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춘의 빛은 사라져도
구포역
경부선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만세길 36-9
주변 관광지 : 구포 만세로길, 구포시장, 예전 구포 나루터
삼월 하늘 가만히 우러러 보며
유관순 누나를 생각합니다.
옥 속에 갇혀서도 만세 부르며
푸른 하늘 그리며 숨이 졌대요.‘
이 노래가 언제부턴가 서서히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 갔다. 3월 1일만 되면, 농 속에 고이 접어 넣어 두었던 태극기를 꺼내어 집집마다 대문 앞에 걸어 놓았던 행사도 차차 사라졌다. 지금은 단순한 공휴일, 평일이 끼어서 연휴가 되면 더없이 좋은 날, 모두 가방을 꾸리고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한다. 지금의 이 풍요로운 삶이, 선조들의 고통과 인내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우리는 얼마나 알고 기억하고 있는가.
경부선 구포역 앞 광장, 아직 이른 가을 낙엽을 쓸고 있는 아저씨의 손길이 부지런하다. 그분들의 부지런함이 있기에 이 광장이 이토록 깨끗하다. 구포역 앞에 세워진 ‘고객중심, 생활철도’라 새겨놓은 돌 비석, 이른 가을 햇빛을 가려주고 있는 오래된 나무 그늘에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노인들의 뒷모습이, 어느 시골 마을 터에 와 있는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그러다 넓은 광장으로 걸어나오며 마주 보이는 우람한 엘리베이터가 착각을 깨우쳐 준다.
광장에서 오른쪽 골목길로로 들어서면 깨끗하게 잘 닦여진 길을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정겨운 서민들의 먹거리 간판이 줄지어 있다. 밤이 되면 하루 품을 팔고, 피로를 풀러 나온 구포 사람들로 벅적인다.
구포 만세길이 여기서부터가 시작이구나, 입구에 낯익은 붉은 원의 일본기가 걸려있는 구포 주재소 현판이 보인다. 그리고 이어지는 태극기, 이날따라 바람이 분다. 일 열로 이어져 바람에 나부끼는 태극기에 마음이 울컥, 가슴 한편이 묵직하게 짓눌려 온다. 생각지 못 했던 순간이며 느낌이다. 아직 만세길로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초입에서부터 이런 감정이 솟구치다니, 태극기의 물결이 이토록 감동이구나. 이어지는 벽화와 사진. 만세를 부르는 사람들이 지금이라도 태극기를 흔들며 골목으로 뛰어나올 기세다.
지금은 모습을 달리하고 있지만, 3.29 구포장터 만세운동을 도모하던 분들의 집터가 있었던 구포 만세길(구포 만세거리)은 1995년 9월 28일, 광복 5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3.29 구포장터 만세운동의 항일독립정신을 기리기 위해 지정되었다.
1919년 ‘조선은 독립된 나라이며 조선 사람이 주인’ 이라는 내용의 독립선언문이 1919년 3월 1일에 발표되고, 이것을 시작으로 전국에서 독립 만세 운동이 펼쳐졌다. 이 운동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옥에 갇혀 고문을 당하고, 죽임을 당했다. 사실적으로 묘사 된 벽화 하나하나를 본다. 검정 치마에 흰 저고리를 입고, 태극기를 흔드는 벽화 앞에서 오래도록 잊고 있던 유관순을 떠 올렸다. 정말 그랬다. 해마다 삼일절이면, 공식적으로 집집마다 태극기를 걸고, 학교에서도 유관순 누나의 노래를 불렀던 때가 있었다.
일제의 국권침탈에 항거하는 3.1 독립만세운동의 결기가, 이곳 구포에도 전해져, 1919년 3월 27~28일, 임봉래, 유기호, 외 구포의 지식인, 예술인 청년들이 구포면 구포리 박영초·이수련의 집에 모여 모의를 거듭한 끝에 3월 29일 구포 장날을 이용하여 거사를 결의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예정된 장날, 미리 준비된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청년동지들에게 비밀리에 나눴다. 그날 정오, 이들은 구포시장에서 장꾼 1,000여 명과 더불어 ‘대한독립만세’를 연이어 크게 외쳤다. 시장은 삽시간에 흥분과 비장, 감격의 도가니로 화하였다.
비록, 담벼락 한 모퉁이에 그려진 그림이지만, 그림 앞에 섰을 때, 채 못다 핀 청춘들이 안타까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어린 꽃들의 영광 어린 시간을 딛고 우리는 지금 맘껏 자유를 누리고 있다. 우리에게 자유를 준, 지난 영광의 주인공들은 다시 되불러 올 수 없지만, 그 시간이 있었음에 지금의 시간도 있음을 간과하지 않는다. 숙연한 마음으로 태극기 휘날리는 만세길을 걷는다.
만세길을 걸어 나와 낮은 굴다리를 지나면 바로 구포시장이 나온다. 아직 저녁나절이 채 되지도 않았는데, 입구는 사람들로 벅적인다. 바로 이곳 장터에서, 1919년 3월 29일 정오에 농민과 상인, 노동자로 구성된 20~30대 청년 1,200여 명이 태극기와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현수막을 들고 만세를 불렀고, 당시 장터에 나왔던 시민들도 합세하여 독립의 뜨거운 열망을 보여 준 곳이다. 그 이후, 만세운동을 주동한 주도자가 붙잡혔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더욱 거세게 저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9년부터 구포시장에서는 그때의 정신을 되새기기 위해 매년 3월에 구포장터 3․1운동 재현 행사가 시행된다.
구포 경부선 철도역 맞은편에 도시철도 구포역이 있다. 도시철도 구포 역사(驛舍) 안으로 들어가 보면 예전 구포 나루터가 있던 곳에 전망대가 마련되어 있어서 잠시 피곤한 발길을 멈추고, 하늘과 도로와 저 멀리 아파트를 품고 있는 낙동강을 볼수 있다. 아, 여기가 이렇게 좋은 곳이구나, 새삼 구포역의 앉음새를 생각한다.
방문일 : 2016년 10월