡아서 유치하다고 매도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만화는 아무리 심오한 내용을 담고 있더라도 중간중간 나오는 깨알 같은 유머가 매력이기에, 손발이 오그라들고 유치하다 싶은 장면 역시 즐겁다.
반면 엄마는 애니메이션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엄마와 내가 가장 호불호의 차이가 있는 장르가 바로 애니메이션이다. 엄마는 어린 시절에도 만화책도 잘 안 보셨다고 한다.
이제는 만화카페 같이 쾌적하고 취미 생활로 건전하게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많아졌지만, 내 학창 시절만 해도 만화방은 오락실과 더불어 학교에서 가지 말라고 단속했던 장소였다. 불량 청소년이 모이는 공간이라고, 괜히 돈을 빼앗긴다거나 안 좋은 일에 휘말릴 수 있다는 게 이유였다.
만화책에 눈을 뜬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그때 한창 <베르사유의 장미>가 선풍적인 인기였다. 몇몇 친구들이 학교에 가져와서 돌려봤는데 '와, 이런 엄청난 책이 있다니' 그야말로 황홀했다.
우리 집에는 글자만 빽빽한 한국문학전집, 세계문학전집이 책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고, 그림이 그려진 책은 이미 유치원 때 졸업했었다. 책을 워낙 좋아해 그런 책들도 충분히 재미있게 잘 봤지만, 만화책은 아예 다른 세상이었다.
뒤늦게 불이 붙은 나는 만화방까지는 차마 가지 못하고, 대형서점에 가서 <캔디캔디> 전 권을 다 읽었다. 만화책은 대부분 비닐로 쌓여 있는데 이미 나 같은 아이들이 많았는지, 비닐이 뜯긴 책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가 그것만으로 성에 안 차자, 친구들을 따라 못 이기는 척 만화방에 한두번 들렀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이어진 책장에 가득한 만화책들. 만화방에서 읽기에는 조금 무서워서 몇 권 빌려서 얼른 빠져나오곤 했다.
바른생활 FM인 엄마는 내가 만화책 보는 걸 상당히 못마땅하게 여기셨다.
중학교 3학년 때 만화책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어 함께 만화 전시회 겸 만화가 사인을 받으러 간 적이 있다. 2004년 송혜교, 비 주연의 드라마로도 제작된 <풀하우스>의 원작자인 원수연과 <굿바이 미스터 블랙>, <불새의 늪>, <이오니아의 푸른 별> 등의 작가인 황미나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그 사인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TV에서 보면 기분 좋고 반가운 정도의 연예인은 있지만, 팬레터 쓰고 콘서트 갈 정도로 열정을 바친 적은 없었다. 그랬기에 누군가에게 사인을 받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고, 그 이후에는 <그리스> 뮤지컬을 보고 난 후 엄기준, 김소현에서 받은 게 유일하다. 엄기준은 요즘은 <펜트하우스> 드라마로 유명해진 배우지만 그때는 TV에서는 보기 힘든 20대의 뮤지컬 배우였고, 김소현 역시 TV 방송에 활발히 출연하기 전이었다. 그들이 누군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저 예쁜 언니, 오빠에게 사인받는 것이 즐거웠다. 뮤지컬 공연 티켓값이 만만치 않다 보니 뮤지컬을 본다는 자체가 신났고, 큰맘 먹고 산 팸플릿에 이왕이면 사인까지 받아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학창 시절에는 만화책을 보는 게 죄짓는 것처럼 느껴졌다. 엄마는 고상하고 우아하고 교양 있는데, 나는 그렇지 못하다는 왠지 모를 열등감도 있었다. 머리가 굵어지면서 '부끄러운 게 아니다, 그렇게 숨어서 볼 일도 아니다'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대학에 진학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웬만하면 만화책은 부모님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 보려고 했다. 이미 내가 만화를 좋아하는 걸 다 아시는데도 쑥스러운 건 어쩔 수 없다.
