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의 시대다. 부정은 뒤로 물러나 자취를 감추고 스스로 얼굴을 은폐한다. 감춰진 부정성의 얼굴은 은밀히 불안을 내보이며 보이지 않게 폭력을 실행한다. 폭력은 부정의 인식이 아니라 오히려 긍정의 태도에서 비롯된다. 개인의 우울과 집단의 퇴행은 세계를 긍정하는 가운데 가면우울(假面憂鬱)을 통해서 드러난다. 은폐된 불안과 폭력에 포위된 인간은 마땅히 응시해야 할 시선을 잃어버리고, 세계를 보는 눈도 빼앗긴다.
멈추지 않는 전쟁과 위험에 처한 평화에 대해 예민한 감각으로 경고해 온 한국화가 송인. 그는 이번 개인전 <불완전에 대한 발견>에서 인간의 심리적, 관계적, 존재론적 불완전함을 주제로 독자들과 만난다. 신촌 아트레온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이번 전시는 작가가 그간 품어온 상실과 분절된 의식, 감춰진 진실과 현실 응시, 실존과 허상이라는 문제의식을 담은 가면 인물상, 페르소나 시리즈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얼굴은 사회적 환상이자 개인의 상처다. 인간 내면 그대로가 아닌 어그러진 욕망의 기획이자 사회적 허상이 태어나는 공간이다. 작품 <페르소나-실존과 허상>은 잘 다듬어진 가면과 그 안에 숨겨진 얼굴이 나란히 구성되어 있다. 실존과 허상은 늘 곁에서 공존한다. 작가에게 얼굴은 융(C.G. Jung)이 지적한 대로 "우리가 누구인지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우리에게 누구이기를 기대하는가를 보여주는 페르소나"이다. 작가가 마주한 시대의 얼굴은 잘 다듬어진 가면이자 허상이다.
그러나 한편 얼굴은 세계에 대응하는 신체이자 분절된 의식을 성찰하는 계기다. 작품 <분절된 의식-기억의 편린>에서 피에로 인간의 의식과 손은 분절되어 있고, 그의 모자에는 시계와 나침반, 책과, 열쇠 같은 기억의 단초들이 매달려있다. 파괴되고 단절된 의식에 대응하여 시간과 역사, 지혜와 예술이 인간을 이끈다.
작가는 "불완전함에 대한 인식은 인간이 스스로 초월하고 변형할 가능성을 내포한다"고 말한다. 불완전에 대한 발견이 있을 때만이 인식을 잃어버린 눈과 단절된 의식은 마침내 불안에 포획된 내면을 응시하고 파편화된 기억을 초월하는 계기로 전환된다.
돌이킬수없는-삶의기록들, 장지 먹 수정테이프 콩테 아크릴, 194x130cm, 2024
얼굴은 본질적으로 저항이다. 매끄럽지 않은 무의식이다. 굴곡진 희망과 미끄러지는 비명(悲鳴)이 공존하는 장소다. 작품 <돌이킬 수 없는-삶의 기록들>은 130여명의 얼굴 모두 진한 슬픔이 묻어 나고 강력한 상실감으로 채워져 있다. 상처와 불안, 현실의 굴레에 저항하는 슬픔과 상실 감각은 오히려 미끄러지듯 다가와 현실에 대한 사유와 인식을 이끈다. 그렇기에 송인 작가에게 작품은 "진실을 마주하고, 실재와 허상이 공존하는 현실을 성찰하는 계기"이다.
아름다움이란 희망과 절망 사이 틈새를 발견하는 정확한 인식에 다름 아니다. 예술은 감각도, 의식(意識)도 아니다. 날카롭고, 빛을 잃지 않는 예술가의 인식 자체다. 시대와 현실, 인간 내면의 빛과 어둠을 성찰해 온 작가 송인과 그의 작품 속 페르소나에게 안겨야 할 아름다움에 대한 정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