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대학병원의 사내변호사로 채용되었고, 근무부서를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선택지는 ① 법무실, ② 감사실, ③ 기획조정실이다. 변호사라면 ”법무(法務)“라는 단어가 주는 익숙함으로 법무실을 선택하지 않을까. 감사실은 무섭고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고, 기획조정실은 조금 부담스럽기도 하다.
드라마에서 묘사되었던 ‘기획조정실’의 이미지는 주로 기업 간 인수ㆍ합병을 추진하고, 주주 사이에 지분 권력 싸움이 벌어지며,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다소 과격하고(?) 힘 있는(?) 부서였다. 그렇기 때문에 나도 경북대학교병원 기획조정실에서 변호사를 왜 채용하는지 궁금했었다.
그런데 3년 간의 기획조정실 경험에 비추어 보면 그렇게 과격함이 있었던 부서는 아니었다. 오히려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수많은 정책 결정을 해야 하는 부서, 중장기 사업 모델을 구상하고 성장 전략을 고민하는 부서, 여러 행정기관ㆍ공공기관과 협력하고 교류하는 부서로 기억하고 있다. 또한 기획조정실 변호사로서 치과병원 분리 법인화 업무를 했었는데, '과격'하기보다는 섬세하고 치밀하게 추진했던 기억이 있다.
사내변호사의 근무부서는 아래와 그림과 같이 [1유형]에서 [4유형]까지 분화되어 왔다. 기업이 당사자가 되는 소송이 빈번해지면서 외부에 위임하던 소송 수행 업무를 내부화하고자 하는 동기가 있었을 것이다. 내부의 기밀을 보호하는 목적도 있을 것이고, 우리 기업만을 위하여 온전히 근무하길 바라는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채용된 초기의 사내변호사는 주로 법무실 소속[1유형]으로 근무를 했을 것이다. 법무실 소속 변호사는 일반적으로 소송 사건 관리, 수사기관ㆍ세무서ㆍ노동청ㆍ공정위 등의 행정조사 참여, 내부 법률자문, 외부 자문의견서 요청 등의 업무를 담당한다.
[2유형] 준법지원실, 감사실(이하 "감사실")에서는 법적인 문제가 외부화되기 전에 내부적으로 확인하기 위해변호사를 채용했을 것이다. 즉, '내부통제'를 위하여 변호사가 필요했을 것이다.
실무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예산을 집행하기 위하여 준법지원실의 협조결재를 받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특정 사업 계획에 대하여 감사실에서는 우선적으로 '해당 사업의 위법 가능성'과 '예산 집행의 적법성(예컨대, 수의계약 가능 근거)'을 살펴보므로, 법률전문가의 판단이 필요할 수 있아. 또한 이미 집행된 예산과 사업에 대한 사후 정기감사ㆍ특별감사가 진행될 때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수의계약: 공개적인 경쟁입찰방식으로 계약 상대방을 정하지 않고, 특정 당사자와 신속히 체결하는 계약방식
[3유형] 새로운 사업계획이 매력적인데 합법과 위법의 경계선에 있을 때, 법적 검토는 바로 이루어져야 한다. 최종결재 단계도 늦고, 행정처분을 받게 되면 더 늦다. 전략기획실 또는 기획조정실(이하 "기획조정실")에서는 전사적 차원에서 각 부서에서 제출한 새로운 사업계획에 대한 재무적 차원의 타당성과 법적 차원의 적정성, 즉 '적법성'을 검토하여, 실행가능성을 판단한다.
매년 다음 해의 업무추진 계획을 수립하는 것과 별도로 기획조정실에서는 중장기 성장전략을 수립하기도 하는데, 여기에 포함되는 사업계획의 적법성을 사전적으로 점검하는 변호사가 필요하다. 또한, 기획조정실에서는 이사회의 심의ㆍ의결업무를 담당하는데, 의결 사항 중에 내부규정의 제ㆍ개정도 포함되므로, 기획조정실 변호사는 자연스럽게 내부규정안에 대한 심사업무도 담당하게 된다.
*내부규정안을 심사하는데 참고할 자료로 '법제처 법령입안심사기준'이 있음. 총칙, 본칙, 부칙별로 세부기준을 제시하고 있음(특히 부칙에서 시행일, 경과조치, 적용례 등의 기준이 실무적으로 유용함).
