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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균의 코드블랙 Nov 30. 2022

설명되지 않는 통증

이태원 참사와 트라우마


"이태원 참사는 트라우마 자체입니다. 현장 참혹이 너무 크다보니 참사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사람들은 전형적인 트라우마 증상을 보이고 있어요."

      

심민영 국립정신건강센터 국가트라우마센터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설명이었다. 2022년 10월 29일 오후 10시 15분경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발생한 이 대형 참사 직후 국가트라우마센터를 중심으로 유가족과 부상자, 이들의 가족 등에 대한 심리지원이 실시되었다. 심민영 센터장은 이태원 참사 이후 적어도 초기 석 달 동안은 트라우마 대상자를 안정화시키기 위한 치료와 심리지원이 대거 투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트라우마 관리 등 정신건강 관련 지원 서비스는 아직 열악하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소위 땜질식 처방이 이뤄지는 현재의 방식을 탈피해야 한다고 지적해왔다. 그러려면 심리지원 투자 및 인력 확대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재난과 트라우마 관리 핵심을 맡고 있는 심 센터장도 같은 생각이었다.      

by 픽사베이


“이태원 참사가 야기한 트라우마를 어떻게 진단하시죠?”     


“이번 사태는 트라우마 자체입니다. 직·간접으로 참사를 접한 사람들의 트라우마가 너무 강력합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비대면 심리지원이 활성화되었지만, 이태원 참사는 그 트라우마 강도를 고려해서 전부 대면상담으로 전환해 진행 중이에요. 찾아가는 심리지원도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치료가 요구되는 상황도 포함되는데요. 유가족과 부상자, 그리고 그들의 가족·친지들에게서 너무나도 전형적인 트라우마 증상이 발견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참사의 현장에 장시간 노출되었던 것이 트라우마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재난과 같은 어떤 사건은 한 번 순식간에 발생하고 현장은 차단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재난을 겪은 사람들은 그 찰나의 기억이 각인(刻印)돼 트라우마로 고통 받게 됩니다. 이태원 참사의 경우는 매우 강력하게 현장이 목격된 영향이 있고, 목격한 현장의 참혹성 정도가 너무 컸습니다. 무엇보다 노출의 시간이 길었습니다.      


때문에 대상자들은 상당한 트라우마 반응을 보이고 있어요. 병원 치료와 같은 적극적인 심리지원 서비스가 진행된 이유이죠. 통상 심리지원은 의료기관 연계 후 모니터링의 단계를 거치는데 이번에는 초반부터 적극 개입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어요.“     


“우리사회에서 트라우마의 위험성이 간과된 부분이 있다고 봅니다. 트라우마는 왜 위험합니까?”     


“트라우마와 스트레스의 차이는 본인의 안전이 위협받았는지 여부입니다. 어떤 것이 고통스럽고 짜증난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안전이 위협을 받았느냐가 핵심이란 거죠. 본인의 안전을 위협받았다는 것은 그 사람의 근간이 뒤흔들리는 것입니다. 생존의 위협을 받으면 우리 몸과 마음은 본능적으로 강력한 신체 반응을 보입니다. 트라우마 당사자는 상당한 고통에 시달리지만, 이 고통은 신체 부상이 아니어서 보이지 않습니다. 트라우마 당사자는 트라우마로 사투를 벌이고 있음에도 ‘생존자’라는 이유로 그의 상태를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어요.     


부상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외상은 회복해도 충격의 진정과 완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그가 경험한 안전의 위협은 끝나지 않은 것입니다. 끊임없는 생존의 위협에 시달리는 고통은 결코 경험하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트라우마를 절대로 가볍게 대해서는 안되는 이유입니다.”     


“트라우마 초기 개입이 중요하다고 하셨어요. 왜 그렇습니까?”     


“전쟁, 재난, 사고와 같은 생존을 위협하는 충격을 경험한 사람에 대해 초반에 치료를 포함한 안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트라우마 증상이 굳어지게 됩니다. 쉽게 말해 몸에 각인된다는 거죠.  한번 각인이 되면 이 충격은 실제적인 통증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설명되지 않은 통증’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죠. 그렇게 되면 우울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불안장애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PTSD는 우울증을 비롯해 가장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증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이태원 참사를 겪은 트라우마 대상자에 대해 석달 내에 회복을 촉진시켜야 합니다.”     


“경찰, 소방관, 의료진처럼 이태원 참사 대응인력도 트라우마에 취약한 상태입니다.”     


“대응인력들은 현장에서 참혹한 상황을 반복적으로, 상세한 부분까지 목격하기 때문에 트라우마가 누적됩니다. 때문에 산업재해로 바라보아야 할 필요도 있습니다. 구호 노력에도 책임을 추궁 받는 상황에 놓이기 때문에 ‘소진’의 상황도 맞닥뜨립니다. 이전에도 이들은 코로나19 팬데믹 대응도 맡아왔기 때문에 이미 소진된 상태였어요. 비슷한 경험을 하는 동일 직업군은 집단 상담에서 더 도움을 받곤 합니다. 우린 소방·경찰·언론·의료진·학교 등을 대상으로 집단 상담을 실시하고 있어요.”


“TV, 뉴스, 유튜브로 이태원 참사에 간접 노출된 저 같은 일반 국민들의 트라우마 관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론적으로 미디어를 통한 간접노출은 트라우마의 대상으로 분류되진 않습니다. 그렇지만 간접 노출이 트라우마에 영향이 주지 않는다고 볼 수 없다는 연구도 발표되고 있죠. 이 경우 직접 경험자보다 예후가 좋습니다. 정신건강의 다른 위험요인이 없다면 회복도 비교적 쉽고요. 그러려면 참사에의 노출을 중단해야 합니다. 강박적으로 참사 관련 뉴스나 현장 사진, 영상 등을 찾아보는 것을 즉각 멈춰야 합니다. 만약 불면증처럼 몸과 마음의 불편함이 있다면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국가트라우마센터가 제공하고 있는 기본적인 정신건강 정보를 통해서도 안정에 도움을 받을 수 있어요. 그럼에도 불편함이 지속된다면 전문가를 찾아 상담을 받으셔야 합니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우리나라의 국가트라우마 관리가 시작됐습니다. 그렇지만 아직 우리사회는 트라우마 위험성을 간과하거나 개인의 문제 등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여전한 것 같습니다. 정부 지원도 미약하고요.”     

“매년 약 15건의 재난과 그로인한 340명의 직접 피해자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유가족과 부상자 가족을 포함하면 그 수는 약 1천400명가량 됩니다. 이 수치는 계속 누적되는 것이죠. 2022년 한 해 동안 아파트 붕괴 사고와 집중호우, 감염병 피해 등 이미 10건의 재난 상황이 발생했어요.     


그 누구도 재난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심리적 방제는 당연시돼야하고 그러려면 투자가 필요하죠. 적어도 위의 수치(1400명)만큼은 감당할 수 있을 여력이 준비돼 있어야 합니다. 트라우마와 자살은 섣불리 접근하면 더 악영향만 끼칠 수 있기 때문에 전문 전담인력이 있어야 합니다. 전국 각 지역에 최소 2명의 전담 인력이 배치돼야 하고 이들에 대한 교육과 가이드라인 시스템도 원활히 작동해야만 심리 방제의 실효성과 안정성 모두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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