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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취생 Aug 06. 2024

출장 중 사색 (8)

데이터에서 시작된 사색

 돈을 벌기 위해서는 마땅히 돈을 벌기 위한 행위를 해야 한다. 의류 회사는 옷을 만들고, 건설 회사는 집을 짓고, 식당은 음식을 만든다. 판사는 재판을 해야 하고, 변호사는 변호를 해야 하며, 의사는 환자를 치료한다. 그리고 나도 돈을 벌기 위한 행위를 하고 있다. 나는 돈을 벌기 위해 IT 제조 회사에 출근하여, 공장의 데이터를 분석한다.


 참고로 '아내는 돼지국밥을 먹지 않는다.',  '딸은 윷놀이를 좋아한다.', '나는 ESFP일지도 모른다.'처럼 데이터란 의미가 있는 모든 정보를 뜻 한다. 그리고 의미라는 것은 주관적인 속성의 단어이기에 누군가에게는 의미가 없는 데이터가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위에 나열한 데이터는 나에게만 의미있는 데이터이다.


 <공정 불량률 : 3,607ppm>


 회사에 출근하여 오늘 본 데이터 중 하나이다. 나는 주로 숫자형의 데이터를 접한다. 이 숫자는 회사 외부 사람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지만, 이곳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의미가 있다. 이곳에서는 숫자 하나에 안도하기도 하고, 서로에게 화를 내기도 한다. 고작 하나의 숫자 데이터일 뿐이지만, 회사 안의 삶에서는 꽤 많은 영향을 미친다.


 비단 회사의 공정 능력뿐 아니라 사람을 대변하는 숫자 데이터도 참으로 많다. 나이, 급여, 집 등을 숫자로 표현한다. 요즘 우리 사회는 이런 숫자로 표현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구분하는 현상이 성행하고 있다. 숫자는 추상적인 사고를 구체적인 사고로의 전환을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고통을 일으키는 집착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숫자 데이터가 없다면 구체적인 비교는 불가능할 것이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다양한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상상을 해본다. 비교하는 일도, 비교당하는 일도 없는 모두가 고통이 없는 세상을 상상하지만 나는 매일 비교하고 비교당하는 참으로 피곤한 세상에 살고 있다. 하지만 숫자 데이터의 장점은 어마어마하다. 숫자 데이터 덕분에 나는 이렇게 인터넷으로 글을 쓰고, 공간의 제약 없이 가족들과 연락을 하고 있다. 그 밖에 내가 편리하게 활용하는 모든 것들이 다 숫자 데이터가 있기에 가능한 것들이다. 모든 것들에는 동전의 양면 혹은 빛과 그림자처럼 공존하고 있는 상반적인 부분이 존재한다. 현상으로 드러나는 비중은 그때마다 다르지만 어찌 되었든 하나가 존재함으로 또 다른 하나도 존재한다.


 현재의 피곤한 삶이 내가 의도했던 삶은 아니지만, 과거를 돌이켜보면 의도대로 된 것은 하나도 없는 것 같다. 어디선가 본 거 같다. 사람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운명론자가 된다고...... 요즘 들어 그 말에 극하게 공감한다. 삶의 끝에 조금씩 가까워질수록 현재의 내 삶은 마치 아득하게 멀리,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정해진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미 정해졌다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운명은 예정되어 있지만 오히려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을 매번 느낀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다가올 상황에 대해 예측하고 준비하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할지가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같지만 다른 것>


