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법은 조변 Oct 03. 2023

환자도 의료인도 꼭 알아야 하는 의료분쟁 배경 지식

환자 측은 이성적으로 기록을 챙기고, 병원은 더 적극적으로 협의할 것.

의료분쟁이 발생할 경우 평균적인 배상금액은 어느 정도일까? 의학드라마에서는 의사의 큰 과실로 환자가 사망하거나 큰 장애를 갖게 되어 큰 배상금을 받게 되는 이야기를 그리기도 한다. 그런데 2013년부터 2022년까지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서 조정 및 중재가 성립하여 지급하기로 한 금액은 평균 960만 원이다. 큰 대학병원이 주로 속해 있는 상급종합병원으로 범위를 좁히면 의료분쟁 한 건당 1,666만 원을 병원이 지급하였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통계연보(2013년 ~ 2022년)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통계연보(2013년 ~ 2022년)


의학드라마에서 흔히 봤던 사례와 조금은 다른 느낌이다. 생각보다 적다는 의견도 있을 것이다. 손해배상금액을 산정하는 방식이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민법'과 '정치'의 영역이라 이 글에서는 다루지 않는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의료사고'와 '의료분쟁'이 발생했을 때 반드시 챙겨야 할 것들이 있다. 환자 측과 병원이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항을 아래에서 간단히 살펴본다.  



■ 환자 측 고려사항


'의료진으로부터 설명을 들은 수술시간보다 훨씬 오래 수술이 진행된다.', '수술이 끝나고 환자가 회복실이나 일반병실로 가지 않고 중환자실로 간다.', '환자가 예상하지 못한 극심한 고통을 계속 호소한다.' 등의 상황은 환자에게 불행한 결과가 발생할 수 있는 시그널 같은 것이다. 의료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환자의 가족 중 누군가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진료기록 사본 전체'를 발급받아야 한다. 그것도 의료사고가 의심되면 즉시 발급을 받는 것이 좋다. 향후 병원과 협상을 하거나, 의료소송을 하거나, 다른 절차를 거칠 때에도 전문가가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이 '진료기록'이기 때문이다. 환자와 보호자를 도와주고 싶어도 '말'에 의존할 수가 없다. '글'인 기록을 토대로 시술과정을 분석해야 한다.


또한, 수술실 CCTV 의무화법(의료법 제38조의2 신설 관련)이 2023년 9월 25일 시행되었다(관련 기사). 전신마취 등 환자의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수술을 할 경우, 환자 또는 보호자가 요청으로 수술장면이 CCTV로 촬영된다(위반 시 벌금 500만원 이하의 형사처벌). 그렇다면 수술을 앞두고 CCTV 촬영을 요청하는 것도 챙겨야 한다. 혹시라도 의료사고의 가능성이 짐작되는 경우, 진료기록 사본 발급신청과 동시에 수술실 CCTV 촬영본 신청도 함께할 필요가 있다.  


의료사고로 의심이 된다면, 병원의 여러 경로를 통하여 구체적으로 요구사항을 전달하여야 한다. 홈페이지상 고객의 소리, CS고객만족팀, QI의료질관리팀, 법무팀 등 최소 둘 이상의 부서에 환자 측의 요구사항을 문서로 전달하여 배달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수 있도록 한다. 요구사항에는 '애초에 설명한 사항과 다른 불행한 결과가 발생한 것인지에 대한 설명', '환자에 대한 현재부터 향후 진료계획 및 비용부담'은 꼭 들어갈 필요가 있다. 내용증명 우편으로 전달할지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병원에 환자 측의 요구사항이 접수되면, 실무선에서 우선 연락이 올 것이다. 그러나 보통 연락을 하는 실무선에서 제시할 수 있는 카드는 많지 않다. 환자 측에서는 진료처장(부원장급) 또는 그에 상응하는 관리자와의 면담을 요청할 필요가 있다. 하나의 부서나 진료과에서 가지는 권한은 크지 않기 때문에, 종합적인 판단과 결정을 할 수 있는 자와의 면담을 요청하는 것이다(경미한 의료사고의 경우에는 실무선에서 종결되기도 함).   


