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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smine Nov 19. 2023

76. 1주일을 사는 법

―1년 52주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오은 시인의 ‘1년’이란 시를 만났다. 기발한 발상을 일상의 언어로 풀어낸 ‘1년’은 한 해 달력이 몇 장 남지 않은 지금 지나온 10개월여를 돌아보게 했다. 새해 아침에 세운 한 해 목표를 향해 힘껏 날려 보낸 부메랑은 어디에도 꽂히지 못하고 빈손으로 내게 돌아오고 있다. 그래도 새해가 되면 또 원(願)을 세우고 그 목표를 위해 한 바가지의 땀과 한 스푼의 눈물을 흘릴 것이다.   

   

내가 성인이 되고 맞이한 수많은 1년이 주르륵 눈앞을 스쳐 갔다. 열여덟 대학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40년 세월 동안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해는 몇 번이나 있었을까. 주말 내내 마음이 널을 뛰었다. 이럴 땐 집을 나서 걷는다. 걷다 보면 마음의 갈피가 잡힌다.     

 

나는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샤방샤방한 미래를 꿈꾸는 능력이 없다. 그래서 미래를 마냥 낙관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부럽다. 지금 발 담그고 있는 현실은 내가 할 수 있는 영역보다 어찌할 도리가 없는 영역이 압도적으로 넓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절망에 매몰되지 않을 수 있는 건 시를 읽는 마음 덕분이지 싶다. 오은 시인의 ‘1년’은 한 해가 저물어가는 겨울날, 내 옆의 사람과 어깨를 겯고 함께 걸어갈 용기를 내게 한다. 

    

              1년

                                  오 은

1월엔 뭐든지 잘될 것만 같습니다

총체적 난국은 어제까지였습니다

지난달의 주정은 모두 기화되었습니다

                :

        < 중 략 >

8월은 무던히도 무덥습니다

온갖 몹쓸 감정들이

땀으로 액화되었습니다

             :

      < 중 략 >

다시 1월, 

올해는 뭐든지 잘될 것만 같습니다

1년만큼 더 늙은 내가

또 한 번 거창한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2월에 있을 다섯 번의 일요일을 생각하면

각하(脚下)는 행복합니다

나는 감히 작년을 승화시켰습니다                    <부분 발췌>    

 

오은 시인의 ‘1년’은 언뜻 무기력한 듯 보이지만 그의 내면에선 치열한 암투가 벌어지고 있음이 느껴진다. 과연 시인만 그럴까. 2023년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어느 한쪽에선 전쟁이 끊이지 않는 지구 위 우리의 일상은 마냥 봄날일 수만은 없다.  

    

그런데도 도서관 한쪽에서 시를 읽고 글을 쓰는 이유는 우리가 발 딛고 선 땅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질문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아무런 의문도 없이 살아가는 건 더 큰 낭패를 만나는 지름길이다. 불행이 닥쳤을 땐 물론이고 행운이 계속될 때도 내가 쌓은 덕에 비해 과분하진 않은지 자문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에게 질문하는 법을 잊었을 때가 바로 불행에 자리를 내주는 순간이라는 건 요즘 매스컴을 도배하는 뉴스가 잘 알려준다. 아직도 세상에 백마 탄 왕자(공주)가 있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우리의 일상은 오은 시인의 ‘1년’처럼 지리멸렬한 시간들을 견디다 어느 하루 잠깐 충만한 순간을 만끽하는 데 가까울 것이다. 이 시를 읽다 내 생의 무수한 ‘일주일’을 돌아보게 됐다. 지난해 회사를 그만두기까지 무려 33년이란 긴 세월 동안 일주일 단위로 출퇴근을 반복해온 지난날을 돌아보며 ‘일주일’이란 시를 썼다. 

     

                              일주일

                                                          김 정 희     


월요일, 빈속에 텅 빈 머리를 매만지며 새벽 출근을 합니다

카페인에 기대 덜 깬 잠을 쫓으며 컴퓨터 화면과 독대합니다    

 

화요일, 막막함이 몰려옵니다

나의 시간과 상사의 시간은 전혀 공평하지 않게 흘러갑니다   

  

수요일, 체념에 대해 생각합니다

그러다 아주 간혹 내려놓음의 가치를 알아채기도 합니다  

   

목요일, 내가 누군지, 여긴 어딘지 혼란스럽습니다

그래도 해가 지면 가야 할 곳을 잘 찾아갑니다     


금요일, 왠지 행운의 여신이 나를 외면하지 않으리란 확신이 듭니다

들뜬 마음은 지갑도 깃털처럼 가볍게 만듭니다     


토요일, 내게 남은 시간이 있음에 안도합니다

안도감은 가끔 침대 위에서 자정과 정오를 헷갈리게 합니다


일요일, 시곗바늘에 매달려 기도를 합니다

시계가 제 갈 길을 가듯 나도 그럴 수 있다고 믿습니다  


월요일, 아슬아슬 쌓여가던 일 폭탄이 터집니다

지난 일주일이 그랬듯 이번 일주일도 무사할 것을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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