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제 코가 어때서요?
기분 좋은 덕담이 오가던 식탁에 갑자기 날카로운 ‘칼날’ 하나가 올라온다. “코에 살짝 손대면 진짜 잘 될 것 같은데요?” 아마 콧대가 높고 살짝 굴곡 있는 느낌이 나는 탓에 나온 말일 것이라 추측한다.
칭찬의 탈을 쓴 그 무례한 권유에 나는 그저 허허, 하고 웃어넘겼다. 하지만 그날 이후, 거울 앞에 선 나는 평소 좋아하던 내 코의 굴곡을 ‘깎아내야 할 어떤 것’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무례한 참견이 내 멀쩡한 자존감에 미세한 균열을 낸 것이다.
굴곡진 내 코가 숙제가 되었을 때
참 이상한 일이다. 방금 전까지도 나는 내 얼굴이 꽤 마음에 들었었다. 적당히 높은 콧대와 자연스럽게 내려오는 그 선이 나답다고 생각했는데, 타인의 가벼운 참견 한 마디에 내 코는 졸지에 ‘미완성 교본’이 되어버렸다.
'잘 될 것 같다'는 말로 포장됐지만, 그 말의 이면에는 '지금은 부족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하루아침에 ‘부족’해진 내 코는 시도 때도 없이 주인의 손에 이끌려 요리조리 새로운 각도로 끌려다닌다.
부품들의 집합체
우리나라는 유독 외모를 ‘수정 가능한 부품’들의 집합체로 보는 경향이 있다. 눈은 어떤 모양, 코는 몇 도, 입술은 어떤 두께. 마치 공장에서 찍어낸 듯 모두가 똑같은 버선코나 일자 코를 가져야만 ‘완성형’이라 부르는 기이한 문화. 그 표준화된 규격에 맞지 않으면 언제든 도려내고 교체해야 할 ‘결함 있는 부품’ 취급을 받는다. 하지만 세상 모든 코가 똑같은 각도로 뻗어 있을 필요가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고유한 캐릭터의 발견
관점을 조금만 넓혀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여기서는 깎아내야 할 결점으로 분류되는 굴곡 있는 높은 코가, 서양에서는 오히려 지적이고 클래식한 매력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결국 '아름다움'이라는 건 시대를 타고 흐르는 유행이나 편협한 기준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누군가의 눈에는 다듬어지지 않은 투박한 선일지 몰라도, 내게 이 굴곡은 나라는 사람의 분위기를 만드는 고유한 캐릭터다. 남의 눈에 더 예뻐 보이는 가능성을 얻기 위해 내가 가진 고유한 선을 도려낼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코 수술하면 진짜 잘 될 것 같아요.”
저는 제 코가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