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그전에도 집과 회사가 그리 가깝지 않았다. 강서에서 강남으로 약 40분~1시간 내외의 시간이 걸렸다. 이때까지만 해도 버스를 애용했다. 갈아탈 필요도 없이 기절하듯 자다 불현듯 눈뜨면 강남이었으니 버스 자리에 앉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가 성장하여 더 큰 사옥으로 이사를 한다고 했다. 게다가 나는 집이 강서인데 회사가 이사하는 지역은 강동이었다. 13~14년 전의 일이니 지하철이 지금만큼 있지도 않아서 출퇴근이 산을 넘는 듯한 고행이 될게 불 보듯 뻔했다. 나는 출퇴근에서 생존하기 위해 서른 초반 부랴부랴 운전면허를 따고(한 번 떨어지고 두 번째 합격했다.) 바로 중고차를 구입해 도로로 나갔다. 남편에게 연수를 수차례 받고 처음으로 혼자 나간 날 버스와 접촉사고를 겪었다. 사고 후 무서웠지만 주저앉으면 운전 못한다는 남편의 냉정한 조언에 이틀 쉬고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도로 주행, 마트에서 야간 주차 연습 등등. 빠르게 차와 도로에 적응했고 회사가 이사를 하기 전에 무리 없이 운전이 가능하게 되었다.
회사가 강동으로 이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육아문제로 강서보다 더 안쪽인 김포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맞벌이 부부인 우리의 아이를 맡아줄 시댁이 김포에 있었다. 이런 경우 보통은 회사를 옮기거나 거주지를 어떻게든 조정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회사를 옮기고 싶지 않았고(자신도 없었고), 회사 쪽으로 나오기에는 돈이 없었다. 당시 뚜벅이 남편의 직장이 인천이라는 점도 한몫을 했다. 어차피 나는 차로 다니는 것이니 좀 더 안으로 들어간들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전혀 아닌데 마치 이별을 준비하듯 자꾸만 멀어지는 회사와 집의 거리. 그렇게 나의 장거리 출퇴근 삶은 시작되었다. 살다가 아이들이 좀 크면, 교육이나 편리, 삶의 질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돈을 모으거나 능력을 키워서 회사나 집 둘 중 하나를 옮길 만도 한데, 반대로 우리는 이곳에 붙박이가 되었다. 다니기 멀고 힘든, 아무것도 없는 이 동네가 살수록 괜찮았다. 사람이 많지 않은 편이라 조용하고 별로 때 묻지 않았달까? 당시 어른도 아이들도 청정한 동네라고 학교 선생님들이 말씀하실 만큼 아이 키우기에도 좋았다. (학군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전제로)
시간이 지나 급행 지하철이 개통되어 차가 없어도 다닐만하게 되었다. 물론 마을버스 타고 나가 지하철을 세 차례 타야 하는 코스였다. 많은 이들에게 절대 다닐만하지 않은 코스였겠지만 내게는 꽤 유용한 옵션이었다. 그 후에 급행열차가 연장되었고 지금은 골드라인이 있어서 더 다닐만하다. 비록 탈 사람들이 계단까지 줄을 서야 하는 2량짜리 지옥철이라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내게는 못할 짓이 아니다.(처음엔 고개를 젓기도 했지만) 생각해 보면 퇴근 후 저녁시간 그 열차를 타려고 줄 서는 숱한 사람들도 대부분 출퇴근 직장인 아니겠는가. 모두 나와 동지 같은 분들이라 생각하면 그런 출퇴근길이 대수롭지 않아 진다.
같은 회사에 23년, 같은 동네에 15년째 몸담고 있는 내가 어떨 땐 희한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하지만 이제와 던질 질문은 아니다. 그냥 나라는 사람의 기본값 같은 게 되어버린 것 같아서. 재밌는 건 뭔지 아는가? 남편도 나와 이력이 같다. 같은 회사에 23년(나와 다른 회사다), 같은 동네에 15년째...... 부부가 이토록 일심동체일 수가 없다.
장거리 출퇴근이 삶의 기본값이 된 일상에서 어떻게든 시간 낭비를 줄이고 생산적으로 살아보려는 나는 매일 발장구를 친다. 발버둥을 쳤다면 어쩜 다른 곳에 가있을지 모르지만, 내가 가진 환경에서 나은 방향으로 휘적거리는 발장구도 분명 삶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그 작은 발장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보려 한다.
*사진: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