 너무 많은 데이터가 산재해 있다 보니 우리는 대체로 그 숫자가 발생한 과정에 대해서 간과할 때가 있다. 때로는 99%와 99%는 다를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일에 대하여, A는 100번의 시도 중 99번의 성공 경험이 있고, B는 1000번의 시도 중 990번의 성공 경험이 있다고 하자. 그리고 그 일을 만약 앞으로 한 번만 시도할 수 있다면 과연 그 일을 A와 B 중 누구에게 맡겨야 할까? 물론 해야 할 일이 기존에 해왔던 일과 독립 시행이라면 A와 B 중 누구를 고르던 성공확률은 동일하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은 독립 시행이면서 독립 시행이 아니다. 매일이 똑같은 일상이지만 그 일상이 모여 오늘의 일상은 어제와 또 다른 일상이 된다. 따라서 나라면 100번의 경험이 있는 A보다는 1000번의 경험이 있는 B를 선택할 것이다. 어찌 되었든 진취적인 사람은 성공 경험도 많고, 실패 경험도 많다는 특징을 가졌다. 1번의 시도에 성공한 사람과 9번의 실패를 딛고 성공한 사람은 성공을 했다는 결과는 같지만, 성공에 대한 가치는 다르다. 왜냐하면 실패를 극복하고 다시 도전한다는 것은 다른 의미의 성공한 경험이 있는 것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다르지만 같은 것>


 2를 표현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2+0, 3-1, 1+1, 10/5....... 같은 2지만 2가 되는 방법은 다양하다. 만족이라는 정성적인 단어에 정량적인 수치를 대입할 수 없지만, 어떻게든 대입했다는 가정하에 한번 생각해 본다. 우리는 매일매일 똑같은 일상을 살아가고, 누군가는 어제의 만족도 0에서 +2를 해 오늘의 일상 만족이 2가 된 사람도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어제의 만족 10에서 -8을 해서 오늘의 일상 만족이 2가 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과정은 다르지만 어찌 되었든 결과적으로 오늘의 만족도는 둘 다 동일하다. 하지만 진정 만족하느냐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스스로 생각하는 시작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시간과 상황을 누군가는 이전과 같다고 이야기하며, 누군가는 다르다고 이야기한다. 정답은 없다. 어떤 시간과 상황은 멀리서 보면 같지만 가까이서 보면 다르다. 혹은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오늘의 마음가짐>


 너의 행위와 나의 행위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나는 사랑이지만 너는 사랑이 아니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돌이켜보니 우리 모두 사랑했었다. 시간이 흘러 내가 너와 같은 행동을 해보고 알게 되었다. 너의 행동도 사랑이라는 것을......


 너의 상황과 나의 상황은 같다고 생각했다. 나에 있는 것은 너에게도 있고, 너에게 있는 것은 나에게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돌이켜보니 나는 너의 재능을 동경했고, 너는 나의 환경을 동경했었다. 시간이 흘러 나의 환경이 바뀐 후 알게 되었다. 내가 너에게 참 미안한 말들을 많이 했다는 것을......


 같지만 다르고 다르지만 같은 시간과 상황에 관련된 데이터를 접할 때마다 많은 생각에 빠진다. 과정은 같지만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있다. 모두가 열심히 했지만, 누군가는 인정을 받고 누군가는 인정을 받지 못한다. 내가 열심히 해서 이룬 성과라고 생각했지만, 자영업을 경험하고 백수를 경험하며 알게 되었다. 백수가 될 수 있었던 것 마저 내가 운이 좋았다는 것을...... 분명 누군가는 백수가 될 틈도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람은 확실히 자신이 아는 만큼 공감할 수 있다. 이 공감은 감정적인 공감뿐 아니라 지식의 공감까지 포함한다. 그리고 여러 입장을 경험해 봄으로 자신이 아는 범위를 넓힌다. 부모의 마음을, 실패 또는 성공 경험을 한 사람의 기분을, 관계와 사물에 대한 지식을 알 수록 하나로 귀결되는 결론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고마움이었다. 부모에 대한 고마움, 실패했지만 도전할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한 고마움, 네가 내 옆에 있다는 것에 대한 고마움, 그리고 그 덕에 내가 무언가를 이룰 수 있었다는 고마움......


 아무리 많은 데이터를 분석해도 우리는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 왜냐하면 언제나 세상에는 항상 예외라는 것이 존재하고 그 예외는 내가 모든 데이터를 다 검토한 후 남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예외 상황을 예측하기 위해 무리하기보다는 매일 지금 상황에 고마움을 가지고 무리하지 않고 즐기는 것이 최선이다.


 장기간 이어지는 출장으로 지친 마음을 이렇게 다잡으며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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