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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법은 조변 Sep 12. 2023

행정부처 사무관에게 물어보는 것이 왜 그렇게 싫었을까

물어보고 찾아보고 확인한 후에 변호사의 판단은 딱 한 스푼만 들어간다.

“공정위에 전화해서 해석이 그러한지 물어보고 알려주세요.” 나를 멘붕에 빠뜨린 선배의 한 마디였다.

몹시도 부끄러운 기억이지만, 1년 차 변호사로서 나는 스스로를 공정거래법 전문가로 생각했다. 학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고, 로스쿨에서 공정거래법도 공부를 했으며, 경제법학회 활동도 했으니, 나만한 전문가가 또 있을까 자만했었다.      


당시 기업결합신고에 관한 이슈가 있었고, 나는 나름대로 열심히 법령 규정과 심사기준을 검토하여 선배에게 중간보고를 하였다. 선배는 내 판단의 “근거”가 무엇인지 물었고, 나는 바로 답하지 못했다. 그 근거는 오로지 “나의 느낌적인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이어서 선배는 “변호사님 생각도 좋은데, 공정위가 실제로 변호사님 생각처럼 검토하고 있는지를 컨펌해 주세요.”라고 말했다. 나를 믿지 못하는 선배가 야속했고, 공정위 공무원은 법률전문가가 아닌데 왜 물어봐야 하나 싶었다. 솔직히 물어보기 부끄럽다는 생각이 강했다.       


공정위 홈페이지에 담당 부서와 담당자를 확인하고 그와 통화하기까지 2시간은 족히 걸린 것 같다. 과거의 ‘나’라고 하지만, 12년 차의 시각에서 보면 답답하고 한심하기 그지없는 신입 변호사의 부족한 행태였다.  



그 당시 나는 ‘사법부의 판단권한’만 알고 '행정부의 해석권한'은 제대로 알지 못했다. 무시했다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법률 규정과 대법원 판례를 공부하기 바빴으니, 행정부의 ‘유권해석’이나 ‘질의회’ 같은 것을 알지 못했고, 혹여 알았다고 하더라도 가볍게 여기고 넘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행정기본법에서 '행정부의 해석권한과 책임'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정도는 알고 있어야 했다.       



위 규정에 따르면, 행정부는 관련 법령의 의미를 해석할 권한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헌법과 해당 법령의 취지에 맞게 해석하고 집행할 책임도 갖고 있다. 



위와 같이,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의 해석권한은 공정거래위원회가, 근로기준법에 대한 해석권한은 고용노동부가, 행정기본법에 대한 해석권한은 법제처가 갖고 있다. 국가법령정보센터에서 법령을 검색하면 그 명칭 아래에 나와 있는 행정기관이 해석권한을 갖고 있는 곳이다(친절하게 부서와 전화번호도 있다).


나는 몰랐지만, 선배 변호사님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공정위에 물어보라고 한 것이다. 만약 공정거래위원회 등 법령소관기관이 명확한 해석을 해주지 않으면, 법제업무 운영규정 제26조에 따라 법제처에 행정부의 최종적인 해석을 요청할 수 있었을 것이다(법제처 법령해석국 법령해석총괄과에서 접수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2023년 9월 1일 기준으로, 1,607건의 법률이 시행되고 있고 5,270건의 법령이 시행되고 있다(국가법령정보센터 법령통계). 로스쿨에서 배우는 법은 많아봤자 민법, 형법 등 10~20건 정도로, 시행되는 법령 중 극히 일부를 깊게 배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실무에서는 처음 보는 법령도 신속하게 검토하고 의견을 제공해야 한다. 법령해석을 할 때, 문구 그대로 해석할 때도 있지만 입법취지나 배경, 다른 법령과의 관계도 함께 고려해야 하므로, 행정부 중 법령소관기관의 입장을 확인하는 것이 꼭 필요한 것이다.


로스쿨에서는 '기본법'과 '대법원 판례' 중심으로 공부하다 보니 다른 형태의 지식은 귀찮고, 하찮게 보는 것은 아닌가 싶다. 하지만 실무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행정부 사무관의 한마디가 사실상 변호사 자문의견서의 전부가 되는 경우도 많다. 변호사는 제대로 질문을 하여 정확한 해석을 받는 일을 하는 것이다(실무에서는 제대로 묻는 것도 쉽지 않지만).

     

변호사는 자신의 지식과 판단을 자랑하는 자리가 아니라, 근거를 충분히 알아보고 잘 정리하여 가장 합리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자리다. 따라서 변호사 개인의 판단은 가장 마지막 단계에서 딱 한 스푼 정도 첨가되는 것으로 충분하다. 고객도 기대하는 것은 변호사의 ‘느낌적인 느낌’이 아니다. 인허가 권한을 갖고 있는 해당 기관의 명확한 입장을 기대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문변호사”의 경우 행정부의 해석을 적시에 확인하고 고객에게 전달하는 것이 유능함의 척도가 된다. 행정부의 서기관님, 사무관님, 주무관님은 상당히 바쁘다. 전화하여 바로 연결이 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적절한 방법으로 적시에 유권해석을 확인하는 것이 자문변호사의 역량이 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과감하게 들이댈 수 있고, 다시 또 들이댈 수 있는 '전투력'이 필요할 때가 있다.

 

변호사시험은 여전히 기본법과 판례 중심으로 출제되고 있다. 로스쿨의 커리큘럼도 기본법과 판례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런데 로스쿨은 실무전문가를 양성하는 곳이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실무에서는 행정부의 유권해석이 중요할 때가 많이 있다. 사법부를 비추고 있는 스포트라이트를 행정부에도 비추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미 발생한 분쟁을 해결하는 것이 사법부의 판단이라면, 행정부의 유권해석은 분쟁을 비켜가게 해 주기 때문이다. 예방이 더 좋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1. 행정기본법에 따라 행정부의 각 부처는 소관 법령을 제대로 해석할 권한과 책임을 갖고 있다.

2. 변호사는 법적인 근거를 충분히 알아보고 잘 정리하여 가장 합리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자리다.

3. 특히 '자문변호사'는 적절한 방법으로 행정부의 해석을 적시에 확인하고 고객에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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