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정신과 약을 처방받고서
몇 일, 죽은 것처럼 자고 일어났는데
이해하기 힘들만큼 집이 어지럽더라.
겨우 밀린 산책을 하고, 오랜만에 밥을 지어 먹었어.
작가가 쓰기에도 너무 과분한 키보드와 만년필,
현직 디자이너보다 더 좋은 작업대와 장비들,
누가봐도 현역 운동선수가 확실한 옷장의 옷들.
쓰고자 한 글은 단 한 편도 끝내지 못했고,
내고자 한 디자인은 단 한 점도 시장에 내지 못했고,
하고자 한 운동은 온 몸이 다 썩을 때 까지 미뤘더라.
이게 다 내 잘못이라고 생각하니 조금 무서웠어.
그렇다고 네 잘못이라고 생각하니 더 무서웠어.
이제 더 나빠지지는 않겠다 생각하니 덜 무서웠어.
약을 끊으려면 아주 오래 걸리겠다 생각하니,
주저앉아 울고 싶어졌어. 물론, 눈물이 나와 준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