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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끝찡 Oct 28. 2019

엄마의 카카오톡이 사라졌다

카카오톡 상담원과 대화



 9월이 가고 10월도 금세 지나갔다. 이젠 제법 쌀쌀해졌다. 엄마에 대한 것들은 이제 어느 정도 다 정리가 되었다. 아직 보험 절차는 조금 기다려야 했고 남은 거라곤 엄마의 핸드폰뿐이었다. 엄마는 장애인으로 등록되어 있어 할인을 받고 있었다. 사망신고 후 그대로 유지를 하다 보니 오히려 가격이 올랐다. 기본 요금제로 유지하려고 해도 3만 원 정도였다. 한 달 정도 가지고 있다 보니 엄마의 핸드폰이 필요가 없었다. 이젠 엄마를 찾는 보이스피싱 조차 없다. 그래, 어차피 돈 들고 하는 것보단 엄마의 번호를 해지 시키는 게 맞겠다 싶었다.


 가족들을 설득했다. 어차피 스마트폰에 엄마 카카오톡은 그대로 살아있을 테니 돈 계속 내지 말고 해지하자고 했다. 가족들은 알겠다며 그러자고 했다. 대신 엄마의 핸드폰은 내가 꺼지지 않게 계속 충전시켜두고 있을 거라 했다. 혹시나 모를 다른 사람의 카톡도 가족들과 공유하기로 했다. 나는 가끔 엄마가 그리울 때, 엄마의 핸드폰의 카톡을 보며 그리워하고 있었다. 내 핸드폰엔 카톡을 지웠다 깔았다를 반복했기에 대화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금방 11월도 지나고 말았다. 이젠 평상시처럼 잘 지낸다. 물론 수면제 때문이지만 잠도 잘 자고 친구들을 만나며 다른 이야기들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내 스마트폰에 카카오톡 새 친구라며 어머니가 떴다. 뭐지? 하면서 엄마와의 대화 일부는 (알수없음)으로 되어 있었고 엄마의 계정을 찾을 수 없었다. 급하게 집으로 가 엄마의 핸드폰으로 카톡을 들어가니 인증번호를 누르라는 알림이 떴다. 그리고 그때 알았다. '아, 누가 엄마의 번호로 개통을 했구나.'


 살릴 방법이 있을 거라 믿었다. 엄마의 계정도 있으니 전화번호가 없더라도 카카오톡에 전화하면 뭐라도 방법이 있을 거라 믿었다. 이대로 엄마의 카카오톡이 날아간다면 다시 슬퍼질 것만 같았다. 초조한 마음으로 카카오톡 상담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남자 상담원이 전화를 받았다. 나는 몹시 초조하고 떨리는 말투로 그에게 말했다.


 "저기... 저의 어머니... 카카오톡이 없어졌어요.... 번호를 해지 하긴 했는데, 그런데 누가 어머니 번호로 개통을 했나 봐요..."


 손이 떨려 핸드폰을 놓칠까 봐 스피커 폰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해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밝히고 말았다.


 "사실 어머니가 두 달 전에 돌아가셔서 해지한 건데 이거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요? 지금 엄마의 카톡이 (알수없음)으로 떠요..."


 정말 절박했다. 통신비를 아끼자며 가족들을 설득해서 해지시킨 나였다. 이렇게 엄마의 카톡마저 날아간다면 난 가족들에게 할 말이 없을 것만 같았다. 잠자코 듣던 직원이 말하기 시작했다.


 "아... 그러셨군요. 해지하셨다면 계정을 복구할 수 있는 방법이..."


 다시 무너졌다. 내가 불쌍하게 보여서라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었다.


 "저기... 어머니가 사망하셔서 해지한 건데... 어떻게 안될까요? 아이디나 계정은 있습니다. 카카오스토리는 그대로 있더라고요."


 그는 정말 미안한 말투로 말을 이어갔다.

 

 "아, 고객님...”


그는 뜸을 들이다 밝힌다.


 "저 역시... 2년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똑같은 상황이 있었습니다. 다른 분께서 어머니 번호로 새로 개통하시고 계정을 만드신 부분이면 복구가 불가능합니다. 고객님이 지금 어떠한 마음인지 충분히 아는데... 정말 도와드리지 못해 너무 죄송합니다."


 할 말을 잃었다. 그 역시 그러한 경험이 있다는 말에 뭐라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냥 아무 말 없이 통화가 이어졌다. 그가 다시 한번 사과한다.


 "고객님... 정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해 죄송합니다..."

 

 눈물이 터지면서 대답했다.


 "어떻게 안 되는 걸까요?"


그가 다시 한참 뜸을 들이다가 이윽고 "네..."라고 답했다. 그냥 눈물이 핑 돌았다. 요 며칠 엄마 때문에 운 적이 없었는데 다시 서러워졌다. 그래도 울음을 참으려고 애썼다. 그런데 수화기 넘어 상담원 역시 눈물을 참고 흐느끼는 것을 느꼈다. 그는 진심으로 미안해하고 있었다. 그가 미안할 필요가 없는데 말이다.


 "고객님... 정말... 저도 도와드리지 못해서 마음이 너무 안 좋습니다... 편안한 하루... 보내세요... 상담원... OO이었습니다."


 그는 본인의 이름을 말할 때, 결국 울음을 터트려 말끝을 흐리고 말았다. 그 역시 울고 있었다. 나도 울고 있었다. 서로 전화를 10여 초 정도 끊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울음 참는 소리가 들린다. 같이 아파해주고 진심으로 미안해주고 있어 너무 고마웠다.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뭔가 어색해 내가 먼저 끊고 말았다. 끊고 다시 울음을 쏟았다.


 그가 본인도 2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말했을 때, 속으로 궁금했던 것이 있었다.

 '2년이 지나면 좀 괜찮아지나요?'라고 묻고 싶었다. 그 질문은 직접 하지 못했지만 그와 서로 아무 말 없이 10여 초 서로 흐느끼고 있을 때, 이미 속으로 대답을 들었다. 2년이 지나도 여전히 아프다고 말이다.

 



 "어머니라는 단어에 말끝이 떨린 걸 보면 당신도 저처럼 어머니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나 봅니다. 목소리론 저보다 어려 보이는데 어린 나이에 당신은 얼마나 더 힘들었을까요. 2년 전에도 상담원이라는 일을 하고 있었다면 여러 진상 고객들을 상대하면서 본인의 슬픔을 숨기셨어야 했는데 말이죠. 저만 이렇게 힘들고 아픈 건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당신 역시 2년이나 지났는데 안 괜찮은 걸 보면 다들 아픔을 애써 숨기며 괜찮아지려고 애쓰는 것 같습니다. 같이 울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 어머니도 분명 좋은 곳에서 당신을 지켜보고 계실 겁니다." 




 지난 석 달간 가장 많이 들은 말이 괜찮냐? 잘 지내? 였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늘 괜찮아, 잘 지내였다. 어쩜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것뿐이었던 것 같다. 다들 그 대답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안 괜찮아. 못 지내."라고 말할 용기도 없고 그에 맞는 질문에 대답이 아니다.


 지난 석 달간 나는 가장 아팠다. 그럼에도 늘 괜찮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면 그 누구도 괜찮을 수 없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이란 책에서 나온 내용인데 공감은 내 관점에 맞춰 상대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공감이란 상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기술이라고 한다. 아픔을 이해하는 식으로 다가가선 안된다. 공감으로 다가가 안아줘야 한다. 카카오톡 상담원처럼.


<엄마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 이젠 엄마의 카카오톡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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