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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균의 코드블랙 Nov 16. 2019

감염병은 정치적이다

감염병, 국경은 없다③

2018년 경기도 안양


2018년 12월 28일 우리나라는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통해 경기도 안양의 홍역 발생 정보를 북측에 통보했다. 통일부와 보건복지부는 이번 홍역 발생 정보 통보에 대해 “남북 간 감염병 전파를 차단하고, 북한에서도 이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하자는 차원”이라는 설명을 내놨다. 원칙적으로는 북한도 전염성이 높은 감염병 발생 시 우리 측에 통보해야 한다.


그해 11월 7일 남북 보건의료 분과회담을 시작으로 12월 12일 실무회의 논의가 있었다. 남북 간 전염성이 높은 홍역, 메르스 등 감염병이 발생하면 이 정보를 공유하기로 했다. 원칙적으로는 그렇다. 12월 26일에는 북한 개성 판문역에서 남북한 철도·도로 착공식이 열렸다. 현재는 소강상태이지만, 남북 간 철도와 도로가 개통되면 부산에서 시베리아를 횡단해 유럽까지 가는 ‘철의 실크로드’ 구축도 가능하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위협도 발생할 수 있다. 감염병 확산과 유입의 위험성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국가 간 물리적 장벽이 존재해도 감염병까지 막아내기는 어렵다. 남북 간 교류 확대에 있어 감염병의 위험은 가볍게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      


사진=김양균의 현장보고


2014년 홍콩


1997년 중국에 반환된 홍콩은 본토로부터 유래한 신종 감염병의 위협 대책은 21세기 최초의 전 지구적 전염병으로 기록된, 급성호흡기증후군(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 SARS, 이하 사스) 이후 본격화됐다. 메르스 등 여러 감염병의 위협과 함께 중국발 감염병의 홍콩 유입은 홍콩인에게 공포였다. 사스를 뛰어넘은 건 이미 한번 접했던 ‘바이러스’의 공습이었다.


2004년 사스가 어느 정도 진정되면서 홍콩 정부의 대응에 대한 여러 분석이 나왔다. 여러 보고서를 종합하면 사스의 전염 속도가 빠른 탓에 준비가 부족한 상태로 대처에 나섰다는 점이 지적됐다. 이후 정부는 질병 예방통제센터를 설립하고 제2의 사스를 대비했다. 공식 문건만 보면 중국 본토와 홍콩 사이의 전염병 연구 및 역학 정보 공유는 비교적 원활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감염병의 허브’라는 오명을 떨치기 위해 홍콩 정부와 의학자들의 연구도 가시적인 성과를 냈다.


그러나 2015년 홍콩은 또다시 독감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위협을 받았다. 당시 금융회사에서 일하던 데이빗 창(가명·28)도 홍콩 독감의 위협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사진=김양균의 현장보고


2018년 12월 4일 오후 7시 홍콩 침사추이에 위치한 대형 쇼핑몰인 하버시티 2층. 나는 여기서 창다웨이(가명·55)를 만나기로 했다. 전날 받은 ‘검은 상의를 입고 기다리라’는 메시지가 내가 아는 전부였다. 약속시간이 됐지만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1시간 정도를 더 기다리자 짧은 머리에 갈색 점퍼를 입은 중년 사내가 내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잠자코 걸음을 옮기던 사내는 인적이 드문 골목으로 나를 이끌었다. 허름한 4층 건물은 불이 꺼져 있어 을씨년스러웠다. 3층의 안전가옥으로 오르기 전 일층의 동네병원은 불이 유독 환했다. 창다웨이는 자신이 정부쪽 일을 한다고 했다. 차가 우려지고 그가 담뱃불을 붙였다.


“사스 때 어머니가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십년이 지나 아들은 ‘감기에 걸린 것 같다’고 했어요.”


2015년 2월 14일 퇴근 후 집에 돌아온 데이빗은 “몸이 좋지 않다”며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15일 아들의 상태는 더욱 나빠졌다. 해열제가 말을 듣지 않았다. 기침도 심했다. 창다웨이는 차를 끓여 데이빗에게 먹였다. 16일 데이빗은 회사에 가지 못했다. 두통과 근육통도 생겼다. 이때부터 구토도 시작됐다. 화장실에서 한참을 나오지 못했다. 물조차 넘기지 못했다. 17일 호흡에 문제가 생겼다. 구급차로 프린세스마가렛 국립병원에 실려 간 아들에게 의사는 “인플루엔자”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사흘 뒤 데이빗은 사망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한 집에 한 명꼴로 환자가 나왔죠. 저도 아들에게서 독감을 옮아 앓았습니다. ‘내가 데이빗 대신 목숨을 잃었다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을 종종 했습니다.”      


사진=김양균의 현장보고


2019년 중국


2019년 11월 16일 베이징위생건강위원회는 내몽고 시린궈러에서 폐 페스트 환자 2명이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중국 당국의 정보 은폐 의혹이 나왔다. 추가 환자가 발생했다는 소문도 돌았다. 환자들이 시린궈러에서 베이징까지 500킬로미터를 넘는 거리의 이동경로, 확진판정까지 10일이 걸린 것에 대해 발병 사실을 숨기려 한 게 아니냐는 갑론을박이 웨이보 등에서 들끓었다. 그러자 중국 당국은 인터넷에서 흑사병과 관련된 글을 전부 삭제했다.           


다시 2018년 홍콩


창다웨이는 내게 베이징과 홍콩의 정치가 감염병에 영향을 끼친다고 했다.


“홍콩은 과거에도 인플루엔자로 심각한 타격을 입은 적이 있었습니다. 정부는 꽤 준비를 잘해왔지만, 감염병은 늘 예상을 뛰어넘었습니다. 특히 중국에서 유래한 감염병의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침묵해야 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홍콩은 중국의 통제를 받으니까요.”


품안의 녹음기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염려가 돼 잠시 질문에 뜸을 들인 사이 그가 물었다. “남북 감염병도 정치에 휘둘리지 않나요?”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사진=김양균의 현장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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