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이래서, 저건 저래서
생각해보고 재고 따지고 그래서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삶이 넌더리가 난다.
전기로 차가 굴러가고, 전도체에 저항을 없에는 것이 큰 사회적 이슈가 된 이 세상에서 고작 물건 떼다 팔아먹는 발전없는 나의 이력이 곧 만고에 쓸모없어 질 것은 어쩌면 이 삶을 살겠다 마음먹기 전 부터 정해져 있었을 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서야 이 근원적이고 치명적인 문제를 진지하게 들여다 보는 것은 당연히 믿고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게을러서' 라고 표현 한다면 보다 겸손하면서도 본인의 모자름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 처럼 보일 수도 있겠으나, 실제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그간 먹고 살아야만 했으며, 다시말해 먹고살아야 한다는 강박을 갖고있는 인간이었으며 동시에 그 예민한 인간을 그동안 먹고살게 해 준 일이었다. 시장가격이 무너지고, 전 세계에 역병이 도는 동안에도 힘들지언정 죽지 않고 꾸역꾸역 삶을 유지시켜 준 직업이었다.
평생을 허리 휘게 일해서 돈만 벌다 죽을거라고 생각했던 20대 술주정뱅이가 바다에 집을 사고, 고향에 전세집을 얻고, 취향에 맞는 자동차를 타며 '다음엔 뭘 해서 먹고 살까'에 멀쩡한 후보를 여러개 씩이나 놓고, 무려 거실 소파에 앉아 개를 쓰다듬으며 고민하다 화질좋은 모니터 속에 나를 위해 직접 하나 하나 만들어 준 키보드를 고급진 소리를 내어가며 적어내고 있게 해 준. 섣불리 그만 둘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꼴랑 게을러서 라고 눙칠 수 없는 이유는, 그래서 다음을 생각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지금 사는 꼴이 위태위태하고 동시에 그 위기마저 권태롭지만 하루에도 열번씩 생각한 '다음'을 입 밖으로 꺼내놓지 못한 이유다. 부자가 되지 않았지만 감사하게도 가난하게 살지 않게 해준 근 십년을 해먹은 밥벌이라서. 이건 이렇고 저건 저래서. 새로 하는 도전이 또 한번의 십년을 곱게 지나게 해 줄 것인가 불안해서. 이 일을 그만두면, 혹은 그만두기 전에 이 업계가 망하면, 아니면 이 일을 그만두지 않거나, 예측한 시간이 한참 지나서도 이 업계가 망하지 않으면. 그때 가서 내가 섣불리 한 선택이 잘못되었으면. 쥐젖만큼도 손해보고 싶지 않은 장사하는놈의 쪼잔함이 스멀스멀 기어올라 입으로는 그리 경멸하는 가성비를 온 몸과 마음으로 본인의 삶에 녹여내느라 그래서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삶이. 드디어 넌더리가 난다.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역병보다 더 큰 위기라고 해야하나.
삶이 희망적이다.
동시에 위태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