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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유리 Oct 25. 2023

할 수 있다는 마음

  엇비슷한 아이들이 모여 고만고만하게 반을 이룬 것 같아도 반마다 분위기가 제각각인 것이 참 신기하다. 담임 성격을 따라가기도 하고, 분위기를 주도하는 몇몇 학생을 따라가기도 한다. 어떤 반은 남자애들이 분위기를 주도하기도 하고, 어떤 반은 여자애들이 분위기를 주도하기도 한다. 어떤 반은 농담에도 절대 웃지 않고 조용하다면 어떤 반은 들어가자마자 이유 없이 박수로 나를 환영 해준다.    

  

  신기하게도 그 ‘반 분위기’라는 것은 고유의 것과 만들어진 것의 합이라는 것이다. 반 아이들의 성격만으로 반 분위기가 결정되지는 않는다.(그래도 천성적인게 가장 큰 것 같기는 하다.) 학기 초에는 다들 어색해서 모든 반의 분위기가 비슷하다가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반마다 고유의 분위기가 생기는데, 초반에 담임이 혹은 분위기를 주도하는 몇몇이 혹은 교과에 들어오는 선생님들이 한마디씩 던지는 말들이 영향을 미쳐 그 반의 분위기를 만들기도 한다.     


  우리 반 애들은 대체로 순하다. 천성적으로 그렇다. 그냥 모범생들만 모인 것 같다. 시험을 보면 거의 한, 두 과목을 빼고는 1등을 한다. 버리거나 포기하는 과목이 없이 모든 과목을 열심히 한다. 학기 초부터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잘 어우러져서 놀고 서로 도와주는 모습이 자주 보이더니 이제는 반의 풍토가 된 듯하다. 수행평가를 볼 때면 전날에 친구들끼리 서로 내일 수행평가니 준비물을 챙기라고 말해준다든가, 반 아이들끼리 짝을 이루어 서로가 부족함을 느끼는 과목을 함께 공부한다. 공부뿐 아니라 장기자랑, 학급 행사 등에 참여할 때도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며 서로 돕는다. 


  우리 반 아이들은 내가 뭔가를 하자고 행동을 취하면 거부하거나 자신의 의견을 더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오, 그래 볼까?’하고 바로 받아들인다. 마치 말랑한 스펀지 같다. 물레 위에 돌아가고 있는 도자기 같기도 하다. 나는 아주 살짝 건드렸을 뿐인데 순식간에 모양이 눈에 띄게 변한다. 내가 아이들에게 끼치는 영향도 이렇지 않을까 생각하면 내 행동에 더 조심하게 된다.     


  내가 우리 반 분위기에 기여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체육대회를 준비하던 중이었다. 나는 승부욕이 센 편이고 뭐가 됐든 웬만하면 이기고 싶은 사람이다. 누군가와 경쟁을 하게 될 때면 눈에 불을 켜고 덤볐다. 학생일 때는 이 마음이 의욕 없는 친구들이 원망스러운 마음, 나를 지게 한 누군가가 미운 마음으로 발현이 되었다면 선생님이 된 지금은 조금 달라졌다. 우리 모두 할 수 있다는 마음을 계속 심어 반 전체가 열심히 참석하게 했다. 체육대회를 준비하며 나는 매일 아이들에게 말했다.    

 

  ‘잘하는 건 둘째야! 열심히 하는 게 먼저야! 할 수 있다는 마음. 그게 중요한 거야.’


  말랑한 우리 아이들은 정말로 열심히 했다. 연습도 정말 열심히였다. 연습 경기에서 지거나 실수를 해도 ‘오케이, 오케이’를 외쳤다. 다른 반들은 피구 경기 중에 의욕 없이 걷고 있거나 단체 줄넘기에서 줄에 계속 걸리는 아이가 있으면 그 아이에게 짜증을 냈는데 우리 반은 그런 것도 없었다. 내가 봐도 참 기특하고 귀엽게 서로 격려하면서 연습을 했다.      


  체육대회 아침이 밝았다. 연습한 대로 모든 경기가 착착 진행이 되었고 우리 반은 줄다리기를 빼고 거의 모든 종목에서 1등을 해서 종합 1등을 했다. (아무리 열심히 했어도 물리적인 덩치 차이는 극복을 할 수가 없었다.ㅎㅎ;;) 그걸 시작으로 우리는 각종 행사에 가장 열심히 참여하는 반이 되었다. 수련회 장기자랑, 스포츠 리그전 등 반 전체가 참석하는 행사에서 웬만하면 다 우승을 하고 있다. 

  하나로 뭉쳐 끌어주고 당겨주며 우리 반 만의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우리 반 말랑이들. 나도 배우고 아이들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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