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니 속 행성들에 대해서
소파 밑 먼지 속에 유리구슬이 있었다.
수돗물을 틀어 먼지를 씻어낸다.
구슬은 더러운 먼지에 덮여 잊힌 시간 내내 상하지 않았다. 여전히 새것 같이 빛나며 동그랗고 단단하다.
외부 세계와 구슬 속 세계는 매끄럽게 단절되어 있다. 구슬 속 색 리본은 은하수로, 미세한 공기 방울 들은 각자의 우연으로 태어난 행성들처럼 보인다.
구슬이 만들어진 순간 티끌이나 공기가 조금 흘러들어가 영원히 박제되었다.
행성들은 각자가 독특한 별자리를 이룬다. 이 유리구슬은 저 구슬과 틀림없이 미묘하게 다르다. 공장에서 만들어졌으나 제 각각 다른 영혼을 가졌다. 바깥 풍경을 투명하게 비추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거꾸로 된 세계다. 하늘이 아래로, 땅이 위에 있다.
나는 그것이 왠지 이 세상의 비밀을 약간 암시하는 것 같다.
나는 구슬들을 주머니에 모았다. 그들은 서로 자그락거리며 명랑한 소리를 냈다.
그러나 세상의 신비- 어렴풋이 감지하는 자는 많아도 실마리를 끝내 푸는 능력자는 드물거다.
의미심장했던 작은 행성들은 나에게 곧 잊혔다.
구슬을 넣었던 주머니가 블랙홀이 되었는지 내 머릿속에 블랙홀이 들었는지는 모르나, 그러나 어차피 그들은 틈만 나면 사방으로 달아나고 싶어 했다.
분명 열몇 개 있었던 구슬이 어느새 다섯 개로, 세 개로, 두 개는 있었는데 하나가 되더니 곧 사라져 버렸다.
걔네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들은 별똥별이 되어 각기 어둡고 구석진 틈으로 흩어졌다.
빛이 있든 없든, 누가 바라보든 잊혀지든, 먼지 틈이든 하수구 속이든 그들은 별로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누군가의 관심 밖에서 그들의 우주는 단단하고 영원할 것이다.
그리고는 어쩌면 이삿날 침대 아래 구석에서 변함없는 얼굴로 발견될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아둔한 나에게 ‘영원한 우주의 비밀’을 다시 떠올려 주려고 떠났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