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아직 꿈이 많아요.
“29살이면 이제 슬슬 자리를 잡아야지.”
사회에서 소위 ‘어른’이라 불리는, 생각이 단단하게 굳어버린 이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이 문장을 내뱉는다. 그들이 말하는 ‘자리’의 정의는 대개 비슷하다. 적당한 연봉, 꺾이지 않는 근속 연수, 그리고 ‘안정’이라는 이름의 정착. 사회가 설계한 표준 규격에 나를 끼워 맞추라는 일종의 세련된 압박이다. 하지만 나는 이 확신에 찬 조언 앞에서, 도무지 예의 바른 맞장구를 쳐줄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청개구리 병을 앓고 있어요.
사실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남들 다 하는 건 하기 싫어하는 ‘청개구리 병’을 앓아왔다. 모두가 진학, 대학, 취업이라는 선명한 화살표를 따라갈 때, 내 시선은 늘 엉뚱한 곳을 향했다. 어떤 ‘스펙’을 쌓을지보다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가 내게는 훨씬 더 중요한 숙제였으니까.
애초에 사람이 바글바글한 길에는 도무지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그 방향을 찾기 위해 조금 돌아오기도 했고, 남들이 보기에 비효율적인 길을 걷기도 했다. 누군가는 낭비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상관없다. 적어도 내게는 이 길이 훨씬 재밌었으니까. 그 과정에서 얻은 것들은 굳이 일일이 설명할 필요도 없이 내 안에 가득하다.
꿈꾸는 할머니가 꿈인데요?
20대 초반의 꿈은 '열정'이라 응원받지만, 29살의 꿈은 '현실 감각 없음'으로 번역되곤 한다. 여전히 꿈을 꾼다는 고백이 누군가에겐 정신 못 차린 방황으로 비치는 걸까.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자꾸 나를 어딘가에 앉히고 싶어 한다.
사실 사람들은 크게 꿈꾸는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가끔 현실 비평에 적당히 동조하기도 하고, 꿈 없이 그냥저냥 사는 어른인 척 연기를 하기도 한다. 안주한 척, 꿈 없는 척 연기하며 사는 건 좀 지루하지만 그게 때로는 편하니까. 하지만 나는 ‘꿈꾸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 거창한 성공을 바라는 게 아니라, 죽을 때까지 설레는 마음으로 다음 페이지를 궁금해하며 살고 싶을 뿐이다. 고로 아직 29살밖에 되지 않은 나는 하고 싶은 게 무수히 많다.
“29살이면 이제 슬슬 자리를 잡아야지.”
그렇다면 저는 제가 앉고 싶은 자리를 원하는 만큼 마음껏 잡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