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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끝찡 Oct 30. 2019

아버지도 애쓰고 있었다

행복은 사소한 것에서 느낀다



 친한 동생의 부친상 때문에 밀양으로 가게 되었다. 저녁 6시가 무렵 서울에서 나섰고 10시 정도가 되어서야 밀양에 도착했다. 장례식을 미리 경험해서라 장례식장은 항상 첫날에 가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하는지 혹은 끝난 후 어떤 것들을 해야 하는지 상주로서 체력관리 등등 다른 사람들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장례식에서는 내가 경험했었던 것들을 이야기해주며 아팠던 과거를 다시 한번 치유한다. 위로를 하면서 스스로 힐링되는 신비로운 경험을 하기도 한다. 


 조문을 마친 후 대구 집으로 가서 자려했다. 동생에게 전화를 했더니 와이프랑 싸워서 아버지 집에 가서 자라고 한다.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 아버지 집으로 갔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항상 술을 드신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는다고 한다. 누군가와 같이 술을 드시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혼자 새벽까지 드시고 외로움에 나에게 전화를 하신다. 빨리 엄마 옆으로 가고 싶다며, 힘들다고 말씀하신다. 이게 한 두 번이면 같이 슬퍼하며 위로의 말을 건네겠지만 서너 번이 넘어가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되어버린다. 그래도 나는 내가 자는 한이 있더라도 아버지의 술주정 전화는 받아야만 한다. 


 아버지와 불편했던 적도 있었기에 아버지와 자는 것이 좀 껄끄럽긴 했다. 그래도 부친상 장례식에 다녀와선지 아버지랑 같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수면제를 복용하고 일찍 잠이 들었다. 




새벽 여섯 시, 아버지가 옷을 입고 어딘가 가신다. 아버지께 물었다. 


"아버지 어디 가요?"

"수영장"

"수영장?"

"응..."

"언제부터 다녔어?"

"보름 됐다..."


 갑자기 왈칵 눈물이 나는 걸 겨우 참았다. 겨우 수영장을 다닌다는 것 하나 때문에 이렇게 기분 좋은 감격을 느낄 수 있을까? 아버지도 혼자 많은 노력을 하시는구나. 그 조금의 노력 하나로 이런 감동을 받을 수 있구나 싶었다. 아버지가 수영장 다녀와서 같이 아침을 먹자고 했다. 아침을 먹고 가려고 했으나 기분 탓에 아버지 가게에 들렸다가 점심까지 먹고 나왔다. 점심 후 어머니 산소에 갔다. 산소 가는 길에 기분 좋게 개나리가 폈다. 산소에서 내려오는 길에 항상 눈물을 머금고 내려왔는데 이제야 미소를 짓고 내려온다. 


 아버지에게 전화 통화하면 밥 먹었냐, 가게 다녀오셨냐 정도의 인사로 짧게 했고 더 이상 나눌 말도 없었다. 이젠 할 말이 하나 더 생겼다. 수영장 다녀오셨냐고... 나도 더 큰 일과 좋은 일이 생겨서 아버지 질문에 대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나는 동생 조카까지 안고 놀면서 기분 좋게 서울로 올라갔다.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이 날은 내가 평생을 기억한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잠자리에 누웠다. 또 잠이 오지 않아 결국엔 수면제를 먹었다. 그런데 이젠 수면제를 끊어야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다음 날, 수면센터에 가 선생님에게 이제 서서히 수면제를 끊고 싶다고 말했다. 선생님 역시 바랐던 바라며 약을 반 정도로 줄여주셨다. 약국에 가서 약을 탔다. 약사 선생님이 약을 주면서 말했다. 


"약이 반 이상 줄었네요? 좋아지셨나 봐요? 제가 기분이 다 좋아요..."


어제 아버지가 수영장 간다는 말을 들은 나 같은 기분을 약사님이 느끼셨을까? 사적인 대화를 한 번도 한 적 없는 약사님이지만 약을 타 주면서 나를 지켜보셨나 보다. 갑자기 힘이 난다. 행복이란 건 큰대서 오는 게 아닌가 보다.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천천히 스며드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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