애니메이션뿐 아니라 약간 만화 같고 엄마의 취향으로는 좀 유치하고 억지스럽다 싶은 영화는 혼자 본다. 엄마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새벽형 인간이기에 올빼미 체질인 나의 밤 시간은 비교적 자유롭다. 이렇게 홀로 영화를 본 후 엄마가 봐도 좋겠다 싶으면 같이 다시 한번 본다.
이미 봤던 영화는 어느 정도 검증이 되었기 때문에 엄마도 좋아하겠지 싶어 기분이 좋다. 내가 맛있게 먹었던 음식점에 같이 가서, 맛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랄까?
수많은 "크리스마스" 영화 중 엄마가 제일 좋아했던 영화는 <크리스마스 인 아프리카>였다.
부유한 남편과 대학 입학을 앞둔 아들과 함께 완벽한 삶을 살고 있던 케이트(크리스틴 데이비스). 그런데 아들이 대학으로 떠나는 날, 남편은 갑자기 그녀에게 이혼을 하자는 폭탄선언을 한다. 결국 남편과 함께 가기로 한 아프리카 여행을 그녀 홀로 떠난다. 그곳에서 우연히 엄마를 잃은 아기 코끼리를 만나게 된 그녀는 수의사로서의 경력을 살려 보호센터에서 일하게 된다. 함께 일하는 데릭(롭 로우)과도 점점 가까워진다.
다 키워 독립한 아들과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떠난 남편. 중년의 아내와 엄마라면 공감할 수 있는 다소 답답한 현실이 영화의 시작이지만, 자신의 일을 찾고 동물과 교감하며 행복하게 사는 주인공의 모습은 대리만족을 선사한다. 물론 나를 이해하고 사랑해주는 또 다른 사랑을 만난 것은 판타지를 완성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과 사랑보다 더욱 이루기 힘든 환상은 그녀가 아프리카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부와 안락함을 주는 도시생활을 버리고 광활한 대자연의 아프리카에 사는 삶을 선택하는 것은 아무나 하기 힘든, 그야말로 꿈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붙인 제목과는 달리 원제에는 "크리스마스"라는 단어가 없다.
<Holiday in the Wild> '야생, 자연에서의 휴가'라니 사람들에게 치이고 유독 쳇바퀴 같은 생활이 지긋지긋하게 느껴질 때면, 나도 한 번쯤 저렇게 떠나고 싶다.
하지만 '자연이 좋다, 나이 들수록 사람들 많고 복잡한 도시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뿐. 막상 자연 속 한적한 곳에 살 것을 상상하면 겁이 난다. 게다가 우리 식구는 모두, 아빠만 제외하고, 자그마한 강아지만 봐도 겁이 나서 순간 얼음이 된다. 사진이나 영상에서 볼 때는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실제 마주하면 그저 두렵기만 하다. 우린 그걸 유전의 영향도 어느 정도는 있다고 생각한다.
엄마가 꼬마일 때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커다란 개에게 물려 엄청 고생하셨다고 한다. 엄마는 그때도 개가 무서웠지만, 친구가 개 곁에 있으면서 "괜찮아, 내가 붙들고 있을게. 그리고 우리 개는 안 물어. 무지 순해." 라며 오히려 겁내는 엄마를 놀렸단다.
'동물 사랑하는 사람 중에 나쁜 사람 없다'는 말이 있다. 뉴스에 나오는 흉악범들 중에서도 반려동물이 있는 경우가 있으니, 이 말이 곧 진리라거나 사실은 아니다. 그럼에도 일상생활에서 이런 말을 꽤 자주 들을 수 있다. '동물을 좋아하면, 좋은 사람'이라는 정도에서 그치면 그나마 괜찮은데, 이 말을 다르게 해석하면 '동물을 싫어하는 사람은 별로다'가 되나 보다. 언제까지만 해도 동물을 겁내는 내가 잘못이고 틀린 것 같아, 괜찮은 척 안 무서운 척 애쓰기도 했다.
