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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균의 코드블랙 Nov 17. 2019

향락의 천국에 온  당신을 환영합니다

도박 중독(pathological gambling). 세계보건기구(WHO)가 질병코드를 부여한 정신질환. 도박 의존자는 도박을 할 때만 뇌 활성도가 높아지고 돈을 따는 등 도박에서 승리하면 뇌는 엔돌핀과 도파민을 분비한다. 도박은 승리 등 보상이 간헐적일 때 특히 끊기가 더 어렵다.       


사진=김양균의 현장보고


새벽 1시 마카오 국제공항.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입국장은 이미 불이 꺼져 있었지만,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게이트가 열리고 입국자가 하나, 둘 들어오자 이들도 움직였다. 입국자를 주시하는 눈빛이 번뜩였다. 그들은 타깃을 찾고 있었다. 남성이면 좋다. 일행에 여성이 없는 혼자이거나 2~3명도 괜찮다. 어수룩해 보이면 낙점 확률이 높고 주머니까지 두둑하면 금상첨화다.


택시 정류장은 이쪽으로 가야하거든요  


한 여성이 말을 걸었다. 30대 초반의 한국인이었다. 부자연스러운 친절이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보폭을 맞춰 따라왔다. 궁금한 게 많은 듯 했다. 숙소 예약은 했느냐, 호텔이 어디냐, 직업은 무엇이고 일행은 있는지를 연거푸 캤다. 적당한 타깃인지를 알아보기 위한 단계다.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대상을 물색하는 작업은 대개 여성이 맡는다. 호구는 젊고 미모를 갖춘 여성들에게 순순히 원하는 정보를 실토한다.


“사기란 게, 털어먹을 놈이 테이블에 앉아있다, 그럼 끝난 거예요. 문제는, 테이블에 앉히기 위해서 우리가 얼매나 공을 들이느냐. 테이블에 앉으면 뭐하냐고? 그 작업이 얼매나 중요한데!” -영화 ‘범죄의 재구성’ 중에서  


자신을 A실장이라고 소개한 그가 내민 황금색 명함에는 큼지막한 글씨로 ‘M민박’이라고 적혀 있었다. ‘가명이 분명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A실장이 비로소 용건을 꺼냈다.


게임도 하실 거죠?


물론 도박을 의미했다. ‘풀코스’, ‘롤링’ 등 그가 전문 용어를 일사천리로 뱉어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여러 도박업자들은 도박이란 말 대신 게임이란 표현을 즐겨 썼다. A는 “꼭 연락하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러자 한 무리의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둘러쌓다. 그들은 반쯤 억지로 명함을 쥐어주면서 꼭 연락하라고 했다. 숙소로 이동하는 동안 잠자코 핸들을 잡고 있던 운전사가 입을 열었다. 그가 좀 전의 작은 소동을 고스란히 지켜봤음을 나는 알고 있었다.


“마카오는 처음이죠?”


“네.”


“한국 사람들은 극성이에요. 손님을 자기 차로 낚아채 버린다니까요.”


“어디 데려가는지 아세요?”


“뻔하죠. 도박과 여자…. 한국인(정확히는 남성) 중에 그러려고 오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창문을 열자 습한 바람이 밀려왔다. 멀지 않은 거리에 번쩍이는 마천루가 눈에 들어왔다. 화려한 카지노의 네온사인이  도로에 고인 빗물에 반사됐다. 택시가 쏜살같이 그 위를 지나가자, 수면에 비친 이미지가 출렁이며 일그러졌다.      


사진=김양균의 현장보고


돈의 천국  


1999년 중국에 반환되기까지 마카오는 100여년이 넘는 세월동안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다. 그 영향으로 언어와 음식 등 문화 전반에 아직 포르투갈의 색채가 짙게 남아있다. 현재 중국의 일국양제 정책에 의해 마카오는 특별행정구 기본법에 의거, 비교적 높은 수준의 자치권을 인정받고 있다.


아열대 기후이지만, 토양은 농사에 적합지 않다. 척박하고 인구 밀집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러한 마카오에 돈이 몰린 건 관광업, 더 정확하게는 카지노가 들어서면서부터다. 마카오 경제는 카지노에 기대고 있다. 여행자가 카지노에서 쓴 돈은 자그마치 GDP의 94%. 세수입의 80%도 여기서 나온다.  


빛이 밝을수록 그림자는 짙다. 아시아의 라스베이거스의 뒷골목에는 독버섯처럼 기생하는 범죄와 퇴폐가 숨겨져 있다. 술과 여자, 도박을 기대하며 이곳을 찾는 숱한 이들 중에는 한국인도 많다. 몇 시간이면 닿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지갑을 탈탈 털어먹고 사는 또 다른 한국인들도 마카오의 한 귀퉁이를 서성댄다. 그들도 나름의 고충은 있다. 뒤를 봐주는 조직폭력배에게 수입의 일부를 상납하고, 경쟁도 심해져 호구를 찾는 일은 예전 같지 않다. 그러다 보니 이들 사이에는 주먹다짐이나 심지어는 칼부림이 벌어지기도 한다.  