현업부서에서 변호사를 채용하는 [4유형]은 가장 최근에 도입되고 있다. 현장에서 사업을 집행하는 경우에도 그때그때 즉각적인 법적인 검토가 필요한 경우가 있다. 그럴 때 타 부서에 있는 변호사에게 법률자문 요청서 공문을 보내어 자문의견서를 받는 과정이 길고 느리게 느껴진다. 같은 부서에 변호사가 있다면, 바로 물어볼 수 있고, 보다 빨리 검토의견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중앙행정기관에 질의하여 유권해석을 받을 수도 있다.
예산 등의 이유로 모든 현업부서가 변호사를 채용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계약(또는 협약) 체결이 빈번하거나 규제의 정도가 강한 분야에서는 바로 옆자리에 있는 변호사가 요긴하다. 자주 발생하는 법적 이슈에 대하여, 즉각적인 검토의견이 필요한 부서 중심으로 변호사 채용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연한 조직에서는, '겸무' 발령을 통하여 둘 이상의 부서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경우도 있다(필자의 경우, 경북대병원 기획조정실 소속 법무총괄을 하면서, 동시에 국제의료사업센터 소속으로 겸무를 했었다).
[1유형]은 이미 발생한 법적 분쟁을 대응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나머지는 사전적인 법적 검토가 주된 목적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2유형]과 [3유형]은 전사적 차원의 법적 검토라면, [4유형]은 개별 부서 차원의 법적 검토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또한 [1유형]에서 [4유형]으로 갈 수록 법적 검토의 시점이 점차 앞당겨진다는 특징이 있다. 다시 말해, [1유형]은 소송 대응 및 관리가 주된 업무라면, [2유형]과 [3유형]은 구체적인 사업에 대한 법률자문이 주된 업무이고, [4유형]은 추상적인 아이디어에 대한 법률자문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다([4유형]의 경우에는 아이디어를 구체화하여 검토할 필요가 있음).
위와 같은 분류는 다소 개념적인 접근으로, 현실적인 변호사 실무와는 다른 점도 있다. 무엇보다 조직 내 '1호 변호사'이거나 '1인 변호사'라면, 소속 부서가 큰 의미가 없을 수 있다. 어느 부서에 소속되어 있든지, 조직 내에서 변호사의 조력이 필요하거나 법적 검토가 필요한 사안이 있을 때 투입될 수 있다.
필자는 경북대병원에서 '1호 변호사'이면서 '1인 변호사'이기도 했었는데, 개별 진료과에서 발생한 사안을 지원하기도 했었고, 병원장님의 법적 의문에 대해서 자문하기고 하였으며, 의생명연구원의 협약 체결 관련 이슈를 검토하기도 했었고, 감사실의 청탁금지법 강의 요청에 협조하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획조정실' 소속으로 근무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기회가 된다면 꼭 경험해 보길 추천한다. 조직 내 주요 의사결정, 부서 간 이견조정 등에 대하여 전반적인 법적 검토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추천한다. 필자도 경북대병원 소속이었던 '치과진료처'의 독립 법인화 업무, 직장어린이집 설치를 위한 건축 업무, 칠곡 분원의 국유지 편입 관련 업무 등 굵직한 사안에 대하여 검토했던 기억이 있다. 상대적으로 업무강도가 더 강할 수는 있지만, 그만큼 넓고 깊은 시야를 가질 수 있다.
이제는 변호사 채용 공고를 볼 때도, '근무부서'를 유심히 보아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 부서가 '법무실'이 아니더라도 주저할 필요는 없다. 그 부서의 특징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커리어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기획조정실도 괜찮은 선택이 될 수 있다.
1. 법무실 변호사는 가장 전형적인 부서로 대외적인 송무 중심의 업무를 하고, 감사실 변호사는 조직 내부적으로 법적인 문제를 판단하는 업무를 주로 한다.
2. 기획조정실 변호사는 조직 차원의 사업계획 및 의사결정에 대한 적법성 검토를 주로 하고, 현업부서 소속 변호사는 현장에서 제기되는 실무적인 다양한 법적 의문을 검토하는 업무를 주로 한다.
3. 조직 내 '1호 변호사' 또는 '1인 변호사'인 경우에는 소속 부서의 업무 외에도 타 부서의 법률 이슈를 검토해야 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