병원과의 협의가 순조롭지 않더라도, 환자의 전원은 신중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병원에서는 그 환자를 더 특별하게 신경 쓸 수밖에 없는 입장이고, 병원을 옮기는 것이 환자의 회복에 지장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래도록 병원이 소극적이기만 하다면,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하 "중재원")에 상담부터 받아볼 것인지 아니면 법원에 바로 민사소송을 제기할 것인지 고민이 필요하다. 중재원의 처리속도는 법원에 비하여 상당히 빠르다. 상담부터 종결까지 보통 반년 정도 걸린다고 보면 된다. 민사소송은 대법원까지 가면 보통 2년 정도 걸린다.


한편, 중재원 상담과정에서, 조정중재과정에서, 소송과정에서 의료사고의 원인이 의료인 과실이 아니라는 판단이 있을 수 있는데, 환자 측에게는 받아들이기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그 판단이 의학적으로 그리고 법적으로 맞을 수 있다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할 때가 있다(조심스럽고 유감스럽지만 의료인의 과실로 인정되지 않는 사례가 대략 절반 이상이다). 무의미하게 분쟁을 장기화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 병원의 고려사항


환자 측의 단순한 민원 사례와 진지한 의료사고 사례를 구분하여 신속히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물리적으로 그리고 구조적으로 '실시간 모니터링 수준'으로 의료사고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여러 부서에서 보고되는 사안 중에서 중요사안은 적시에 보고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특히, 반복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들어오는 환자 측 의견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의학적으로는 큰 의미가 없더라도 가볍게 넘기지 않아야 한다. 감정적인 대립이 극심해지기 전에 적시에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환자 측과 최초 면담 일자를 가급적 빨리 잡는 것이 좋다. 최초 면담에서 모든 것을 결정하지 못하더라도 환자 측의 요구사항을 경청하고 확인하고 정리할 필요가 있다.


21세기가 되어서 의료사고 이후 관련 진료기록을 적극적으로 조작하는 사례는 없어졌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있어야 할 진료기록이 전혀 없는 사례가 더러 있다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관련 판례: 대법원 2007다80657 판결 링크). 당연히 있어야 할 진료기록이 없다는 점은 병원에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는다. 판사는 기본적으로 의료인이 작성한 진료기록을 신뢰하지만, 사후에 조작되었다는 의심을 갖게 되면 어떠한 진료기록도 믿지 못하게 된다. 그러한 토대 위에서 판결이 내려진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마취에 문제가 있었지, 내시경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라는 식으로 병원 부서 간에 책임을 떠넘기는 발언이 나오면, 병원 차원에서는 책임을 인정하는 것이 된다. 그리고 대화를 하는 사람 사이에서 녹음을 하는 것이 불법이 아니다. 임직원의 책임전가 발언이 녹음되면, 그것은 매우 유력한 증거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병원에서는 환자 측과 협의하는 채널을 하나로 유지할 필요가 있다. 책임을 은폐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공식적인 채널로 원보이스를 유지하여 오해의 소지를 없애라는 것이다.


아래 도표는 민사소송 중 의료과오 소송으로 분류된 1심 사건의 원고 승소율과 1심 소 취하 비율을 보여준다. 20년 간 원고인 환자 측에서 일부라도 승소(병원에 책임이 있다는 뜻)한 비율은 점차 증가하는 반면, 환자 측에서 소송을 취소하는 비율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소송에 임하는 병원에게 결코 유리하지 않게 의료분쟁의 환경이 변화하고 있다. 조정, 중재, 소송 등 공식적인 절차에 들어가기 전에 환자 측과 진지하게 협의하고 또 합의로 종결할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의료과오 소송 통계(출처: 법원행정처 사법연감)




1. 의료분쟁은 결코 병원에 유리하지 않은 쪽으로 변화하고 있다.

2. 환자 측은 의료사고가 의심되면 즉시 관련 진료기록 사본과 수술실 CCTV 영상 촬영본을 신청할 필요가 있다.

3. 병원은 진료기록 완결성을 유지하면서 적극적으로 환자 측과 면담하여 그 사안을 조속히 합의할 필요가 있다.

이전 23화 고객도 변호사도 알아야만 하는 대학병원 법률 실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