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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쟌 May 21. 2021

시어머니의 이타심과 며느리의 이기심

이기심의 한계.


나는 우리 시어머니처럼 타인을 잘 챙기시고 그 안에서 기쁨을 느끼시는 분을 본 적이 없다. 그러한 친절들을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보다는  다수가 고맙게 생각하기에 주변분들과 관계가 좋아 보인다. 하지만 그러한 친절을 불편해하는 소수 중 하나가 안타깝게도 며느리인 '나' 다. 결혼 전부터 어머님의 친절과 배려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았고 나 또한 그 아무나 중 한 명이었다.


남편과 연애시절, 처음으로 남편집을 방문했던 날이다.  구경을 하다가 남편 방에서 가족사진 하나를 보게 됐다. 남편과 부모님.. 그리고  여자는 누구지??? 남편에게 물으니 어머니의 친한 친구분의 딸인데 혼자 타지에 있기에 종종 부르기도 하고 김치나 반찬도 챙겨주시며 살뜰히 챙기신다고 한다. 쉽지 않은 일인데 대단하단 생각도 들고,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내게 하라는 것도 아니었고 어머님께서 사람을 챙기는 방식일 뿐이었다.


그런데 결혼  반년이 지났을 무렵 신경이 쓰이게 되는 일이 생겼다. 어머님은 아버님이 없는 식사자리에서 남편에게 갑자기 대출 이야기를 하셨다. 개인적으로 가족과도 금전적인 거래는 하지 않는 나에겐 가족일이거나, 정말 급해야 어느 정도 고민을 해볼  있는 일이었다.  대상은 예전에 사진  어머님 친구분 딸이었고 내용은 직장과 집의 거리가 있어 이사를 해야 하는데 돈이 모자라다는 . 여러 사정으로 대출조건이 어렵기에 남편이 대출을 해준다면 다달이  돈을 갚겠다는 것이다. 남편은 매달  돈을 받는다는 것도 부담스럽고 금액도 적지 않아 어렵다고 에둘러 거절했다. 어머님은 아버님께는 비밀이라고 하셨고 식사가 끝나는 동안 나에겐  한마디도 건네지 않으셨다. 그날 저녁에 문득 남편이 거절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자리에서 아무 말도  하고 멀뚱하니 있었을지 궁금했다.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눌 때면 어머니 주변분들에 대한 아주 디테일하고도 사적인 이야기들을 들을 때가 많다. 가깝게 지내는 돈독한 분들끼리 나누시는 이야기에 대해 사실 크게 궁금하지도 않았지만 어쩌면 내가 그동안 어머니께 해왔던 고민들도 어딘가에서 이야깃거리가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아마 결혼 전에는 남편의 이야기를 주로 하셨을 테고, 결혼을 하고 옵션처럼 며느리와 손주의 일상들을 매일 만나는 주변분들과 공유하셨을 것이다. 동네 분들과 인간관계가 좋으신 어머님을 곁에 두면 가끔은 내가 트루먼 쇼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아이가 쉽게 생기지 않아 기다리시는 어머니 앞에서 눈물을 보였다. 혹시나 기다리실   나는  상황을 털어놨고 어머님만 알고 계시겠다고 하셨다. 그런데  후로 시어머니를 만날 때마다 누가 유산을 했는데 이렇게 하니 다시 아기가 생겼다더라, 누가 애가  들어섰는데 저렇게 하니 금방 생겼다더라.. 여러 정보들을 전하셨고 어렵게 임신이 됐을 때는 마주치는 어머님 주변분들이 나의 난임 사실을 알고 는 눈치였다.  물론 좋게 생각하면 나쁠 일도 아니지만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가 돌고 돌아 다시 내게 들렸을 때는 여러 복잡한 생각이 들곤 했다.


임신만 하면 그래도 모든 게 괜찮아지는 줄 알았다. 임신 초기에 유산 위험이 있던 내게 어머님은 둘째 계획을 물으셨다. 누구보다 얼마나 힘들게 아이를 가졌는지 아시는 어머니였기에 나는 그러한 질문들이 서운하기도 했고 외아들의 가진 어머니의 욕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도 둘은 있어야 되는 거야"

" 저는 뱃속에 있는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나는 것 말고는 바라는 게 없어요. "

"혼자는 외로워서 안돼~"

(어머님도 아들 하나 낳으셨잖아요..라고 속으로 샤우팅 했다...)


나의 임신 과정이 쉽지 않았고 유지를 하는 기간에도 마음 편할 날이 없어서 더욱 둘째 계획을 하지 않겠다고 몇 번을 전했지만 아이를 낳고 나서도 어머님은 태몽을 꾼 것 같은데 소식이 없냐고 물으셨다. 아이의 태몽도 내가 꿨지만 전에도 자신이 꾸었더니 좋은 소식이 생기지 않았냐며 둘째 이야기를 하신다. 나는 저 기다림을 보고 있자니 쫓기는 기분으로 가족계획을 하고 싶지가 않아졌다.


시어머니께 닿지 않는 며느리의 마음

아이를 낳기 전에 어머님은 천기저귀를 사야 한다고 하셨다. 나는 요즘 기저귀가 흡수력도 좋고 잘 나와서 안 쓸 것 같다고 에둘러 사양했다. 그래도 몇 개는 사놔야 한다며 전화를 끊으셨고 곧이어 다시 전화가 왔다. 친구분이 천기저귀를 자주 안 갈면 습진이 생겨서 오히려 안 좋다니 사지 않아도 되겠다고 하시고는 전화를 끊으셨다. 내가 말씀드린 것과 친구분이 하신 얘기가 크게 다른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받아들이시는 어머니께서는 아마 큰 차이가 있으셨나 보다.