사진=김양균의 현장보고


혼자 오는 사람들도 많아요.
우리는 커미션으로 먹고 살죠


한 업자가 내게 한 말이었다. 취재 중 만난 여러 업자들의 생계는 누군가가 돈을 탕진해야 가능해지는 식이다. 이들은 챙기는 돈은 호구가 얼마나 돈을 잃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때문에 실장으로 불리는 자들이 호구의 일거수일투족을 챙기며, 도박을 계속 하도록 유도한다.


“사이즈가(도박에 쓰는 돈의 액수가) 커지면 숙박비와 항공권은 무료에요. 손님의 공항 픽업부터 모든 과정을 챙겨주죠. 손님은 롤링(판돈이 큰 ‘바카라’ 도박을 VIP 객장에서 하는 것)만 하면 되는 거예요. 마카오에 돈만 많이 들고 오면 손 하나 까닥하지 않아도 알아서 다해주죠. 실장에게 필요한 걸 말하기만 하면 된다니까요.”


모든 것은 돈의 액수에 달려있다. 상한선은 없지만 하한선은 있다. 롤링을 하려면 10만 홍콩달러(한화 1400여만 원)도 부족하다. 액수가 커질수록 불법적인 요구도 가능해지는 이곳은 흡사 향락의 신 디오니소스의 낙원을 방불케 했다.


“얼마나 바카라 게임에 돈을 쓸 건지를 알려줘야 해요. 50만 홍콩달러(한화 7000여만 원)부터 게임을 시작하면 사우나(윤락업소)에 데려 가는 건 일도 아니죠. 그 이상도 전부 들어줘요.”


한몫 단단히 뜯어낼 호구를 한국에서 모집해 현지로 원정을 떠나는 경우도 많다. “도박과 술, 성을 살 수 있다”는 유혹에 넘어간 이들이 현지의 조직폭력배와 연계된 카지노와 술집에 들어선 순간부터 돌이킬 수 없는 늪에 빠지고 만다. 쾌락은 빈털터리가 될 때까지만 계속된다. 이후 기다리는 건 무일푼이 되었다는 악몽이다. 은밀한 일탈을 찾아 마카오행 비행기에 오른 순간부터 추락은 예정돼 있다. 한 업자가 말했다.


하여간 한국사람 때문에 먹고 산다니까요      


사진=김양균의 현장보고


인생을 건 도박


우리 형법 제246조는 도박을 불법으로 규정한다. 해외 카지노에서 도박을 하면 불법 도박을 한 것으로 분류된다. 또한 도박을 하다 적발되면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물론 ‘일시오락’처럼 예외적인 경우도 있지만, 이는 오롯이 재판부의 판단에 따른다. ‘상습도박’의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도박에 쓴 돈은 외환관리법 위반 혐의를 받을 수 있다. 단순히 카지노를 출입하는 것도 엄밀하게는 불법이다.


이렇듯 우리 법은 해외 도박에 대해 엄하게 다스리고 있지만, 왜 마카오로, 카지노로 도박 여행을 떠나는 이들은 줄지 않을까? 공항부터 도박과 성매매를 풀코스로 내세우며 호객 행위를 하는 속칭 삐끼들이 들끓고, 이들이 내건 풀서비스는 불법의 연속이지만, 이들은 “단속은 없다”고 단언한다.   


“마카오에서 도박을 하다 덜미가 잡힌 유명인들이요? 공짜 도박을 하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거액의 빚을 지게 되죠. 해외에서 유명인이 공짜로 거액 도박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 끝장이잖아요. 빌미를 잡아 협박을 하다 결국 돈을 뜯고서 터뜨리는 거예요. 운동선수나 연예인, 제가 본 것만 한, 두 명이 아니에요.”


카지노에는 창문이 없다. 그곳에선 낮과 밤이 없다. 재미로 혹은 호기심에 카지노에 온 이들은 눈앞의 황금열쇠에 넋을 빼앗겼다. 비루한 현재를 역전시킬 한 방은, 그러나 닿을 듯 닿지 않는 신기루에 불과하단 것을 그들은 알지 못한다. 정신을 차렸을 땐 무일푼에 돌아갈 여비조차 없는 비참한 지경에 이르고 만다.


이들의 비극과는 상관없이 아시아의 라스베이거스는 오늘도 불을 밝힌다. 한 방과 일탈을 꿈꾸며 전 세계에서 모여든 이들은 오늘도 이곳에서 인생을 걸고 밤을 지새운다.   


사진=김양균의 현장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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