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렇게 살다가 죽고 싶다.
1> 몸만 따라준다면 죽을 때까지 일을 하고 싶다. 쥐꼬리만 한 돈이라도 내 가 번 돈으로 나에게 필요한 일용할 양식을 구할 것이다. 장사를 하든, 글을 쓰든, 안내 도우미를 하든, 물론 내 분수에 맞는 일을 할 것이다. 작은 돈이라도 충분하다. 적게 벌면 적게 쓰고 많이 벌면 많이 쓸 것이다.
2> 저축해 놓은 돈은 쓰지 않고 자식들이 쓸 수 있도록 남겨 둘 것이다. 유명한 강연자들은 소리 높여 외친다. 바보짓이다. 있는 것 다 쓰고 가라. 자식에게 남기려고 하지 마라. 쓰고 남으면 사회에 환원하라!
나는 사회에 환원 안 할 것이다. 그런 것은 엄청나게 부자가 하는 짓이다. 평범한 사람은 일상에 쓰는 것이 바로 환원이다. 자판기에서 300원짜리 커피 뽑아 마시고, 친구에게도 한 잔 사 주고, 그렇게 돈을 쓰는 것이 바로 사회에 환원하는 것인데 굳이 세상에 대고, '내 돈 사회에 환원한다'라고 공포할 필요가 있나? 재벌은 그 많은 돈을 쓸 재간이 없어서 환원이란 행위를 빌려서 할 뿐이다. 나는 매일 사회에 환원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 남은 것은 내 자식을 위한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보다 앞으로가 살기가 더 빡빡한 세상이 올 것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내 배로 낳은 내 자식이 내가 없는 세상에서라도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배고픈 지경에 이르는 것은 싫다.
3> 여행을 많이 하고 싶다. 아니할 터이다. 그것도 세계여행을. 지구 구석구석을 보고 싶다.
4> 다리가 튼튼할 때는 물론이지만, 지팡이를 짚어야 할 정도가 되더라도 여행을 할 것이다. 물론 갈 수 있는 곳을 분수껏 정할 것이다.
5> 영감도 함께 하겠다면 같이 여행을 할 것이다.
6> 영감이 늙어서 하는 여행은 피로하고 싫다고 한다면 나 혼자라도 할 것이다.
7> 영감이 건강한 상태라면 나 없는 동안에 혼자 밥 잘 챙겨 먹고 잘 지내고 있으라 할 것이 다. 자식들에게, 형제들에게 나 없는 동안 가끔씩 만나서 함께 시간을 보내라, 부탁은 하고 갈 것이다.
8> 만약에 나보다 먼저 영감이 많이 아파서 집에서 돌보기 힘들다면 망설이지 않고 요양병원으로 데리고 갈 것이다. 나도 함께 갈 것이다.
9> 요양병원에서 보호자도 함께 지낼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함께 지낼 것이다. 내 영감도 살펴주고, 할멈 없는, 보호자가 찾아오지 않는 남의 영감도 살펴 줄 것이다.
10> 요양병원에서 보호자는 함께 지낼 수 없다고 한다면, 병원 앞에 원룸을 얻어서 지내며 병원으로 간호사처럼 출퇴근할 것이다.
11> 여행이 많이 그리울 때는 영감을 요양병원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과 같은 병실의 환자들에게 단단히 부탁하고 떠날 것이다. 자식들에게도 내가 여행 떠난 사이에 아버지 보러 자주 오라고 할 것이다. 그때만큼은 그 정도는 해도 될 것이다.
12> 해외여행을 하는 동안에 영감이 위독하고 할멈을 찾는다 하면 달러 빚을 얻어서라도 비행기 표를 끊고 중도에 돌아올 것이다.
13> 만약 영감보다 내가 먼저 많이 아프게 되면, 지체 없이 요양병원으로 옷 보따리 챙겨서 내 발로 들어갈 것이다. 자식들이 말리고 말려도 뿌리치고 갈 것이다. 영감이 따라오겠다면 좋고 안 따라오겠다 해도 괜찮다. 나 혼자 간다.
14> 혼자 남은 영감이 적적해서 다른 할멈을 만나겠다면, 무조건 OK다. 이왕 만나다면 젊은 여인을 만나면 좋겠다고 조언할 것이다. 이왕 만난다면 음식을 잘하는 여인을 만나면 좋겠다고 할 것이다. 나에게서 받지 못했던 대접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할 것이다. 60년을 넘게 같이 산 사람이 남은 사람에게 해 줄 수는 있는 마지막 감사의 표현이다.
15> 요양병원에서 재미있게 지낼 것이다. 책을 많이 읽을 것이다. 가능하면 세상의 책을 다 읽고 가고 싶다. 다리가 불편하여 앉을 수 없다면 누워서라도 책을 볼 것이다.
제일 먼저 미생을 읽을 것이다. 시즌1, 시즌2 합해서 14권. 반지의 제왕 7권, 해리포터 시리즈도 읽을 것이다. 셰익스피어 전집도 완독 할 것이다. 그래도 시간이 남는다면 수호지, 삼국지, 대망도 전권을 읽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재밌다.
