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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균의 코드블랙 Nov 12. 2019

E블록의 침입자

감염병, 국경은 없다②

감염병 통제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극도로 악화된 환경오염, 탈북민 등의 새로운 형태의 난민 및 이민자의 국내 유입, 더욱 활발해지는 국제 교류는 새로운 감염병 문제에 대한 우리사회의 대응을 더욱 어렵게 한다. 감염병의 위협이 비단 남북 어느 한 정부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세균과 바이러스는 남북미의 정치 구도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과거 홍콩과 중국을 비롯해 인접한 상당수 국가를 강타한 급성호흡기증후군(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 SARS, 이하 사스). 나는 메이(가명·2003년 당시 12세)의 젖은 눈을 아직 기억하고 있다. 바이러스는 그녀의 가족을 앗아갔다.    


2003년 3월 말 메이에게 이상이 생겼다는 것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 사람은 어머니였다. 해열제를 먹었지만 열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기침이 점차 심해졌다. 메이는 가슴이 답답해 울음을 터뜨렸다. 5일후 엄마는 침대 위에 엎드린 채 숨을 헐떡이는 메이를 발견했다. 남편이 딸을 일으켜 세우는 동안 그녀는 전화기의 999번을 눌렀다. 울먹이는 목소리로 수화기에 대고 외쳤다. 


구급차, 구급차를 보내주세요  



그 순간에도 메이의 옆집, 그 옆집, 아래층과 위층 등 홍콩 구룡의 아모이가든 E블록에는 고열, 기침, 두통과 호흡곤란을 호소하는 이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사스라는 신종 감염병이 본격적으로 홍콩 전역을 뒤덮고 있었다. 그해 4월 15일을 기점으로 E블록을 시작으로 B, C, D블록으로도 감염이 확산됐다. 메이의 부모도 사스에 감염됐다. E블록에서만 107명의 환자가 발생했다.  


“휴교령이 내려졌습니다. 사람이 많은 공공장소에 가지 말 것을 지시했죠. 당시만 해도 대중은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몰랐기 때문에 공포심이 극에 달했습니다.”


역학 조사에 참여했던 전직 정부 인사 A씨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아모이가든을 봉쇄한 상태에서 사스 확산 역학조사를 벌였습니다.” 그러나 홍콩 보건부는 사스에 대한 충분한 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불안이 커져갔다. 감염 사실을 숨기는 이들도 많았다. A가 말했다. “통제에 애를 먹었어요.” 현지 의사는 대처가 부실했다고 말해주었다. 


“사스가 빠르게 확산된 탓에 정부의 초기 대응이 여러모로 미비했어요. 환자를 돌보던 의료인들이 계속 희생됐지만, 마스크와 방호복 등도 제때 지급되지 않았어요. 사스에 대한 정보가 현저히 부족해 역학 및 통제가 늦어졌어요. 결국 대중의 공포는 급속도로 확산됐고, 정부 정책에 대한 협력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습니다.”


정보가 부족하자 민간에서는 어처구니없는 방법이 동원되기도 했다. 한 주민의 증언이다.

 

“구룡의 상인들은 가게 입구에서 빙초산을 태웠어요. 산을 태우면 예방이 된다는 이야기가 돌았기 때문이죠. 침사추이를 비롯해 홍콩은 혼돈의 아비규환이었어요.”



상황이 악화되자 홍콩에서 근무하던 주재원 가족들의 귀국행렬이 줄을 이었다. 당시 부동산 기업에 다니던 김일도씨(가명·50)도 가족을 한국행 비행기에 태워 보냈다. “저는 홍콩에 남았지만, 가족까지 위험에 노출시킬 수 없었어요. 가족을 보내고 나서 저는 자의반 타의반 재택근무를 했습니다. 집에 갇혀 잘 때도 마스크를 쓰고 잘 정도였어요.” 


일도씨의 회사는 사스로 연쇄 도산한 기업 리스트에 포함되었다. 사스의 공습은 홍콩 중산층의 몰락을 가져왔다. 그때의 분위기를 두고 김씨는 이렇게 말했다. 


경악할만한 충격파 


아모이가든 거주민 329명이 사스에 감염됐고 이중 33명이 목숨을 잃었다. 메이는 목숨을 건졌지만, 그의 어머니는 끝내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어렵사리 그녀를 만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현재 이십대 후반이 된 메이는 15년 전의 그 일을 입 밖에 내고 싶지 않아 했다. 가만히 찻잔을 만지작거던 그녀가 한참 만에 침묵을 깼다. 목소리는 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사스는 제게 엄마를 빼앗아갔어요. 또 다른 사스가 오면 어떡하죠?” 


침묵의 침입자. 사스는 그녀에게 깊은 그늘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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