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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드롱 Mar 01. 2022

아름다움이 나를 구원할까

쇼윈도 앞 나를 위한 변명


어린이날이라고 아빠는 손자를 위해 헬륨가스를 넣은 파란색 풍선을 샀다.

둥실거리는 풍선을 들고 달리는 손자를 보면서 아빠는 “나 어릴 땐 풍선 하나 못 가져봤는데.”라고 했다.

나돈데. 나는 입 속에서만 중얼거렸다. 나도 어린 시절 풍선을 가져 본 기억이 없다. 가장 가볍고 가장 쓸데 없는 풍선 같은 것. 우리 집에는 풍선이 아니라 장난감이 거의 없었다. 봉제인형 한 두 개, 동생의 블록, 책 몇 권이 전부였다. 나는 자라면서 점점 장난감이라든지, 인형에 마음을 주지 않게 되었다. 나는 공기놀이나 고무줄이나 인형놀이에 연연하지 않는 쿨한 여학생으로 자랐다.


그런데 이 기억은 생생하다. 고모네 집에 가면 진열장 층층마다 바비인형의 방들이 있었다. 그게 그렇게 황홀했다.

외국에 출장 갔다 온 고모부가 딸을 위해 사온 각종 바비인형들, 바비의 남자 친구, 그들이 사는 집은 화려하고 살림살이들은 예뻤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음료수와 스테이크, 접시들, 케이크들과 과일들. 피자는 문지르면 냄새까지 났다. 피자를 먹어보지 못했지만 희미한 플라스틱 냄새 섞인 소시지향은 묘하게 자극적이었다. 진짜는 아니지만 정말 같은 그 살림살이들을 만지작거리며 나는 인어공주가 사람이 되길 바란 것만큼이나 강렬하게 바비가 되고 싶었다. 금발의 잘록한 허리와 길쭉한 다리가 부럽다기보단 인형 따위가 가진 화려한 식탁과 냉장고, 이국적인 음식들이 탐이 났다.

작고 영롱하고 알록달록한 살림들을 눈앞에 대고 만져보고 냄새 맡으며 나는 머나 먼 ‘부내’에 아릿함을 느꼈다.

그 때문이었을까? 대학생이 되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용돈을 좀 벌기 시작하면서 나의 소비는 작고 아기자기한 물건의 충동구매로 이어졌다.  


문구점에서 작고 예쁜 것만 보면 나도 모르게 지갑을 열었다. 보송보송한 곰인형, 열쇠고리, 이국적인 풍경의 엽서들..... 반짝거리는 무용한 것들을 사면서 목마름을 채우려고 했다.

독립을 하고 내 공간이 생기면서 관심은 그릇들과 머그잔들로 이어졌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여행을 할 때마다 생활용품 가게에 들러 식기를 사 모았다.

샌프란시스코의 도자기 공방을 찾아가 머그잔 세트를 사고, 일본의 백화점에서 물을 담을 수 없는 토기 주전자를 샀다.

게티 미술관에서 기념 머그를 사고, 싱가포르의 골동품 가게에서 법랑 접시를 샀다. 블로잉 기법으로 만든, 두께가 2밀리미터 밖에 안 되는 얇고 정교하게 만든 유리컵을 해외 직구로 주문하기도 했다.

하나하나 개성이 담겨있을 뿐 아니라 그 물건들은 어떤 부분에서 나의 일부를 반영하고 있었다. 그것들은 내 어딘가에 있는 바람이 숭숭 드나드는 구멍에 알맞게 들어맞았다.

그것들을 소유할 때마다 조금씩 안온해지는 기분이었다.

샌프란시스코의 공방에서 산 머그잔은 표면이 50방짜리 사포처럼 겉면이 거칠었지만 안팎의 색이 달라 고요하고도 세련된 맛이 있었다. 단점이라면 손잡이가 너무 작아서 안에 음료를 담으면 손목이 엄청 아팠다. 결국 찬장 깊숙이 처박혔다. 비 오는 날 일본의 백화점을 두 번이나 찾아가 결국 사고만 토기 주전자는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너무 예뻐서 거기에 물을 담아 마시는 기능이 없는데도 용서가 됐다. 그런데 주전자의 금속이 변색되면서 청순한 자태가 절망적인 분위기를 풍기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기어이 깨지고 말았다. 유리장인이 직접 불어 만든, 기막히게 섬세한 매력의 아가씨 같은 유리잔은 몇 번의 설거지를 이기지 못하고 우아한 파열음을 내며 떠나갔다.






언젠가부터 내가 제일 자주 쓰는 것은 실용주의자인 남편이 할인코너에서 사 온 두툼한 유리컵이다. 일체의 멋을 배재한 이 머그잔은 보리차를, 커피를, 우유를, 주스를 담아도 밍숭 하다. 아무리 특별한 음료라도 담는 순간 가장 평범하게 되는 청교도적 단호함이다. 이들은 머슴처럼 오로지 자기에게 담긴 음료를 안전하게 담는 역할에만 충실하다. 마구 부리고 가끔은 혹독하게 내동댕이를 치고 흘겨보아도 묵묵하다. 이놈들이 못 견디고 실 금이라도 가준다면 그 간 눈여겨뒀던 유리잔 세트를 살 기회가 생기는데, 이 6형제들은 10년이 되도록 끄떡이 없다.


비록 무용할지라도 아름답고 개성이 넘쳐 나를 행복하게 해 줬던 물건들은 대부분 사라지거나 곧 잊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이 세상의 온갖 아름다운 것들을 보면 마음이 설렌다.

풍선처럼 가볍고 오직 즐거운 것들, 땅에 붙들리기보다 저 너머 멋진 환상의 나라로 나를 데려가 줄 것 같은 물건들이 유리구두처럼 나를 구차한 현실에서 꺼내 줄 것만 같다.

비싸고 쓸모없는 물건들 앞에서 번번이 촉촉한 눈이 되는 나에게, 광고에 속는 거라고 뼛속까지 실용주의자인 내 남편은 일갈한다. 그래도 나는 그러한 물건들이 주는 위로를 갈망한다.

자꾸 사랑한다.


어쩜 애초에 나란 인간이 우직한 머그잔 같은 사람이 아니라서 그런가.

난 자꾸 풍선처럼 떠오르고 싶어 하니까. 닦아도 지워지지 않는 가스레인지 위의 냄비 얼룩을 보는 게 매 번 울적하니까. 일상의 노동을 감당하는 물건들에 스며든 서글픔이 매 번 무겁다.


그럴 때면 나는 세상 너머를 향해 둥실 뜨는 예쁜 것들을 만지작거린다.

순해서, 비위를 맞출 필요 없는 멋없이 튼튼한 머그잔 녀석들에게 의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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