16> 누워서라도 손이 쓸만하다면 스마트폰으로 독서 리뷰를 쓸 것이다. 당연히 네이버 애드포 스트 광고료가 쥐꼬리만큼이라도 들어올 것이다. 자판기에서 200원짜리 믹스 커피를 뽑아 마실 것이다. 같은 병동에 있는 환우들에게도 뽑아 줄 것이다.
17> 누워서 유튜브로 영어, 중국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를 공부할 것이다. 공부해 뭐 할 거냐고 물으면 그냥 재미있으니까 한다고 할 것이다.
18> 팔 하나가 불편하다면 한 팔 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아직도 한쪽 손가락이 쓸만하다면 스마트 폰을 침대 또는 환자용 앞 테이블에 고정시키고 리뷰를 쓸 것이다. 재미있으니까
19> 건강할 때 바빠서 못했던 취미생활을 할 것이다. 살아오면서 갈고 닦아던 바둑을 많이 둘 것이다. 요양원에 계시는 할아버지들과 내기 바둑을 둬서 동전을 딸 것이다. 그 돈으로 자판기에서 커피를 빼 마실 것이다. 송중기처럼 멋있고, 우아하고, 세련되게 마실 것이다.
바둑 공부를 열심히 해서 영감 커피값까지 딸 것이다. 많이 따는 날은 의사 선 생님에게도 간호사에게도 커피를 뽑아 줄 것이다. 생각만 해도 재미있겠다.
20> 나보다 더 아픈 환자들에게 찾아가 그동안 가슴속에 뭉쳐 놓았던 이야기를 풀어놓고 또 들을 것이다. 그리고 손을 맞잡고 펑펑 울어 볼 것이다.
22> 병원에서 주는 약은 진통제 말고는 결코 먹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법칙이니 먹어야 한다 면 몰래 화장실 변기에 버릴 것이다.
23> 요양병원에서 주는 밥은 무엇이든 맛있게 먹을 것이다. 더 이상 못 먹을 상황이 되면 못 먹겠다고, 안 먹어도 된다고 할 것이다. 그래도 꾸역꾸역 준다면 내 던져버릴 것이다.
24> 철 따라 피는, 병원 정원의 풀꽃들을 꺾어다가 내 침대 화병에 꽂을 것이다. 내 침대 화병에 꽂아두고 매일 그 아름다움을 볼 것이다. 시들면 가차 없이 버리고, 새 꽃을 꺾어 꽂을 것이다. 꽃들이 아프다 해도 할 수 없다. 내가 중요하니까. 그리고 말할 것이다. "어차피 시들 거잖아. 그리고 죽을 거잖아. 나한테 봉사 좀 하면 안 돼?" 시들어가는 것보다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 좋다. 나도 시들어 죽을 때이지만 수십 년을 끊임없이 열심히 살아왔는데 이런 호사 정도는 하고 싶다.
25> 매일 밤, 눈을 감을 때면 천국에 가게 해 주세요, 하고 기도 할 것이다.
26> 아침에 눈이 떠지면, 깨어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도 할 것이다. 그날 하루도 책을 읽고, 바둑을 두고, 믹스커피를 마시고,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 한 조각보고, 비가 오면 창문을 열어 달라하고 비향을 맡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행복하다.
27> 부활하게 해 주세요 기도할 것이다. 손예진처럼 예쁘게 태어나게 해 주세요. 그리고 현빈 같은 남자를 만나게 해 주세요, 하고 기도 할 것이다.
28> 내 아이들과 손주들도 다시 내 식구가 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할 것이다.
29> 며느리도 내 식구가 되게 해 주세요 기도하고 싶지만, 아들과 며느리의 생각이 다를 수도 있으니 그 기도는 하지 않을 것이다.
30> 남편은 내 남편이 아닌 이웃집 남편으로 만나게 해 주세요. 친절한 미소로 사심 없이 인 사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할 것이다.
31> 재수 없이 120살까지 살게 된다 해도 중도에 신이 주신 생명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끝까지 완주할 것이다. 마라톤 대회에서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금방이라도 쓰러져 죽을 듯이 기진맥진으로 완주하여 들어오는 마라토너에게 더 열광하고 손뼉 치듯이, 나도 그렇게 박수받으며 완주하고 싶다.
32> 유언 같은 것은 심각하게 남기지 않을 것이다. 가수 현미의 유명한 유행가처럼 ‘떠날 때는 말 없이’ 갈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멋지다.!!
33> 그 후의 일은 내 몫이 아니다. 산 자의 몫이다. 알아서 할 것이다. 내가 떠나고 없는 세상 일에까지, 살아생전에 신경 쓰고 싶지 않다.
34> 이 모든 것은 오로지 희망사항이다. 살아오면서 세상사 내 마음먹은 대로 된 것이 얼마나 되나. 그럼에도 희망해 본다. "그러나 주여, 내 뜻대로 말고 당신 뜻대로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