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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균의 코드블랙 Oct 30. 2019

어느 연약한 소녀의 죽음

쓸만한 것은 검정 철제 골격이 전부였다. 외관은 침대지만 낡고 먼지가 풀풀 날렸다. 침상은 환자의 땀과 고름, 핏자국이 눌어붙어 악취를 풍겼다. 하늘색이었음을 짐작케 하는 침대보는 갈기갈기 찢어져 너덜거렸다. 여기에 누웠던 누군가는 두 발로, 다른 이는 들것에 실려 ‘치워졌을’ 것이다. 삶을 가로막는 건 병마와 빈대, 파리 떼였다.


토고 아차베 현지 보고서가 A씨에게 도착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리포트에는 현지 의료시설의 사진이 동봉돼 있었다. 그는 사진을 보고는 “충격을 받았다”고만 짧게 말했다. 수일이 지나 나는 그부터 아차베의 소녀, ‘아멜레’의 사연을 들을 수 있었다.


사진=김양균의 현장보고


토고는 서아프리카에 속한 국가로 가나와 베넹 사이에 위치해 있다. 토고를 이루는 5개 지역 중 ‘플라토’는 ‘아차베’로 구성된다. 3만3068명이 사는 아차베는 20여개의 촌락으로 구성된 마을 공동체다. 건기와 우기가 반복되고 요토 등 6개의 하천이 지나기 때문에 물이 풍부하다. 문제는 흙이다. 겉은 사토와 점토로 덮여있지만 속은 페트라이트로 가득해 농경에 불리하다.


목축업과 상업이 소규모로 이뤄지지만 주도권은 이주민들이 쥐고 있다. 아차베 거주민들은 건기가 되면 나이지리아와 베넹 등 인접한 국가로 돈을 벌러 간다. 빈곤은 일상이다. 하루하루를 연명하기만도 벅차다. 그리고 아멜레의 집도 가난하다.   


도처에 세균이 날린다. 말라리아, 홍역, 뇌막염, 결핵, 수두, 각종 기생충병은 특히 면역력이 약한 어린 아이들을 노린다. 아멜레는 운이 좋았다. 살아남았다. 몸이 약한 아멜레는 집에서 주로 시간을 보낸다. 엄마가 일을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아멜레는 혼자다. 소녀는 나비처럼 날아다니고 싶다. 꽃 냄새도 맡고 싶고 다른 마을에도 가보고 싶다.


최근 들어 소녀는 자주 아프다


설사와 토악질을 하고 나면 하늘이 노랗다. 허멀건한 액체를 쏟아낸다. 더러 피를 쏟는다. 멀리 있는 보건소에 가려면 엄마가 일을 쉬어야 한다. 엄마가 일을 못하면 밥을 먹을 수 없다. 그래서 아멜레는 아파도 참는다. 어제부터 온 몸이 뜨거웠다.


설핏 잠든 꿈속에서 아멜레는 나비처럼 날았다. 날개를 흔들자 은빛 가루가 반짝였다. 소녀는 엄마 등에 업혀서도 나비 꿈을 꾼다. 고열에 들뜬 딸을 업은 엄마는 연신 걸음을 옮겼다. 눈에선 걱정이 흘렀다.


사진=김양균의 현장보고


보건소는 흙집이다. 돌로 틀을 잡고 흙을 발랐다. 여기에 하얀색 페인트를 칠한 게 전부. 페인트는 곳곳이 벗겨져 흉물스럽다. 서까래에 엮어놓은 갈대 사이로 쥐 한마리가 쏜살같이 달려가고 우기만 되면 슬레이트 지붕에서 물이 줄줄 샌다. 이 낡은 오두막은 그러나, 이 지역의 유일한 의료시설이다. 보건소라고는 하지만 변변찮은 의료 장비나 의사는 없다. 간호사 한 명과 보조 둘이 전부다.


보건소에서는 말라리아 등의 예방 접종이 이뤄지지만 발병하고 나서야 찾아오는 환자가 더 많다. 복통·설사·고열·이질을 호소하는 환자도 많지만 출산이 임박한 산모도 이곳을 찾는다. 위생 환경이 열악하다보니 2차 감염으로 인한 사망도 적지 않다. 의료진과 약은 항상 부족하다.


먼저 온 아이는 침대를 양보할 생각이 없다. 녀석은 입을 삐쭉거리고는 눈을 감고 잠들어 버렸다. 아이를 데려온 아비는 걸그렁 소리를 내며 숨을 쉰다. 아이나 아빠나 몸이 성치 않다. 간호사가 아멜레를 알아본다. 엄마도 여기서 아멜레를 낳았다. 간호사는 소녀를 직접 받았다. 소녀의 상태를 지켜본 그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업혀 온 아이들은
아멜레 말고도 많았다


위중한 환자는 노체의 지역 병원으로 가야한다. 구급차는 없다. 직접 가야한다. 병원까지는 13km. 그러나 도로 상황이 여의치 않다. 비포장도로는 우기가 되면 진흙투성이다. 사경을 헤매는 이가 발만 동동 굴러도 진흙에 빠진 바퀴는 요지부동이다. 제때 응급처치를 받아 생을 잇는 건 행운이고 그렇지 못할 경우엔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엄마가 다시 아멜레를 들쳐 업었다. 그러나 집 방향과는 반대로 걷고 있다. 보건소에서는 치료할 수 없다고 했다. 엄마는 걸어서 노체까지 갈 작정이다. 갈 길이 멀다. 위험하기도 하다. 언제 강도를 만날지 알 수 없다. 운 좋게 차를 얻어 타고 병원에 도착해도 치료를 받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한참 진흙길을 걷던 엄마가 멈춰 섰다. 아멜레는 축 늘어져 있었다. 소녀는 엄마에게 나비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곤 했다. 못 이기는 척 이야기를 해주면 소녀는 눈을 반짝이며 듣곤했다. 그때마다 아멜레는 말했다.



저도 나비가 되고 싶어요


그러나 아멜레의 하얗게 뒤집어진 눈에는 나비 대신 날파리가 새까맣게 달라붙어 있었다. 이 마을에는 아멜레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 2215명이 산다.


사진=김양균의 현장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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