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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z교사 김콩콩이 Nov 04. 2024

웃으면 복이 와요

미소 그리고 절친, 우연하면서 우연하지 않았던 첫 만남

 "안녕, 내 이름은 S야. 난 음악과야. 넌 이름이 뭐야?"


 대학생이었던 당시, 과장 안 보태고 저 대사를 그대로 외치며 다가온 당찬 친구가 있었다. 처음 경험하는 인사의 방식이었다. 심지어 그 친구는 나와 완벽한 초면이었다. 나와 같은 조별과제를 한다던지, 우연히 수업 옆 자리에 앉았던지 하는 우연마저 주어지지 않았던 사이였다. 그저 같은 공간에서 같은 수업을 듣던 익명의 학생들 중 한 명이었다. 마치 초등학생이 친구를 사귀는 것처럼 너무나도 솔직하고 단순한 친구의 자기소개에 3초간, 뇌가 정지했다. 끊임없이 생동하는 세상에 우리 둘만 멈춰섰다.

 

 '뭐지? 이 아이는?'


 대부분의 사람이 낯선 이에게 품고 있는 경계마저 없어보이는 순수해보이는 표정과 말씨를 오랜만에 접했다. 첫느낌,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이런 당혹스러움도 잠시. 사회화된 나의 뇌는 신경계를 통해 상대방의 인사에 적절한 답을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당황스러운 감정을 최대한 표정에서 숨긴 채,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내 이름과 학과를 통성명했다. 그 친구는 씩 웃으며 말했다. 역시 다음 대사마저 범상치 않았다.


 "우리 그럼 지금부터 친구하자. 나 만나면 앞으로 인사해."

 정신을 차려보니 우리는 서로 번호를 교환한 채 밥 약속까지 잡은 후였다.


 이런 급작스러운 통성명의 결과, 나와 그 S는 현재 7년 째 굳건하게 우정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는 가치관이 잘 맞고, 대화를 하면 즐겁고, 함께 놀다보면 시간이 쏜살같이 흐른다. 서로에 대해 줄줄 외울 정도로 우리는 절친 사이다. 이러한 7년 동안 많은 사건들이 지나갔다. 함께 여행을 갔고, 서로의 집에서 잠을 자고, 서로의 부모님께서 차려주신 정감 가는 아침을 먹기도 했다. 무수히 많이 함께 식당에 들어가 취향을 공유하였으며, 서로의 생일을 축하했다. 어떤 날은 싸우기도 했고, 언젠가는 서로의 고민을 들어주다 함께 밤을 지새우곤 했다.


 이제는 절친이 된 S에게, 문득 첫 만남에 대해 질문하고 싶어졌다. 왜 그 날 나에게 인사를 건넸는지. 어찌 되었든 친구의 그 인사가 지금은 매우 고맙게 느껴지지만, 궁금할 수 있는 거니까. 아무런 접점이 없던 나에게 왜 인사를 했을까? 같은 수업을 듣던 많은 사람들 중 왜 하필 나와 친구가 되고 싶어했을까?


 "너, 우리 처음 인사한 날 기억나?"

 "응, 당연히 기억나지. 그날."

 "그 때 왜 나한테 먼저 말 걸었어?"

  의외로 S의 대답은 단순했다.


 "아, 나는 그 전부터 몇 번 너를 눈여겨 봤는데, 너는 항상 웃고 있는 표정이더라고? 뭔가 밝아 보였다고 해야하나."


 S는 내가 웃고 있는 표정에서 호감을 느꼈다고 했다. 항상 행복해 보여서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도 궁금했고, 같이 다니면 자기에게마저 행복한 일들이 생길 것 같다나 뭐라나.


  처음엔 그 대답을 듣고 어이없다고 깔깔대며 웃어넘겼다. 웃는 표정 하나만 보고, 친구가 되고 싶다고 느끼고, 말을 걸었다니. 사실 조금 어이 없기도 했다. S가 처음 말을 걸었을 당시의 나는 행복과 거리가 멀었다. 타지에서 지쳤고, 기쁨보다는 외로움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전혀 행복하지 않았던 시기였다.


  그러나 회상해보니, 갓 대학생이 되었던 내 표정의 기본값은 미소였던 것 같다. 마치 가방에 달린 늘 웃고 있는 캐릭터 키링처럼. 특별히 즐겁지 않아도 은은하게 웃었다. 외로워도 힘들어도, 스스로를 표면적으로 폭발시키는 사건만 발생하지만 않으면 웃었다. 왜 그랬는지는 지금도 의문이다. 뭐가 좋다고 세상 실실 웃으며 다녔을까... 생존해보려는 일종의 자기최면이었을까. 웃는 게 일종의 습관이었던 것 같다.


 사회 생활을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줄곧 웃곤 했던 것 같은데... 항상 인자하게 띄우던 미소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지금은 매일 동태눈이 된 채 하루하루 밥벌이를 하며 살아가고 있다.


 '웃으면 복이 온다'는 출처 모를 격언을 들으며, 코웃음치곤 했다. 비과학적이고, 터무니없다며 조금은 센치하면서 논리적인 척 해댔다. 그런데 늘 웃으며 지내다 보니 소중한 절친이 생긴 걸 보니, 웃으면 복이 온다는 격언이 영 틀린 건 아닌 것 같다. 당시에 습관처럼 웃지 않았다면, 지금 내 곁에 소중한 S가 없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아찔해진다. 남들 보기엔 항상 웃고 있어서 행복해 보였다고 해도 사실은 S를 만나기 전 내 대학생활은 외로웠으며, 타지 생활은 나를 자꾸만 작아지게 했다. S와 만나게 되며 더 행복한 대학 생활을 할 수 있었고, 고민이 있을 때도 쉬이 털어놓을 수 있었기에 내 마음은 더 건강해졌다. S는 나에게 복이었고, 복이 오긴 했나보다.


 모니터에 얼굴을 비추어보니 왠 감정 실리지 않은 밀랍인형이 나를 빤히 쳐다본다. 사회 생활을 하다보니 얼굴에 서려있던 웃음기가 싹 걷힌 게 분명하다. 그럼, 이제부터라도 웃어보자. 자꾸만 웃음이 새어나오는 기쁜 소식이 없더라도, 그저 평범하고 대동소이한 일상의 쳇바퀴를 달리고 있더라도. 늘 웃고있는 캐릭터 인형처럼이라도 웃어보자. 혹시 모른다. 이 삭막한 사회생활 중에서도 복이 찾아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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