어쨌거나 결과는 내가 바라는 대로 됐으니 그만 이었다. 그럼에도 가끔은 원하는 결과를 얻고는 힘이 쭉 빠질 때가 있었다. 출산한 지 한 달 정도 됐을 무렵 남편 지인 결혼식이 이었다. 나는 수유도 해야 하고 아이가 너무 어려 남편만 가기로 했지만 어머님은 그 소식을 어떻게 아셨는지 아이를 돌봐줄 테니 결혼식에 다녀오라고 하셨다. 내 지인도 아닌 결혼식을 굳이 꼭 가야 할 이유는 없었다. 집에서 아이를 보는 게 나와 아이를 위해 좋을 것 같다고 말씀드렸지만 어머님의 짜증 섞인 대답이 돌아왔다.


"글쎄 너 바람도 쐬고 다녀오래도 그러네.. 이따 갈 테니까 다녀와."

하고 전화를 끊으셨다. 잠시 후 다시 전화가 왔다.


"아버지가 사람 많아서 괜히 가서 감기라도 걸리면 아기 고생한다고 가지 말라네.."


원하는 대로 가지 않게 되었는데 어째 마음이 후련하지가 않다. 내 생각을 해주시는 건데 내 생각은 빠져있다. 내가 어떻게 설명을 해 드려야 어머님께서 내 입장을 아시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나보다 경험이 많은 분들의 의견을 더욱 신뢰하시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하단 생각을 해봤다. 그렇게 흘려보내야 내가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지속되는 어머니의 연락이 남편에게는 별일 아니었지만 나에겐 별일이었다. 어느 날 남편이 아이 사진을 시가에 보냈는지 바로 나에게 두세 통에 전화가 이어온 것을 옆에서 지켜봤다. 내용은 사진 속 아이가 얼굴에 뭐 가난 건지, 그렇게 놀아주면 위험하다, 그거 못하게 해라... 아버님이 (너희 집에)가 자신다로 마무리가 됐다. 무슨 사진을 보냈는지 모르는 나는 그저 앵무새가 되어 네네만 할 수밖에 없다. 시간이 지나서 남편이 가능한 자신에게 연락을 해달라고 시어머니께 부탁을 드렸다. 예전 같았으면 그런 말을 왜 쓸데없이 했냐고 남편을 타박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매일 어머니께 보고를 하기 위해 육아를 하는 느낌이 들었고  어머님 전화가 나에겐 공포였다. 그런던 어느 날 시어머니 전화가 왔다.


" &&이가 임심을 했나 봐~!!"


그때 &&이가 누군지 못 알아 들었고 이 글을 쓰면서도 그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어머니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던 친구분의 딸이나 며느리 일 것이다. 그분이 임신을 했으니 내가 가지고 있는 출산 정보나, 병원 정보를 전화해서 공유해 주라는 것이 전화 목적이었다. 어머니께서 모유 여부나 유축하면 얼마나 나오는지 물어보실 때만 내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아주 찰나의 시간이 었지만 여러 생각이 들었다. 그 친구분 딸이 미성년자도 아니고 곧 마흔이 다 돼가는 분인데 내가 가지고 있는 정보가 뭐라고 직접 전화를 드려야 하는지, 그리고 과연 그 당사자는 원하는 것인지...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는 것이 아니라 목이 마를 것이니 미리 가져다주라는 어머님의 부탁이 나는 점점 부담스러워진다. 남편이 그렇게 부탁을 했음에도 직접 전화를 하신 목적은 친구분 딸에 대한 어머님의 남다른 배려였다


함께 축하를 하고 내가 알고 있는 임신과 출산에 대한 모든 정보를 어머님 지인과 이야기하며 친해지길 바라는 마음을 알고 있다. 그런데 나와 어머니 사이는 조금 거리가 필요한 시기였기에 나는 마음이 무거웠다. 어머님의 남다른 친절 그 이면에 며느리라는 나의 존재는 무엇인가. 이 마저도 내가 예민한 것이라는 시부모님은 나를 이해하지 못하셨다.


어머님은 한동네에서 오래 사셨고 그 안에서 형성된 관계는 생각이나 가치관이 어느 정도 비슷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어머님은 며느리인 나도 으레 그럴 것이라는 강한 믿음이 있으셨다. 내가 어머니와 다른 의견이나 감정을 표현할 때 어머님은 '일반적으로', '다른 집'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셨는데 그 일반적인 다른 집은 어머님과 비슷한 성향의 주변분들일 가능성이 크다. 항상 모든 상황이 그렇게 일반화됐기 때문에 나는 나의 판단력과 사고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수백 번 수천번 생각해도

'나는 나인데, 어머님과 그 주변분들 기준에 맞춰야 그게 일반적인 건가?'


나는 어머님처럼 마음이 태평양같이 넓지 못했고, 그릇이 한없이 작아서 내 가정과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들 챙기기도 벅차다. 그래서 이타적인 어머님과 방향이 다른 나를 이기적이라고 한다면 이기심을 택하는 편이 나에게 어울린다. 나는 주변일에 깊은 관심이 없기도 하고 도움이라는 건 필요한 사람에게 진심으로 베풀수 있을때  제대로 전달이 된다고 생각한다.


타인을 위한 배려나 친절함 그 과정에서 어머님은 며느리도 감정이 있다는 것을 잊고 계셨다. 나는 그 후로 긴 시간 동안 내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모르셨던 게 아니라는 걸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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