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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법은 조변 Sep 11. 2023

방장 변호사님과 바른 선배님들

나로 인하여 네가 일을 했으니, 너는 수고한 것이 맞다. 수고했다.

1년 차 변호사 시절에 큰 방을 썼다. 그 방을 방장 변호사님, 동기 변호사님과 함께 썼다. 처음에는 변호사라면 누구나 기대하는 “개인 방”을 쓰지 못하여 속상하기도 했지만, 그렇게 3명이 한 사무실을 쓴 것이 나에게는 행운이었다. 가끔 법무법인 바른 시절이 그리울 때가 있다. 방장 변호사님과 좋은 선배님들 덕분일 것이다.   



방장 변호사님은 나보다 10년 선배는데, 례적으로 한 번도 나에게 말을 놓지 않으셨다. 요즘의 로펌 분위기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에는 선배면 말을 편하게 하는 경우가 많았고, 나 또한 별다른 거부감이 없었다.


그런데 방장 변호사님의 말투에는 하대가 없었다. 1년 차 변호사를 후배가 아닌 “변호사” 그 자체로 대우해 주셨다. 단순히 어투가 “합쇼체”인 것과는 전혀 달랐다. 선후배의 수직적인 관계가 아니라, 수평적인 협업관계로 생각하셨던 것 같다. 경력이 좀 쌓인 지금에서 돌이켜 보면, 그렇게 대우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넉넉히 짐작된다. 방장 변호사님은 엄청난 인내심의 소유자가 아니셨을까 싶다(또는 완성된 인격의 소유자).  


방장 변호사님 덕분에 나 또한 직장에서 그 누구에게도 말을 편하게 놓지 않는다. 아무 친하더라도 말을 낮추지 않는다. 그리고 상대방이 변호사인지, 회계사인지, 사무관인지, 주무관인지를 신경 쓰지 않고, 오롯이 그의 능력과 견해에 집중한다. 그렇게 일하고 있다. 한 사람의 아이디어와 능력을 그의 직함ㆍ직급ㆍ직책 등으로 섣불리 제단하여 평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생각보다 섣불리 제단하는 사람이 꽤 많이 다).


그리고 나는 다른 파트너 변호사님 한 분을 기억하고 있다. 그분은 내가 보낸 모든 메일에 답장을 해주셨다. 도움이 될 턱이 없는 판례 검색 메일을 받고서도 매번 “대단히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답을 주셨다. ‘나로 인해 네가 일을 했으니, 그것만으로 너는 수고를 한 것이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비루한 1년 차 변호사의 결과물을 받고도 그렇게 인사를 해 주신 변호사님은 그분이 유일했다. 그래서 더 감사했다. 아무도 칭찬해 주지 않던, 그 시절(객관적으로 보면 칭찬받을 상황은 전혀 아니지만)에 그분의 한마디가 참 따뜻했다.

      

나 또한 직장에서 정말 형식적인 메일이 아닌 경우, “감사합니다”, “잘 받았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등으로 짧게나마 답장을 하고 있다. 특히, 내가 요청하거나 부탁한 사항을 받았을 때는 반드시 답장을 한다. 고마운 것은 고마운 것이, 고생한 것은 고생한 것이지, 당연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건조하고 팍팍한 직장에서 가장 필요한 한마디라 생각한다.

      

또한, 업무로 지쳐있던 나를 자신의 사무실로 오라고 하여 차 한잔 내려주면서 어려운 점이 무엇인지, 괴롭히는 사람은 없는지 등을 물어시던 변호사님너무 바빠 김밥 한 줄 먹으며 일하고 있을 때 김밥 말고 파스타라도 먹으러 가자고 나를 일으켜 세우시던 변호사님도 기억난다. 바쁠 때 남의 안부를 챙기고, 식사를 챙기는 것이 얼마나 사치스러운 것인지 이제는 안다. 그래서 지금도 생각나고 여전히 감사하다.


법서가 아닌 다른 책도 읽어야 한다면서 자신이 읽은 책을 선뜻 주시던 변호사님, 회의실 들어갈 때마다 필요할 거라고 리걸패드커버(가죽으로 된 고급 메모패드 같은 것)를 입사 선물로 주신 변호사님도 감사한 마음으로 기억하고 있다. 쌓여가는 업무 속에서 생존하듯이 살아가는 로펌 생활에서도, 동료와 후배를 생각하고 배려하였던 선배 변호사님들이 계셨다.


그렇지 않은 변호사님도 있었다. 주말에 절친의 결혼식에 부케를 받으러 가야 한다는 변호사에게 “당신이 결혼하는 것도 아닌데 꼭 가야 하느냐?”라고 질문하시던 변호사님의 그 말씀만은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유감스럽게도 말씀의 주체는 잊어버렸다).  


“쉴 수 있을 때, 쉬어야 한다.” 바른에 다니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오늘 당장 해야만 하는 일이 없다면, 괜히 컴퓨터 앞에 앉아있지 말고 일찍 퇴근하라는 것이다. 내면에서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가 다투고 있을 때, 과감히 퇴근할 수 있도록 독려해 주는 선배님들이 있어 로펌 바른 라이프가 꽤 괜찮을 수 있었다.



1. '방장 변호사님'은 이례적으로 후배들을 온전한 변호사로 대우해 주셨다.

2. 파트너 변호사님 중에 한 분은 사소한 메일에도 고맙다는 인사, 수고했다는 말로 매번 답장을 주셨다.

3. 바쁜 상황에서도 후배를 생각하고 챙겨주셨던 선배 변호사님들이 있었다.

4. 나도 그러한 선배님들 같은 변호사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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