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니던 공방 사장님께서 며칠 전 3일간 가시지 않는 두통이 있다며 병원을 가보는게 좋을까 하고 물어보셨다. 나는 그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고 사장님은 다음 날 바로 병원에 다녀오시더니 입원을 하게 되셨다며 다음주 수업이 힘들 것 같다는 연락을 해오셨다. 문득 그 때 엄마가 생각난 것은 왜일까, 엄마도 이렇게 갑작스럽게 병원에 가게 되었고 2주만에 죽은 사람이 되어 병원을 나왔다. 그렇게 죽을 줄은 정말 몰랐다. 다시 생각해도 믿을 수가 없는 세상 이치의 잔인함이다.
뉴스를 보면 하룻밤에도 수십건의 사고가 일어나고, 수 많은 사람들이 유명을 달리한다. 사람 살고 죽는 게 정말 한순간인 것 같다가도 주변을 둘러보면 그렇게 쉽게 죽은 사람은 우리 엄마 뿐인 것 같다. 실제로 내 주변 친구와 언니, 지인들을 둘러보면 부모님이 두 분 모두 살아계신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우리 엄마가 운이 좋지 않았던 건 맞지 않나 싶다.
말기암 진단을 받아도 적어도 몇 달은 살다가 가던데, 엄마는 고작 2주가 다였다. 그마저도 혼수상태가 아니라 온전한 정신으로 있었던 기간만 치면 일주일은 될까? 우리 모녀는 작별인사를 할 시간조차 없었다. 9호선 출근길 지하철에서 사람들 틈에 끼여있다 얼레벌레 정신을 차려보니 바깥으로 튕겨나와있는 것 같은 그런 어수선한 이별을 했다. 그것이 두고두고 내 마음에 남아 아직도 마르지 않는 눈물 자국이 선명하다.
어수선한 이별의 후유증일까 나는 나또한 언제라도 그렇게 떠나버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이유야 무엇이 되었건 이별하는 순간은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니까. 사실은 너무 당연한 이치이지 않을까? 종종 내일이라도 훌쩍 먼 곳으로 떠나버릴 것 같이 말하는 나에게 남편은 그렇게 말하지 말라며 또 시작이라는 듯 핀잔을 준다. 나 없이는 절대 살 수 없다고 말하는 그의 심성에서 번뇌라고는 겪어보지 못한 인생의 순결함이 느껴진다. (우리 남편은 실제로 수십년 동안 참으로 굴곡없이 자라온 억세게 운이 좋은 남자다. )
엄마가 죽으면 나도 따라 죽을 것이라고, 결코 살 수 없을 것이라고 눈물을 쥐어짜며 말했더랬지만 결혼도 하고 임신도 한 채로 이렇게 잘 살아있는 나는 남편에게 당신이 없으면 절대 살 수 없을 거라는 말 따위는 해본 적도 없고 앞으로 할 일도 없다. 그렇게 말한다고 진짜로 못 살 것도 아니면서, 부부 사이에 그 정도 말은 충분히 애교로 할 수 있건만, 잔인한 세상에 상처받은 마음을 애꿎은 대상에게 투쟁하듯 펼쳐 보이려는 나의 안타까운 신념 혹은 고집일 수도 있겠다. 역시 나는 상처로 점철된 사람이다.
출산이 가까워 올수록 마음이 어수선한지 엄마 꿈을 참 많이 꾼다. 출산 방법이나 모유수유 같은 것은 엄마를 많이 따라간다던데, 물어볼 곳이 없었던 나는 어찌나 궁금했던 모양인지 꿈에서 엄마를 만나 줄줄이 물어보곤 했다. 나를 낳을 때 몇시간이나 진통을 했는지, 젖몸살은 심하지 않았는지. 엄마는 모든 것이 수월했다고 했고 나는 아마도 꿈을 조작하여 내가 듣고싶은대로 들은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 엄마는 정말로 살아서 이 모든 것을 나에게 말해줄 수는 없었을까, 내가 그리 많은 것을 바라는 것 같지는 않은데, 그런 현실은 왜 도무지 나에게 일어날 수 없었던 것일까. 정말이지 나는 2020년도 7월에 엄마가 그렇게 죽을 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