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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끝찡 Oct 28. 2019

시작된 상실감

난 괜찮을 줄 알았는데



  장례식을 무사히 마쳤다. 사흘이나 입고 있던 검은 상복을 반납하고 응급실에 달려왔을 때 입었던 츄리링으로 갈아입었다. 옷을 갈아입자 드디어 장례식이 끝났나 싶었다. 홀가분하기도 했고 배가 고프기도 했고 잠도 오기도 했다. 아버지 역시 옷을 갈아입었다. 아버지는 위아래로 알록달록한 골프웨어였다. 스크린 골프장을 하시기에 항상 밝은 골프웨어를 입고 다니신다. 아버지를 옷을 보고 피식 웃음이 나기도 했다. 아버지가 특히 지쳐 보인다. 동생은 회사에서 바로 달려왔기에 색깔만 다른 정장이었다. 동생은 아직 눈시울이 붉다. 엄마라는 단어만 나오면 눈물을 흘렸다.


 가장 제정신이던 내가 장례식장 계산을 마치고 유품 및 짐을 정리하여 차로 옮겼다. 다들 너무 피곤한 나머지 빨리 집으로 가자고 했지만 나는 너무 배가 고팠다. 사흘 동안 별로 먹지 못했다. 장례식장 맞은편 서문시장에 있던 분식점을 가자고 했다. 아버지와 동생, 그리고 사촌 형까지 해서 분식점으로 갔다. 순대, 떡볶이, 튀김 등등 섞어서 시켰다. 내가 배가 고파 가자고 했지만 아버지와 동생이 더 잘 먹는다. 배는 고팠지만 여전히 입맛이 없다.


 그리고 그때부터였다. 


 여기는 엄마와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왔던 곳이다. 내가 좋아하는 납작 만두를 항상 여기서 사다 주셨다. 엄마는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납작 만두를 시켜줬지만 그 누구도 납작 만두를 따로 시켜주지 않았다.


 집으로 가는 길엔 미치는 줄 알았다. 엄마와 둘이서 이 사거리에서 유턴은 못해 800번, 좌회전은 1000번, 우회전은 900번, 직진은 만 번 이상 했던 길, 걷기도 함께 못해도 34년 간, 200만 보는 함께 걸었던 길을 지나니, 엄마와 함께 밥을 먹었던 식당이 등장했으며, 엄마가 자주 가던 미장원, 엄마가 좋아하는 빵집, 엄마와 싸웠던 세탁소가 등장했다.

 

 도착한 집에선 마치 아직도 엄마가 살고 있는 듯했다. 엄마의 손길이 닿지 않은 물건이 없다. 나를 위해 준비하고 있던 미역, 달력에 적힌 엄마의 9월 계획들... 그냥 모든 것들이 나를 미치게 했다. 일단 서울에 가야 했다. 당장 이 집에선 뭘 할 수가 없었다.




 서울에 있으면 괜찮을 줄 알았다. 그나마 엄마와의 추억이 있는 곳이 덜하기 때문에 별로 생각나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모든 물건, 대상에 엄마를 씌워 구분 짓는 나를 발견했다. 저기는 엄마가 가 본 곳, 그리고 엄마가 보지 못한 영화, 엄마가 먹어보지 못한 음식, 엄마가 알고 있을 법한 영어단어... 엄마가 알고 있는 내 옷들, 엄마가 사줬던 옷들...


 그냥 기분을 전환하기 위해 새 옷을 사 입고 새 신발을 사 입었다. 그러니 갑자기 서글퍼지기 시작한다. 엄마가 다신 보지 못한 내 모습이 시작되고 있음이 괴롭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기록되는 나의 모습은 이제 엄마는 알 수 없으며 지금부터 개봉하는 영화는 엄마가 볼 수 없으며, 가장 괴로운 건 엄마가 내가 만들 영화를 볼 수 없음이었다.


 가장 나를 괴롭혔던 건 꿈이었다. 꿈에 엄마가 계속 나온다. 잘하면 살릴 수 있었던 엄마였기 때문에 계속해서 엄마를 살리는 꿈을 꾼다.


 "엄마, 퇴원하면 안 돼! 알았지?"

 "그래, 알았다."


 기어코 엄마를 꿈속에서 살렸다. 다행히 다며 엄마와 껴안고 눈물을 흘린다. 그러고 잠에 깬다. 잠에서 깨면 엄마는 없다. 엄마는 죽었다. 그래, 엄마는 죽었는데, 자꾸 나는 엄마를 살리는 꿈을 꾸고 앉았다. 며칠을 같은 꿈을 꾸기 시작했다. 영화 <엣지 오브 투모로우>의 주인공 톰 크루즈는 전쟁터에서 죽고 나면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 계속 같은 삶을 살기 시작한다. 내가 그랬다. 매일 꿈만 꾸면 엄마가 죽기 전으로 돌아가 엄마를 어떻게든 살리려고 하는 피나는 노력을 한다. 그러다 허무해진 내 아침은 그 누구도 책임지지 못한다.


 결국, 잠을 자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고 말았다. 정신과라는 이름이 달린 곳보다 수면센터라는 곳을 찾아 처방받고 약을 먹고 겨우 잠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엄마의 첫 추석상 제삿밥을 차렸고 한 달 꽉 채워 겨우 엄마의 사망신고를 했으며 사십구재를 보냈다. 엄마의 통장, 신용카드, 보험까지 모두 정리하였고 이젠 정말 엄마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사람이 되고 말았다. 이젠 꿈에서도 잘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엄마는 점점 잊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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