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귀 냄새를 멈추는 능력으로 회사에서 살아남기
질문을 활용한 글쓰기-(3)
이도진은 평범한 30대 회사원이었지만, 세상 누구도 모르는 특별한 비밀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방귀 냄새를 멈출 수 있는 능력이었다.
그의 능력은 단순했다. 누군가 방귀를 뀌고 냄새가 퍼지기 시작하면, 도진은 집중해서 냄새의 확산을 완벽히 차단할 수 있었다. 냄새는 공중에 멈춘 채 더 이상 퍼지지 않았고, 주변 사람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일상을 이어갔다.
이 능력이 처음 발현된 것은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학급 전체가 조용한 시험 시간, 누군가가 아주 강력한 방귀를 뀌었다. 그 방귀 냄새는 뒤에서부터 서서히 퍼져 나왔고, 도진은 코가 썩어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아, 장기가 썩었나. 진짜 똥방귀다. 냄새 좀 없어졌으면.’
그 순간, 냄새가 더 이상 퍼지지 않았다. 도진은 주위를 둘러봤다. 다른 학생들은 전혀 냄새를 느끼지 못한 듯 시험에 집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뭔가를 멈췄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그 뒤로 도진은 이 능력을 사소하지만 실용적인 상황에서 종종 활용했다. 예를 들자면, 사람이 가득 찬 엘리베이터 안에서 누군가가 방귀를 뀌면, 도진은 냄새가 퍼지기 전에 멈춰 모든 사람을 구원했다. 그는 속으로 웃으며 생각했다.
‘이런 일로 내가 능력을 써야 하다니. 하! 촤암나! 나 없으면 어쩔 뻔 했냐고. 누군진 모르지만 내가 구해준 줄 알라고.’
어디에 말하기에는 너무 보잘 것 없는 능력이었지만 사람들과 부대낄 수 밖에 없는 공공시설에서 도진의 능력은 매우 유용한 것이었다. 아무도 그의 능력을 몰라줬지만, 그는 점점 자신의 이런 쓰잘데기 없지만 유용한 능력으로 영웅놀이를 일삼기 시작했다.
일테면 이런 것이었다. 여자친구 지연은 소리 없는 방귀의 달인이었다. 그녀가 방귀를 몰래 뀌기 위해 걸음을 파바밧, 하고 걸을 때면 도진 역시 온 신경을 집중해 냄새가 퍼지는 것을 막았다. 그의 이런 능력이 양가 집안 어른이 모인 상견례 자리에서도 쓰이게 될 줄 누가 알았냐마는. 어쨌든 그의 이런 노력으로 그들은 잡음없이 내년 봄에는 백년가약을 맺을 준비를 차근차근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능력에는 큰 문제가 있었다. 멈춘 냄새는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공중 어딘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었다. 도진이 냄새를 멈추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냄새는 점점 더 강력해졌고, 한꺼번에 터질 경우 엄청난 혼란을 초래할 수 있었다. 한 달이라는 시간이 방귀탄의 맥시멈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방귀탄을 터뜨릴 장소, 시간도 조절할 수 있었기 때문에 도진은 한 달에 한 번씩 방귀탄을 터뜨리기 위해 아무도 없는 산에 오르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도진은 처음으로 이 방귀탄을 사람에게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 왜냐하면 부서 내 새로 온 꼰대, 곽준명 과장 때문이었다. 곽과장은 매사 잔소리가 많았다. “이 대리, 여기 이거 자간 좀 맞춰봐. 자간을 맞춰서 쓰면 다른 사람 보기에도 얼마나 좋아?”, “이 대리, 여기 엑셀파일에서 수식 깨진 것 봤어? 이런 거 하나하나가 잘못하면 전체 계산을 틀리게 하는 거라고.” 곱씹어 보면 틀린 말은 하나도 없었지만 영웅놀이에 심취한 도진에게는 곽과장의 잔소리는 늘 도진의 하루를 무겁게 만들었다. 동료들 역시 곽과장을 피하려 했고, 도진도 그들과 함께 늘 곽과장을 험담했다. "저 인간은 진짜 꼰대의 끝판왕이지." 그런 대화가 도진의 스트레스를 잠시나마 풀어주곤 했다.
그날도 어김없이 곽과장의 잔소리가 이어지는 날이었다.
“이 대리, 결혼은 축하하네만, 결혼식 전에 결과보고는 끝내놓고 가야 다음 주에 신혼여행 끝나고 오면 밀린 일이 없어서 홀가분하다고. 조금 힘들겠지만 미적미적거리지 말고 결과보고까지 하고 퇴근하게.”
