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상 콩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드롱 Nov 26. 2023

사장님, 계산할 때 누구 카드 받으시나요?

친절 경쟁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아저씨 둘이 계산대 앞에서 실랑이가 붙었다.



“제가 낼게요!”

“아니요 제가 낼게요!!”

“아니 오늘은 제가 산다니까요!!!”



보통은 한 사람이 오늘은 내가 내겠습니다. 하면 다른 사람이 아니에요, 제가 살게요. 아이고 아닙니다, 내가 냅니다. 왔다 갔다 왕복 1.5회 정도에 적당히 결론이 난다. 그런데 두 사람 다 완강하여 좀처럼 결판이 나지 않는다. 두 사람은 서로 자기가 내겠다며 언성이 높아지더니 어깨 겨루기를 시작했다. 결국 오른쪽 아저씨가 에헤이! 이 사람이, 하며 주춤 물러났다. 왼쪽 아저씨 승!



요새는 더치페이가 많아져서 이런 풍경이 줄어들긴 했다. 그래도 여전히 흔한 풍경이다. 푸근하고 정겨운 싸움이랄까. 전래동화가 생각난다. 한 우애 깊은 가난한 형제가 서로 양보하느라고 쌀가마니를 지고 밤새도록 왔다 갔다 했다는 얘기. 없는 형편이어도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는 그런 이야기. 훈훈하긴 한데 바쁜 식당에서 번번이 밤을 새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때 노련한 사장님일수록 재빠른 판결을 내려 길게 시간 끌지 않는다.


사장님은 두 사람이 내민 카드 중 어느 것을 고를까? 

마침 함께 있었던 카페 사장인 친구 A에게 물어보았다. 그는 미리 준비된 것처럼 술술 말했다.




“기준? 기준이 있지.”




<계산할 때 누구 카드를 받을까>  

*참고: 당연히 주관적 개인의 견해입니다.


1. 둘 중에 집이 가까운 사람 카드 (A: 멀리서 왔는데 서운하면 그게 은근 오래 가.)

2. 남녀의 경우 여자가 내민 카드 (A: 여자가 계산한 커플이 장수하더라. 남자 큰 거 바라는 거 아니거든. 단, 예외가 있어. 여자가 카드를 소극적으로 내민 경우는 남자 카드 받아.)

3. 연배 차이가 나는 동성: 나이 어린 자의 카드 (A: 밥 값을 어른이 냈을 확률이 높아. 차 값은 어린 사람이 계산하는 게 이뻐보이겠지.)

4. 서로 내겠다고 너무 싸울 때 : 아무 카드 (A: 먼저 낸 사람 것 받아. 그날은 누가 내어도 좋은 날이야.)


와 카페 주인이 손님의 훗날 인간관계까지 챙겨주다니! 슈퍼슈퍼 섬세한 A답다. 받는 입장에선 알 리 없겠지만 그런 작은 마음의 배려들이 쌓여 단골들을 만들겠지. 그 까페가 프렌차이즈도, 유동인구가 많은 곳도 아니지만 코로나 시기를 꿋꿋이 버텨낸 이유를 알 것 같다. 







얌체같이 굴려는 건 아니지만,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든다. (다들 그렇지 않아요?)


'내가 밥을 샀으니 커피는 네가 내야지.’

‘내가 너에게 준 게 있는데 밥은 네가 사겠지.’

‘내가 이 멀리까지 왔는데 설마 나보고 계산하라는 건 아니겠지.’

‘내가 남자니까 데이트비용은 내가 내야지’

‘내가 선배니까 쏴야겠다.’

‘내가 내고 싶지만 이번 달 궁한데 어떡하지.‘



가끔 어떤 배려는 너무 당연하다는 생각에 안 지켜지면 괜히 서운하고, 나아가 사람이 얄미워보이기도 한다. 어쩌면 돈이 아니라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일 것이다. 사회의 불문율이라는 것도 있고, 매너라는 것도 있지만 그렇게 서로서로 머리굴리다보면 인간관계 자체가 피곤해진다. 자꾸만 내 것, 내 몸, 내 감정만 크게 보여서 시야가 좁아진다. 그럴 땐 A같은 마음씀씀이가 외려 별나게 느껴진다. 



하지만 누군가 먼저 선의를 베풀면 그 작은 고마움이 신선한 동력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래서 관계가 선순환 될 때도 있다. 그런 가능성. A는 옛날부터 그런 큰 그림을 보는 사람이었다. 뭣보다 자기부터 조용히 실천하는 사람이다. A가 꿈꾸는 그림은 아마 '우애 깊은 형제 이야기'처럼 훈훈한 풍경화같겠지.









그런 생각에 감동하고 있는데 A가 덧붙였다.



“근데 말이야, 친절이 지나쳐서 힘들었던 적도 있어.

새로 온 직원에게 깍듯하게 인사하는 법을 알려주려고 내가 같이 일하면서 시범을 보였거든. 바빠도 눈을 마주치고 공손하게 하라고 말이야. 근데 하다보니 그 아르바이트생이랑 나랑 은근히 친절 경쟁이 붙은 거야. 내가 가르치는 입장에서 질 수는 없잖아? 그 직원은 나보다 더 잘해야 하고. 그러다가 서로 점점 더 깊이 허리를 숙이고 숙이고 하는 바람에, 둘 다 디스크 올 뻔했어.”




음 이것도 우애 깊은 형제가 쌀가마니 나르다 밤샌 격이다. 그러고보니 그다음 날 그 형제도 둘 다 허리 병 나서 드러누웠겠다. 


그래. 때로는 다정도 병이고, 친절도 과하면 디스크가 오니 뭐든 지나치면 병이다. 


적당하게 살기 참 어렵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