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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로운힘나 Jan 03. 2025

2700년 한국으로 가는 버스

질문을 활용한 글쓰기-(6)

“다음 정류장은… 2700년 한국?”


버스의 목적지 안내판이 갑자기 이상한 글자를 띄웠다. 민철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내가 과로하긴 했나… 이젠 목적지까지 장난을 치네.”


박민철, 35세. 전기공학과 졸업 후 OO에너지OO에 입사했지만, 2025년 대기업의 신입 채용 감소와 인원 감축의 흐름 속에서 희망퇴직을 해야 했다.  

AI와 로봇이 일을 대신한다고? 그럼 사람은 뭐 먹고 살라는 거야.”  


그렇게 대기업을 떠난 민철은 생계를 위해 버스 운전기사가 됐다. 평범한 버스라고 생각했지만, 오늘은 뭔가 달랐다. 핸들을 돌리자마자 공간이 일그러지고 빛이 번쩍였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풍경이었다.


“여긴… 한국 맞아? 아니, 여기 사람이 살긴 하나?”


2700년의 한국은 물에 잠긴 도시였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대다수의 땅이 바다 아래로 가라앉았고, 사람들은 작은 섬이나 물 위에 떠 있는 구조물에서 간신히 생존하고 있었다. 민철은 마을에 도착하자 처음 보는 태양광 패널들이 무용지물처럼 널브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봐요! 당신 누구야?” 한 남자가 창백한 얼굴로 외쳤다.  

민철은 버스에서 내리며 손을 들었다.  

“놀라지 마세요. 저는… 지나가는 사람입니다. 여기 무슨 일이 있는 겁니까?”  

“전기가 끊겼어. 발전기가 멈춘 지 며칠이야. 기술자도 없고, 아무도 이걸 고칠 줄 몰라.”


민철은 태양열 발전기를 살펴보았다. 구조는 복잡했지만 원리는 자신이 다뤘던 것과 비슷했다.  

“이거, 내가 고칠 수 있을지도 몰라요.”  

“당신이? 기술자는 몇백 년 전에 사라졌어. 로봇이 모든 걸 처리하던 시대에, 기술을 아는 사람이 왜 필요했겠어?”


민철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 몸이 OO에너지OO 출신이라고요. 로봇이 내 밥그릇 뺏기 전에 나름 잘 나갔었거든.”


민철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 태양열 발전기를 손봤다. 낡고 고장 난 부품들을 대체할 만한 자재를 찾아야 했지만, 대부분 물속에 잠겨 있어 쉽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에게 지시했다.  

“자, 다들 힘을 합칩시다. 나무판자, 금속 조각 뭐든 좋으니 쓸만한 걸 찾아오세요.”  

“그걸로 발전기를 고칠 수 있을까?”  

“내가 못 고치면… 글쎄요, 밥값은 하고 가야죠.”


몇 시간의 작업 끝에 태양열 발전기가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다. 패널이 햇빛을 받아 전력을 생성하자,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됐다! 불이 들어왔어!”  

“민철 씨, 당신 정말 대단해요!”  


민철은 땀을 닦으며 웃었다.  

“뭐, 이 정도는 기본이지. 근데 여러분, 이걸로 끝난 게 아니에요. 발전기가 돌아가려면 유지 보수를 할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해요.”


그는 간단한 원리와 관리 방법을 사람들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태양열 발전기는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청소만 제대로 해도 효율이 올라가요. 그리고 이건…”  

민철은 주변에 모인 사람들을 보며 덧붙였다.  

“여러분 중에 기술에 관심 있는 사람은 더 배우는 것도 좋아요. 누군가는 이걸 이어가야 하니까요.”


며칠 후, 민철은 사람들을 태워 마을 간 연결을 도왔다. 버스가 작은 다리 역할을 하며 생존자들을 모았다. 사람들은 서로 협력하며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했다. 그중 한 소년이 민철에게 다가왔다.  

“아저씨, 저도 아저씨처럼 기술을 배우고 싶어요.”  

“그래? 그럼 기본부터 시작해보자.”  


민철은 소년에게 전기의 원리와 간단한 도구 사용법을 가르쳤다.  

“이게 멀티미터야. 전압, 전류, 저항을 측정할 때 쓰는 거야. 네가 이걸 잘 다루면, 언젠가 너도 발전기를 고칠 수 있을 거야.”  

소년의 눈은 반짝였다.  

“정말요? 제가 할 수 있을까요?”  

“당연하지. 기술은 사람을 구하는 도구야. 너도 그걸 할 수 있어.”


마을 사람들은 민철을 존경과 감사의 눈으로 바라봤다. 떠나는 날, 소년이 민철의 손을 붙잡았다.  

“아저씨, 꼭 다시 와주세요!”  

민철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너희가 잘 해낼 거라 믿어. 난 또 다른 곳으로 가야 해.”


버스의 문이 닫히고, 민철은 창밖으로 손을 흔드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기술이 사라졌다고? 내가 있는 한 그럴 일은 없어.”


2700년의 한국을 뒤로하며, 민철은 다음 목적지를 향해 핸들을 돌렸다. 차원의 빛이 다시 한 번 그의 앞을 밝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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