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북부. 이전까지 이스라엘군의 봉쇄로 차단됐지만, 그날은 구호품을 실은 트럭이 먼지를 날리며 들어오고 있었다. 그 광경을 현지 아이들은 건물 뒤에서 숨어서 보고 있었다. 곧 사람들이 트럭으로 달려들어 손을 내밀었다. 아룬 제간은 그 장면을 잊지 못한다.
가자지구는 오랜 이스라엘의 봉쇄에도 학교와 병원이 있었고, 기본적인 사회 시스템이 있었지만 전쟁 1년 만에 사람들은 식량과 물을 구걸하는 처지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신체 손상과 생명의 위협으로 정신적 충격을 받은 이후에 나타나는 정신질환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라고 부른다. 가자 전쟁으로 인한 PTSD와 트라우마(trauma)가 훗날 언제, 어떤 형태로 발현될지 모른다. 하지만 가자지구 거주민들이 만성적 외상 스트레스 상태에 있었다.
나는 “가자지구는 만성적 외상 스트레스 상태”라는 말을 들었을 때 목덜미의 털이 곤두서는 것처럼 느꼈다. 그들에게 재앙은 현재진행형이었다. 그렇다. 그들은 여전히 지옥 한 가운데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큰 감옥’이었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Gaza strips)에서의 전쟁이 1년을 넘기고 있다. 현재까지 민간인 4만여 명이 죽거나 다쳤다는 것 외에 과연 그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나는 더 알고 싶었다.
2024년 10월 19일 아룬 제간 국경없는의사회(MSF) 인도적 지원 어드바이저와의 만남에서 나는 인도주의 재앙에 놓인 가자 주민들의 상황을 일부 들을 수 있었다. 아룬 재간은 국경없는의사회 오스트레일리아 소속 인도적 지원 어드바이저다. 그는 올해 초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의 현장 책임자로 활동했다.
-가자 전쟁 1년, 현지 보건의료 상황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1년 동안 (가자지구라는) 사회가 파괴되는 상황을 목격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모든 의료 시스템을 제거했습니다. 가자지구에서 4만 명 이상의 민간인이 사망했고, 현재도 많은 이들이 피난을 가서 집이 아닌 텐트에서 살고 있습니다. 가자지구 내 건물의 60% 가량이 파괴됐습니다. 이것은 팔레스타인인에게 매우 낯선 상황입니다. 이전에 작동하던 사회였기 때문에 (현재의 파괴되어 작동하지 않는) 상황들이 매우 생소한 것이죠.
가자지구 북부는 더 심각합니다. 4천여 명이 살고 있는데 그곳에는 기근과 같은 상황을 맞고 있습니다. 식량 지원이 이뤄지지 못해 음식이 가자전쟁의 무기로 사용되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그 식량의 무기화요?
“트럭들이 식량을 싣고 가자지역으로 이동하는데 이집트-가자지구 국경에서 (차량) 유입이 막히는 상황을 많이 목격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군이 식량 지원을 막고 있기 때문이죠. 현재 하루에 식량과 인도적 지원 물품을 실은 트럭들 50대 정도만 가자지역에 들어가고 있어요. 이전에는 매일 350여 대가 매일 오갔습니다. 상상해 보세요. 사회가 마비된 상태에서 (트럭 50대 분량의 지원 물품은) 턱없이 부족한 양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린 이스라엘군이 의도적으로 이동을 제한해 식량 배급이 막히면서, 식량이 전쟁 무기처럼 되어 가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이스라엘군 폭격에 의한 환자들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현지 치료 시설은 점점 더 부족한 것 아닌가요?
“가자지구의 의료 시스템은 1년간 완전히 마비됐습니다. 이스라엘군의 폭격이 지속되고 있어서 하루에도 수백 명씩의 부상자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어제(10월18일) 하루 동안 760명의 부상자가 발생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텐트로 지은 임시 야전병원 2곳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현지 의료 수요에 미치지 못합니다.
열악한 환경이기 때문에 제대로 된 의료 지원을 할 수가 없습니다. 야전병원은 의료기관을 대체할 수 없음에도 운영을 유지하스는 이유는 대안이 없기 때문이죠. 사람들은 고통받고 있고, 의료 지원을 받지 못해 죽기도 합니다. 의사와 간호사는 공격 대상이 되기 때문에 의료지원 활동을 하기 두려워합니다. 이런 여러 상황에 복합적으로 작용해 국경없는의사회로써도 이런 상황은 처음입니다.”
-외상뿐만이 아니라 정신건강의 문제도 심각할 것 같은데요.
“분쟁 지역에서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큰 문제입니다. 하지만 지금도 전쟁은 계속 진행 중이기 때문에 스트레스와 같은 정신적 외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집과 가족을 잃었으며, 매일 이스라엘군의 드론과 헬리콥터 소리를 들으며 엄청난 긴장과 공포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현지 사람들의 상당한 정신적 부담은 30년 후에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들이 회복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겁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현지에 정신건강센터를 설치해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정신건강센터는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까.
“아이들이 조금 놀 수 있는 공간이나 심리적인 치료를 제공해 의료적으로 해결책을 제공하려는 것이지만 한계가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국제사회에 휴전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해법이 그것뿐이기 때문인가요?
“의료 지원 제공에 한계 상황입니다. 우리가 지원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고 현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사실상 휴전밖에 없다고 봅니다.”
-가자지구의 피난 지역이 비위생적인 환경이기 때문에 콜레라 등 전염병들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을텐데요.
“최근 두 번 소아마비 유행이 있었습니다. 소아마비는 가자지구에서도 거의 사라졌던 질병인데 굉장히 비위생적인 환경 때문이죠. 소아마비 예방접종을 위해 휴전이 되기도 했습니다. 콜레라나 다른 감염성 질환 유행의 우려도 있습니다. 감염병 예방을 위해서도 이제는 휴전이 필요합니다.”
-가자전쟁이 서안지구로 확산하고 있지만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서안지구까지 전쟁의 영향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서안지구 내 난민 캠프에서 식수 접근이 제한되고, 이스라엘군의 강도 높은 폭력이나 공격에도 노출돼 있죠. MSF가 서안지구에 운영하는 의료팀도 가자지구와 마찬가지로 이동의 제한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재는 서안지구에까지 전쟁의 영향 아래 있다고 봐야 합니다.”
-휴전을 위해 한국 정부를 비롯한 국제사회는 나서지 않고 있습니다.
“12개월 동안 병원이 폭격을 당하고 민간인이 폭격으로 사망하는 상황은 선을 넘은 것으로 봐야 합니다. 국제사회가 이 전쟁을 멈추도록 나서야 합니다. 인도주의 관점에서 인류를 위해서 우리가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한국 정부나 제 출신국 호주도 모든 외교적인 수단을 활용해 휴전을 촉구해 이스라엘이 압력을 느끼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가자지구에서 300여 명의 구호단체 활동가와 200여 명의 의료진들이 목숨을 잃었다. 의사들은 병상에서 환자를 돌보다가 목숨을 잃었다. 병원 앞 구급차도 공습으로 폭파됐다. 구급차 안에는 환자가 있었다. 지난해 10월 7일 이후 MSF에 대한 공격은 25차례 가량이나 됐다. 지옥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