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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끝찡 Oct 30. 2019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어떠셨을까?

사실 아버지가 가장 힘드셨다.



 엄마가 없는 빈 집에 동생네 부부가 들어오게 되었다. 아버지는 어차피 가게에 딸린 작은 방에서 생활하시고 가끔 집에 들어가시다 보니 큰 집을 그렇게 비워두는 것이 아까웠다. 동생 부부는 아이도 생겼겠다. 큰 집이 필요도 했겠다 싶어 본 집으로 들어와 살게 되었다. 그리고 엄마 없이 맞이하는 첫 설날이 되었다. 


 대구로 내려가는 귀성길이 생각보다 막히지 않았다. 예상했던 시간 8시 반에 맞춰 정확하게 내려왔다. 저녁을 먹지 않아 애매했다. 집에 가서 먹을까 고민했지만 제수씨 귀찮을까 봐 밖에서 먹고 들어가려 했다. 그런데 마땅히 연 가게들이 없다. 그래서 결국 파리바게뜨로 들어가 샌드위치 하나를 샀다. 앉아서 먹고 가고 싶었지만 자리가 없어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집으로 향했다. 


 가게를 마친 아버지와 아파트 현관에서 만났다. 아버지와 나는 대한민국의 전형적인 부자관계이다. 어색하게 인사하고 같이 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방으로 들어가 몰래 샌드위치를 먹으려고 했는데 아버지가 물었다.


 "아들, 저녁 먹었나?"

 

 샌드위치 사 와서 먹으려고 한다고 말하려던 참에 아버지는 본인도 식사를 안 했다고 한다. 그래서 나가서 먹을래라고 묻는다. 어색하다. 그냥 파리바게뜨를 먹을까 잠깐 생각했지만 다시 가방에 숨겼다. 


 결국 거리로 나왔다. 우리 동네는 번화가에 있어서 젊은 사람들이 많다. 그래도 이왕 아버지 모시고 나온 거 젊은 사람들 많이 가는 집으로 가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은 김 작가의 이중생활이라는 술집. 


설 전날이라 젊은 친구들 뿐이다. 그것도 나보다 훨씬 어린 친구들 뿐. 아버지와 어색하게 시끄러운 구석에 앉았다. 그래도 조용한 곳에서 아버지와 둘이 있는 것보단 시끄러운 곳이 덜 어색할 것 같았다. 그런데 옆 테이블에 나보다도 한참 어린 친구들이 욕을 하면서 친구들과 수다를 떤다. 내가 괜히 민망하다. 괜히 여기로 왔나 싶더라.


 메뉴판을 보더니 아버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하신다. 읽어드렸고 그냥 떡볶이에 소주, 맥주 한 병을 시켰다. 소맥을 먹어야 그나마 아버지랑 덜 어색할 것 같았다. 아버지가 나에게 영화는 이래야 한다라며 훈수를 두며 이야기를 하신다. 별로 새겨듣진 않지만 그래도 이야기를 이어가고파 영화 쪽은 이렇다 이렇다 이야기하니 또 자기 말이 다 맞다는 식으로 이야기하신다. 또 결국 성급한 결론을 먼저 내렸다. 열심히 해서 보여드릴게요. 


 아버지는 엄마가 돌아가신 이후 매일 같이 술을 드셨다. 그리고 새벽이 되면 항상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는 그 전화를 그 어떤 순간이더라도 항상 받았다. 그렇게 전화를 걸고는 매번 울었다. 힘들다면서 괴롭다면서 엄마가 보고 싶다면서 신세한탄을 하셨다. 그걸 끝까지 들어주고 참아 줄 사람은 이제 나밖에 없는 것이다. 동안 매일같이 술을 드셨던 것 같은데 누구랑 드셨냐 물어보니 항상 혼자 마셨단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을 못 주무신단다. 괜히 짠해졌고 잘해드리지 못했고 이제와 둘이서 술 한잔 처음 하는 게 죄송했다. 




 집으로 가는 길. 아버지의 뒷모습이 이상하게 슬프다. 그렇게 강직했던 사람인데 어깨가 너무 축 처졌고 머리는 더 빠져 더욱 늙어가고 있었다. 집에 들어왔더니 조카가 깼다. 술에 취하신 아빠는 조카가 예뻐서 껴안고는 비행기와 청룡열차를 태워주신다. 동생 부부는 괜히 걱정스럽게 아버지를 바라본다. 그래도 조카의 얼굴은 즐겨워 보인다. 어딘가 익숙하게 느껴졌던 장면... 나보다 더 어렸을 나이의 아버지가 나를 업고 비행기와 청룡열차를 태워주던 모습이 불현듯 떠올랐다. 신나게 한 번 더 태워달라고 했던 내 모습까지... 그렇게 아버지 웃는 모습을 오랜만에 보았다.


 아침이 밝고 설날이 되었다. 엄마가 한 떡국이 아닌 떡국 맛은 아직 어색하다. 친척들의 결혼은 안 하냐는 전형적이고 상투적인 배려 없는 호의 따위에 이제는 웃어넘긴다. 모든 분들에게 집집마다 들려 인사드리고 엄마에게 갔다. 또 그렇게 막상 할 말은 없더라. 어제 아버지에게 그렇게 이야기한 대로 열심히 해서 보여드릴게요. 대충 이 정도...


자! 이제 가방에 숨겼던 파리바게뜨를 먹어보자.


<엄마가 있었으면 조카를 물고 빨고 엄청 좋아했을텐데... 조금 더 크면 산소에 데리고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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