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말하면 여름 더위가 안 무서운 사람이었다. 교복쟁이 시절, 한여름 뙤약볕 운동장에서 팔 벌려 뛰기를 수십 번 해도 삐질삐질 겨우 땀 몇 방울이 전부였고, 콧잔등에 맺히는 송골송골한 땀은 서른의 나이를 얻은 후에 알았다.
폭염주의보가 떠도 나의 샤워실에는 김이 폴폴 나는 더운물이 샤워기를 뚫고 나왔고 여름날의 반절 가량은 팔 전부를 덮는 얇은 남방과 함께했다. 열대야 뉴스가 지겹도록 나올 때도 난 발끝 안으로 이불을 야무지게 밟아 감싸 덮었고, 양팔도 이불 안으로 온전히 넣어 잠에 들었다. 어떤 날은 마치 미라가 된 것처럼 머리끝까지 나를 꼭꼭 숨겨 잠을 청했다.
나한테 더위는 그냥 말뿐인 것이었고 쉬이 마를 땀 몇 방울로는 그 더위를 온전히 알 수 없었다. 남들이 아는 걸 나만 모른다고 해서 조급하진 않았다.
그 시절, 나는 더위는 몰랐어도 쉽게 나지 않는 땀을 동경하게 되었다.
난 여름에 인기가 많았다.
정확히 말하면 여름에 가까이하면 좋은 사람이었다. 몸이 서늘해서 겨울에는 근처만 가도 냉기가 돈다며 멀리하던 가족들이 여름이 되면 내 팔다리에 손발을 들이밀고선 시원하다며 좋아했다.
여름에 여러모로 꽤 쓸모가 있었다. 교복쟁이 시절, 우리 집은 냉장고 측면을 벽 삼아 의자, 식탁 순으로 놓고 둘러앉아서 밥을 먹었는데 내 자리는 냉장고를 등 뒤에 둔 자리였다. 한여름 냉장고는 그 속은 시원할지언정 밖은 뜨끈뜨끈 열기를 뿜어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서 러닝 차림으로 선풍기를 가장 가까이 놓고 식사를 하시는 아빠, 음식 준비하는 내내 불 앞에 있느라 밥 먹기 전부터 땀 흘린 엄마, 그냥 한창 더울 나이 내 동생. 다들 냉장고와 가까운 그 자리는 맘에 두질 않았다.
모두 피하는 그 자리를 난 오히려 반겼다. “아, 따뜻해.” 등 뒤에 서늘한 기운이 사라졌다. 모두에게 평화로운 여름날 식사 시간이었다.다른 사람들과 달라서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