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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드플로거 Oct 11. 2022

중얼중얼 줍줍

플로깅 72, 73, 74번째 

높은 가을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되면 좋을 구름이 떠 있고, 나는 도서관으로.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에 발걸음이 마냥 가볍지는 않다. 그래도 요새 도서관에서 재미난 전시기획이 있어서 마음을 다잡아본다. 기운차게. 


도서관에 들어가려다 보니, 도서관 앞 화단에 커피가 담긴 스*벅* 컵이 버려져 있다. 도서관 이용자가 커피랑 간식을 먹고 그대로 놔두고 간 듯하다. 에코(환경사랑) 실천을 위해 종이 빨대를 쓴다는 *타*스의 음료. 마셨으면, 마무리까지 깔끔하게 하면 아주 괜찮을 텐데.


 '먹다 남기고 아무데나 버리는데 종이 빨대는 쓰면 뭐하나.', '귀찮다, 그래도 처음 줍는 것도 아니고 집앞에도 종종 놓여 있는데, 얼른 하면 되지.' 중얼중얼 줍줍.      


도서관 화단에 놓인 스**스 종이 빨대, 플라스틱 음료컵을 치움. 맨 오른쪽 사진은 동네에도 자주 버려져 있는 *타벅*의 종이 빨대와 음료컵(동네 꺼는 음료를 하수구에 버립니다)


남은 커피를 도서관 화장실에 버리고, 휘리릭 다시 나와서, 분리수거 쓰레기통에 종이 빨대와 플라스틱 커피컵을 분리해서 버린다. 민첩하게. 


어젯밤 도서관 폐관시간 즈음에 와서 제대로 못 봤는데, 빨리 들어가서 전시기획 봐야지!      


내가 설레는 우리동네 도서관 전시기획은, 개관 후 여태까지 한 번도 대출되지 않은 책들을 전시하는 것. 아니, 어느 멋진 분이 이렇게 흥미롭고 훌륭한 기획을 한 것일까? 베스트대출 목록도 좋지만,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소외된 책들을 보는 것도 좋다.      


동네 도서관에는 5만 권이 넘는 장서가 있는데, 단 한 명의 도서관이용자로부터도 선택받지 못한 책들이 있다. 목록을 쭉 훑어보았다. 100여 권 남짓한 책들 가운데, 내 눈에 금방 띈 책들이 있었다. 반전, 비폭력을 주제로 한 도서, 누적 1700만 명이 참가한 몇 해전 추운 겨울의 촛불혁명 관련 도서, 일상에서 요긴하게 쓰는 물건을 소재로 한 미시 세계사 책....나의 책장에 있었거나 꽃혀 있는 책들도 있네. 크크. 흑..?  


그런가하면 자연을 노래한 시집들, 인권론 기초 도서, 헐리우드 페미니스트 각본가의 자전적 소설, 기후위기를 경고했으나 무시된 예전(2000년대 초반)의 환경도서, 그 즈음 엄청 유행한 BL(보이즈러브) 번역소설도 있다. 다 좋은 책들인데, 안타깝다. 도서관에서 정해진 대출권수보다 더해서 (한 번도 대출되지 않은) 책을 대출해주고 있어서, 몇 권 대출해왔다. ‘이 전시기획 기간 동안에 될 수 있으면 많이 빌려봐야지’ 싶다.     

  

누군가 혼신의 힘을 다해 쓰고 여러 정성스러운 손길과 뜨거운 마음이 닿아 만들어져 시장에 나왔으나, 잠든 채 외면받은 양서들. 사력을 다해 읽다보면 언젠가 내 삶의 가을날, 나의 혼 안팎 어딘가에 열매를 맺겠지. 




지난 여름에 내가 치운 음료 플라스틱 컵의 기억 속으로. 소화기 위에 놓인 음료 플라스틱 컵. 소화전, 지하철역 환기구 위 등등. 거리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음료를 도로가 하수구에 버리고, 플라스틱 컵은 거리의 쓰레기통에 넣었다. 


곡물껍질로 만들어서 썩기 좋다는 (그래서 2배 비싼^^) 위생비닐장갑을 끼고서 처리했다. 사진을 보면 내가 꼭 마술하는 것만 같이 기분 좋다. 


가을은 가을답게. 땀방울 흘려 느낀 뿌듯함을 소환하노라. 즐겁게.



화단에 꼭꼭 숨겨져 있거나, 식물 줄기에 꽁꽁 묶어놓아서 마치 나를 약올리듯?^^, 버려진 마스크도 찾아내 줍줍하던 이번 여름의 기억들. 차라리 그냥 길바닥에 버리면 줍기 쉬운데! 중얼중얼 줍줍. 투덜투덜 줍줍?!

길거리 화단에 묶어두고 버리고 간 마스크. 매듭을 풀어서 쓰레기통으로. 그리고 이번 여름 길바닥에서 주은 얇은 마스크들(도서관 갈 때마다 한 10장쯤 주웠다.)


그리고 어젯밤에는 형광등을 주워서 주민센터 집하장에 갖다 놓았다. 화단 속에 감추듯 버려진 형광등. 사실 일주일 내내 왔다 갔다 하며 보았었는데, 요즘 건강 상태가 원활하지 못해서 미처 주워서 처리할 틈이 없었다. 여유를 되찾았으니 이제 됐다. 형광등을 버린 화단이 높아서, 깨지면 수은이 샐 것 같아서 마음에 걸렸었다. 주웠으니 됐다. 마음이 한가로워졌다.   


성인 허리 높이의 화단에 아슬아슬하게 감춰 버린 형광등. 깨질 것 같아서 주워서 주민센터 집하장으로.


아직은 죽지 않아, 죽은 듯 살지 않아. 

밟혀도 밟히지 않아, 꿈틀꿈틀, 굴복하지 않아! 

넘지 못한, 삶의 언덕을 이렇게 중얼중얼 투덜투덜 넘어가고 있다.           



오늘의 정리 


우리는 지금보다 더 강하게 

우리는 지금보다 더 강하게

우리는 지금보다 더 강하게 

우리는 지금보다 더 강하게 

되어야 해     


오늘 우리가 사는 이곳이 

더 아름다울 수 있게

오늘 우리가 사는 이곳이 

더 아름다울 수 있게     


-정윤경 작사 작곡, 노래패 꽃다지 ‘주문’ 가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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