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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끝찡 Oct 29. 2019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걸어도 걸어도>

이젠 사라진 대구 맨션


<지금은 사라진 대구맨션>


 대구 친구와 대구맨션 앞 커피숍에서 만났다. 그 친구로부터 대구맨션이 재건축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대구맨션은 1971년에 만들어져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대구 최초의 주상복합 아파트이다. 학교에서 집으로 오다는 길에 매일 지나치며 여기서 나중에 영화를 찍어야지라며 생각했던 곳이다. 


 친구가 대구맨션에서 작년 요맘때 영화 촬영했다는 소리를 꺼냈다. 황정민과 이성민이 와서 촬영한다는 소리에 동네가 떠들썩했단다. 서로 연예인보겠다고 동네가 난장판 정도였단다. 


 실은 그때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당시 나는 설날도 반납한 채, 글을 쓰고 있었다. 어머니가 지나가다가 촬영하는 것을 봤단다. 그리고 촬영 차량을 보니까 아들이 다니는 영화사의 이름을 보았단다. 그러면서 동네 아주머니들에게 자랑했단다. 아들이 황정민, 이성민을 볼 수 있게끔 해주겠다며 수많은 인파를 뚫고 영화 촬영 현장을 구경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단다. 


 그러나 나는 엄마에게 돌아서라고 일렀다. 그 사람들 일하는 거라고 놀고 있는 것 아니라며 다그쳤다. 어머니는 볼멘소리로 다시 한번 부탁했다. 그래, 어쩌면 거기에 부탁을 비벼 비벼 했더라면 엄마가 친구들과 그 촬영 현장에서 흐뭇하게 구경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다시 한번, 단호하게 안된다고 하고 다음에 내 영화 촬영하면 구경하게 해 줄게라고 답했다. 


 엄마는 아들이 황정민, 이성민이 나오는 저 영화사에서 같이 일하고 있다며 자랑한 것으로 섭섭함을 달랬단다. 후일담으로 그쪽 스탭에게 이야기하니 이야기하지! 그럼 의자에 앉혀서 구경시켜줬을 텐데!라고 한다. 뭐가 그렇게 당당하지 못했는지 아직 내 위치에서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친구는 다시 영화 <공작>에 대해서 물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여기서 찍었던 장면을 다 삭제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친구는 대구맨션이 없어지는데 삭제되면 아쉬울 것 같다고 했다. 대구맨션은 그렇게 곧 없어진다. 삭제가 되면 영화 속 기록되었던 시간도 재건축되면 공간도 살아져 오직 기억 속에서만 생존할 테다. 


 그렇게 엄마와 함께 했던 공간 역시 사라져 간다. 점점 엄마도 잊히나 보다. 점점 엄마가 모르던 공간이 다시 생겨나기 시작한다. 왠지 잘 모르겠는데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걸어도 걸어도>가 생각났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상실감에서 <걸어도 걸어도>를 만들었다고 했다. 개봉 당시 봤을 땐, 별 다른 감흥이 없었다. 지루했다. 재미없었다. 그 지루한 하루 동안의 이야기에 나는 집중할 수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 영화를 다시 봐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뭔가 지금 보면 다르겠지라는 불길하면서 좋은 예감은 역시 빗나가지 않았다. <걸어도 걸어도>를 다시 보고 이틀을 앓았다. 이토록 무서운 영화인 줄 처음 봤을 땐 몰랐다. 


 "잃어버릴 것이 많았던 하루하루 속에서 한 가지 얻은 게 있다면, 인생이란 언제나 한발 늦는다는 깨달음이다. 체념과도 비슷한 교훈일지도 모른다." 


<걸어도 걸어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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