그래,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결혼준비로 분주하다 못해 돌아버리기 직전이었던 도진은 자신의 능력을 곽과장이 곤경에 빠지는것에 쓰기로 마음을 먹었다.
‘지금까지 멈춰둔 냄새를 한꺼번에 터뜨리면, 그 지독함은 아무도 견디지 못할 거야. 너도 고통 좀 느껴봐야지.’
도진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곽과장이 앉은 자리 주위로 지금까지 멈춰둔 방귀 냄새를 풀어냈다. 한달간 쌓인 방귀 냄새는 상상을 초월하는 악취를 만들어냈다.
"어우, 뭐야 이 냄새!"
"누가 이런 짓을 한 거야? 도저히 못 참겠네."
"와, 진짜 역대급이다."
사람들은 코를 틀어막으며 달려 나갔다. 어떤 이는 우웩, 하고 헛구역질하는 사람도 있었다. 너무 역대급 방귀여서 이 냄새가 사람 방귀일것이라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심지어 강도 높은 메탄을 감지한 사내 화재감지기는 화재경보를 울리기 시작했다. 모두들 “회사에서 이게 무슨 일이야”를 반복하며 방귀냄새를 피해 건물 밖으로 뛰쳐나갔다. 하지만 곽과장은 달랐다. 그는 코를 찡그리긴 했지만,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인 채 묵묵히 냄새를 견뎠다.
도진은 의아했다. ‘저 정도 냄새를 맡으면서도 아무런 불평도 안 하다니…?’ 시간이 지나도 곽과장은 냄새의 원인을 물어보지도 않았고, 누군가를 비난하지도 않았다. 그저 침착하게 냄새를 견뎌냈다. 결국 도진은 곽과장에게 물었다.
"과장님, 이런 냄새가 나는데 괜찮으세요? 왜 가만히 계세요?"
곽과장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니, 뭐… 누군가 실수했겠지. 별거 아니야. 남 탓해서 뭐하나? 내가 참으면 될 일인데."
그 말에 도진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그는 지금까지 곽과장을 꼰대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그가 보여준 태도는 도진이 예상한 것과 전혀 달랐다. 그냥 다른 사람을 지적하기에 급급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허물까지도 덮어주는 진짜 어른의 태도였다.
도진은 곽과장의 그런 모습에 퇴근하는 길, 잔소리로만 들렸던 곽과장의 말들을 곱씹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순한 꼰대질이 아니라, 도진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고자 했던 진심이었다. 곽과장은 자신이 겪었던 시행착오를 도진이 겪지 않기를 바랐던 것이었다.
도진은 고개를 숙이며 곽과장을 다시 보게 되었다.
‘내가 그동안 오해했구나. 과장님은 나를 싫어하는 게 아니라, 나를 진심으로 걱정했던 거였어.’
다음 날, 도진은 곽과장에게 커피 한 잔을 건넸다.
"과장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제가 잘못 생각했어요."
곽과장은 의아해하며 커피를 받았다.
"뭘 감사해? 열심히 하면 되는 거지."
도진은 웃었다. 그는 냄새를 멈추는 능력으로 복수하려 했지만, 그 냄새 덕분에 진심을 깨닫게 되었다.
‘냄새도 사람도… 겉으로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되는 거였어.’
그날 이후, 도진은 곽과장을 꼰대가 아닌 인생의 스승으로 여기며 회사 생활을 이어갔다. 그리고 방귀냄새를 멈출 수 있는 능력은 일은 못하면서 자기에게 취해만 있었던 이도진 대리가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끝>
p.s 질문을 이용해서 아직 세 편의 글 밖에 안 올리긴 했지만 이번 편은 그 중에서 제일 많이 고민을 한 편이다. 질문 자체가 “시간이 멈춘 세계에서 나만 움직일 수 있다면, 그곳에서 나는 무엇을 발견하게 될까?” 였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시간이 멈춘 세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은 그저 아포칼립스물이나 시간을 멈추는 능력을 악용해서 악당이 되는 글 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생각해 낸 게, 어떤 사물의 움직임을 멈추는 것도 시간이 멈추는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하면서 이 글을 써가기 시작했다. 방귀는 요즘 딸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주제중에 하나이다. 냄새를 멈출 수 있게 하는 능력이 생기면 어떨까? 라는 질문으로 시작한 글이니, 유치하더라도 그냥 재미로만 봐주시길, 다들 메리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