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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법은 조변 Apr 29. 2024

대학원 수업도 다 똑같은 학교 수업이다. 숙제도 많다.

박사과정을 2개월 보낸 소감

안녕하세요.

'나만 몰랐던 민법', '조변명곡', '조변살림&조변육아'를 쓰고 있는 조변입니다.


오늘은 "박사는 내 운명"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경북대학교 대학원 법학과 박사과정에 입학한 지 두 달이 되었습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두 달간의 소감을 간단히 남깁니다.


1. 대학원 수업도 다 똑같은 학교 수업입니다.


박사과정 대학원 수업이라고 해서 특별한 것이 있지는 않습니다.

예습을 하고, 수업을 들으며, 복습도 해야 하며, 숙제도 해야 합니다.

초등학교(혹은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학사과정, 석사과정을 거치면서 수많은 수업을 들었습니다만, 박사과정의 수업도 크게 다른 점은 없습니다.


크게 다른 점이 없기 때문에, 학생으로서의 역할에도 큰 차이가 없습니다.

교수님이 질문을 하면, 대답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대답을 하기 위해서는 간단하게라도 예습을 해 두어야 합니다.

그런데 대답을 하는 학생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틀리던 맞던 대답을 해야 진도가 팍팍 나가는데 대답이 참 드뭅니다.


의외로 "결석"하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물론... 직장을 다니면서, 다른 일을 하면서 대학원을 다니기 때문에 전출하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수강생이 적게는 3명, 많아도 8명에 불과한 수업에 결석의 빈자리는 꽤 큽니다.

"결석생"의 여파가 "출석생"에게 있는 것은 대학원도 같습니다.

(왜 힘겹게 출석한 사람들에게 꾸지람을 하시는....)


2. 논문은 "열정"으로 시작해서 "열정"으로 끝내야 합니다.  


논문은 대학원생에게 숙명입니다.

대학원에 입학해서 졸업할 때까지 식사하는 횟수보다 읽어내는 논문의 수가 더 많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대학원생은 논문을 "열정"을 갖고 읽기 시작해서 "열정"을 갖고 읽기를 끝내야 합니다.  

대충 쓱 보고 넘어가는 논문은... 결국 나중에 다시 읽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 읽을 때 제대로 읽고 제대로 이해하고 제대로 기억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각 학생이 논문을 한 건씩 선정해서 수업시간에 발표하는 강의가 있습니다.

그 수업시간 3시간은 그 학생의 발표와 답변으로 채워집니다.

교수님의 질문, 다른 학생들의 코멘트 등이 있지만, 대부분은 학생의 강독과 답변이 이어집니다.   


왜 이 논문을 발표하게 되었는지?

이 논문 저자의 견해에 공감하는지?

37번 각주의 인용이 제대로 된 것이라 볼 수 있는지?

44번 각주에서 재인용하고 있는 원래의 문헌도 확인했는지?

50번 각주에서 인용한 논문의 페이지가 빠져 있는데 확인했는지?

2020년까지의 통계가 제시되어 있는데, 이후 데이터는 확인했는지?

하급심 고등법원 판례가 인용되었는데, 대법원은 심리불속행 판결을 했는지?


저는 4월 중순에 위와 같은 논문 발표 수업을 했습니다. 단순하게 하나의 논문을 간단히 읽고 토론하는 자리라고 볼 수는 없었습니다. 발표자는 해당 논문에 인용되어 있는 모든 주석의 출처를 확인하고, 저자가 제대로 인용하고 있는지, 곡해하거나 잘못 인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등을 점검하여야 합니다. 예상 가능한 질문에 대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수업시간에서는 그 논문에 대한 이해도가 가장 높아야 합니다. 어쩌면 당연한 것입니다.


그리고 향후 학위논문을 써야 하는 입장에서,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논문들을 분석하고 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논문의 서문은 어떠한 분위기로 시작하는지, 세부목차에 대한 소개는 어떻게 하는지, 판례의 태도를 제시하는 논조는 어떠한지, 법령의 연혁을 핵심적으로 소개하는 방법 등을 옮겨 적어두고 나중에 참고할 수 있도록 정리하고 있습니다. 박사가 되기로 한 이상 이쪽 세계의 언어와 어조를 빨리 익힐 필요가 있습니다.  


3. 끈질기게 분석하여 그 결과물을 세련되게 기획하여 제시하는 것이 "연구"입니다.   


박사과정을 시작하기 전에는 "학자의 연구"가 매우 창의적인 것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래서 저처럼 창의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는 사람은 대학원에 갈 자격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두 달이 지난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새로운 시각의 시사점(참고할 이익이 있는 내용)을 탐구하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연구"입니다.

 


위 "좋은 논문의 자격"이라는 글에서도 언급을 했습니다만, 특히 "법학연구"는 기존 선행 연구의 토대 위에서 새로운 성과를 조금이나마 도출하는 것입니다. 물리학이나 의학과 같이 완전히 새로운 이론을 정립하거나, 새로운 발견을 발표하는 혁신적인 성과를 기대하기는 대단히 어렵습니다.


또한 "법학연구"는 '대중성'과 거리가 멉니다. 멀어도 너무 멉니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은 영역에 홀로 서서 고독하게 사고하고 분석하고 논증하여 글을 써야 합니다. 먼저 걸어간 사람의 발자취가 있다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발자취조차 흐릿하다면, 스스로 길을 만들면서 성과도 만들어 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99.9% 무관심의 영역에 다시 놓이게 됩니다. 슬프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법학이론을 한 단계 발전시키거나, 법조실무에서의 시사점을 도출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입니다. 사실 그것 조차도 저에게는 상당히 어려운 목표입니다. 아직은 실무 측면에서 익숙했던, 지방자치법, 의료법, 행정기본법, 국가계약법 등에 관한 쟁점을 분석하고 관련 선행연구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열정적으로 읽다 보면 또 길이 보일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한편, 약간의 연구 결과가 정리되더라도 그것을 "글"로 읽기 좋게 옮기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일"입니다. 분석하고 논증하는 능력과는 전혀 다른 능력이 요구됩니다. 바로 기획력입니다. 제가 이해하는 기획력은 "스토리텔링"입니다. 자연스럽게 시작해서 자연스럽게 끝을 맺는 이야기처럼 전달할 수 있는 것이 기획력의 핵심입니다.


컨설팅펌에서 크고 작은 프로젝트를 하면서, 국립대병원 기획조정실에서 최고의사결정에 참여하면서, 항상 필요했던 역량은 기획력(스토리텔링)이었습니다. 그리고 기획력은 끊임없는 모방과 시도를 통하여 길러질 수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저에게도 가닥 작은 희망이 있습니다. 비록 다른 분야이긴 했지만, 수 없이 모방하고 시도했던 경험을 통해서 연구결과를 세련되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작은 희망이 있습니다.


아직은 모든 측면에서 부족하고 배울 점이 많은 비루하고 아둔한 연구자입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모방하고 열심히 시도하면서 성장하는 연구자가 되도록 하겠습니다(여기서 모방한다는 것은 저 스스로 다른 논문의 성과를 머릿속으로 따라 해 본다는 의미일 뿐이지, 표절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힙니다).



언젠가는 "나만 몰랐던 민법"과 같이 알록달록하고 새콤달콤한 글로 논문을 쓸 수 있게 되기를 바라봅니다.



 제가 쓴 매거진과 브런치북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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