꼬마였던 엄마도 겁이 났지만 친구를 믿고 용기를 냈다. 얼른 개가 있는 마당을 지나 집안으로 들어가려고 신발을 벗는 순간, 뒤에서 개가 달려들어 엄마를 넘어뜨리고 물었다. 이후 광견병인지 파상풍인지 주사를 척추에 몇 번이나 맞았단다. 그 주사가 너무 아파 맞기 싫다며 숨어있다가 할아버지께 붙들려 억지로 병원에 갔었다고 한다. 엄마는 겁이 진짜 많은 편이다. 그냥 뒤돌아 나와 집에 갔을 법도 한데, 그땐 왜 굳이 친구 집에 들어갔는지... 속상하다.
우리 가족에게 동물과 가까이 더불어 사는 삶은, 적어도 아직까지는, 불가능하다.
강아지나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은 엄두도 내지 못하지만, 초등학교 때 금붕어나 올챙이를 집에서 키운 적은 있었다. 어항 속에서 있을 때는 밥도 열심히 주고 그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며 행복했지만, 올챙이가 커서 개구리가 되자 그야말로 온 집안이 난리가 났다. 개구리가 어항 밖으로 자꾸 뛰어나와 막아두었는데, 어느 틈새에 빠져나와 며칠을 보이지 않았다. 결국은 이불속에 납작하게 압사당해 죽은 개구리의 소식을 전해 듣고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이 영화 속 주인공 크리스틴 데이비스는 <섹스 앤 더 시티>에서 봤던 익숙한 배우이다.
캐리(사라 제시카 파커)의 세 명의 친구들 중 하나로, 비교적 얌전하고 가정적인 샬롯 캐릭터를 연기했다.
어떤 기사에서 캐리와 샬롯을 비교한 내용을 본 기억이 난다.
"누가 봐도 예쁜 샬롯을 찌질하게 묘사하고, 예쁘지도 않은 캐리를 끊임없이 '멋있다, 아름답다'며 드라마에서 내내 추켜준다. 이는 여성들이 자기보다 못한, 못생긴 친구들에게는 '귀엽다, 예쁘다'며 칭찬하고 막상 예쁜 친구들은 질투하고 깎아내리기 바쁜 것과 일맥상통한다."
나는 어땠나?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예쁜 친구건 그리 눈에 띠지 않는 평범한 외모의 친구건, 유독 예뻐 보이는 날이 있다. 그럴 때 예쁘다고 표현했다. 굳이 칭찬이란 개념도 아니다, 그렇게 보이니까 그렇다고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뿐.
물론 듣는 사람이 놀리는 것으로 생각하거나 진심으로 싫어한다면,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한다.
예를 들어, 내 동생은 외모 칭찬을 하면 유독 질색한다. 내 말이 놀리는 것처럼 들려서는 아니다. 거짓말이 아닌 거도 안다. 그저 딴 사람들 앞에서는 창피하고 괜히 욕먹을 수 있으니 자제하라는 뜻이다.
'누군가 귀여워 보이기 시작하면 끝'이란 말처럼 우락부락하거나 사나워 보이는 사람이라도 그 사람을 사랑하고 정이 들게 되면 예뻐 보인다. 내 눈에 진짜 예뻐서 그런 건데, 예쁘다고 말하는 것도 안되나 뭐.
물론, 일부러 나쁜 마음을 갖고 칭찬 아닌 칭찬을 하는 사람들도 때론 있다. 단지 여자들의 세계에서만 그렇다는 건 비약일 것이다. 누군가와 비교하고 질투하는 건 인간이라면 가지는 기본적인 감정이니까.
나에게 엄마는 세상 그 누구보다 귀엽고 사랑스럽다.
엄마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게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건방져 보일 수 있을지 몰라도, 하루에도 몇 번씩 "너무 귀여워."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엄마는 자신이 못나고 똑똑하지도 않다고, 어쩔 땐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스스로를 낮춘다. 반면 내 눈에는 예쁘고 멋있고 귀엽고 현명하고, 내게는 없는 좋은 거란 좋은 건 다 가진 완벽한 사람이다. 엄마는 늘 민망하다고, 그러지 말라고 하지만 콩깍지가 씌운 건지 그렇게 보이는 걸 어쩌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