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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smine Mar 03. 2024

83. 당신의 숲은 어떤가요?

―‘봄, 여름, 가을, 겨울’

          봄, 여름, 가을, 겨울

                                                      이 경 임     


  새가 날아갈 때 당신의 숲이 흔들린다  

   

  노래하듯이 새를 기다리며 봄이 지나가고

  벌서듯이 새를 기다리며 여름이 지나가고

    

  새가 오지 않자

  새를 잊은 척 기다리며 가을이 지나가고   

  

  그래도 새가 오지 않자

  기도하듯이 새를 기다리며

  겨울이 지나간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무수히 지나가고     


  영영 새가 오지 않을 것 같자

  당신은 얼음 알갱이들을 달고

  이따금씩 빛난다     


  겨울 저녁이었고 당신의 숲은

  은밀하게 비워지고 있었다                       <시 전문>


지난해 2월 시를 놓친 지 40년 만에 시 수업을 수강했다. 어디에 두어야 할지 알지 못할 추운 마음을 안고 찾아간 강의실. 기대 이상으로 좋은 교수님을 만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보내고 다시 3월을 맞았다. 지난주 수업 과제로 받아 든 이경임 시인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은 마치 내 마음속 또 다른 나의 이야기 같았다.

     

나는 내 안의 나를 ‘당신’이라 칭한다. ‘새가 날아갈 때 당신의 숲이 흔들린다’는 구절은 시가 내 품을 떠나던 순간의 느낌일 것이다. 열아홉 시절 시 동아리 남학생과의 연애를 우려한 엄마의 성화로 시와의 인연을 놓치고 말았다. 그땐 어디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했다. 적성에 맞지 않는 이과 공부와 생기발랄한 동기생들에 대한 이질감은 어린 나를 한없이 작게 만들었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하지도, 좋은 강좌가 널려 있지도 않던 시절이었다. 누군가에겐 아날로그의 감성으로 기억될 대학 새내기 시절이 내겐 단절과 상실의 느낌으로 남아 있다.    

 

학교를 졸업하고 내가 원하는 일을 하게 되면서 생기를 되찾았다. 주 6일 근무하던 시절 일요일 저녁이면 월요일이 기다려졌고 야근조차도 즐겁기만 했다. 일복까지 타고나 어딜 가도 일이 많았다. 끌어당김의 법칙이 작용한 건지 같은 회사를 다니는 데도 일복 없는 사람은 희한하게 일을 피해 갔다. 때론 힘에 부치기도 했지만 그 일복이 싫지 않았다. 그러다 엄마의 와병이 길어지면서 내 건강까지 나빠져 회사를 그만두게 됐다.


처음엔 건강도, 일도 놓친 내 상황이 너무 절망적이었다. 어느 날 20년 다닌 회사에서 싸 온 짐꾸러미 속에서 귀퉁이가 삐져나와 있던 시모음집을 펼쳤는데 기형도 시인의 ‘빈집’이 눈에 들어왔다. 시를 읽는데 마음이 이상했다. 낯설기도 하고 설레기도 한 그 마음은 지난해 2월 시 수업으로 나를 이끌었다.

   

시를 놓치고 40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보내고 다시 시를 만났다. 시 수업 첫 주엔 동시 같은 시를 써놓고는 ‘노래하듯이 다음 시를 기다리며 봄을 보냈다’. 몇 주가 지나자 동시 같은 시조차도 내게 와 주지 않았다. ‘벌서듯이 시를 기다리며 여름이 지나갔다’. ‘시가 오지 않자 시를 잊은 척 기다리며 가을이 지나갔다’. ‘그래도 시가 오지 않자 기도하듯이 시를 기다리며 겨울이 지나갔다’. ‘영영 시가 오지 않을 것 같자 나는 얼음 알갱이들이 달고 이따금씩 빛난다’. ‘겨울 저녁이었고 나의 숲은 은밀하게 비워지고 있었다’.


이경임 시인의 시에서 ‘새’를 ‘시’로 바꾸면 시를 향한 내 마음처럼 읽힌다. 지금 내 마음은 허무하게 비어 있는 게 아니라 충만한 시의 봄기운을 채우기 위해 은밀하게 비워지고 있다. 봄기운이 무르익으면 그렇게 비워진 내 숲속으로 시가 새처럼 날아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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